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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마가 있는 고품격 뉴스, 세상을 더 크고 여유로운 시선으로 들여다보는 CBS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 ''기자수첩 시즌2''에서는 정의롭지 못한 것에 대한 날카로운 비판을 담았다. [편집자 주]김현정의>1. 구룡마을은 유령마을, 그러나 사람다운 사람들이 모인다 서울 강남구 개포동 구룡마을은 1970년 후반부터 갈 곳 없는 사람들이 하나 둘 모여 움막을 짓고 머문 곳이다. 그러다 1986년 서울아시안게임과 1988년 서울올림픽 때 강남개발로 쫓겨난 난민들이 합류하며 마을을 이뤘다. 그러나 정부와 구청은 마을로 또 주민으로 인정하지 않았다. 강남 한 복판에 살지만 주민등록은 멀리 사는 친인척 주소지에 넣고 살거나 무등록자로 살았다. 이 때문에 가난한 아이들이 멀리 학교를 다녔고, 학교나 직장에서 이곳 주민임이 알려지면 불이익을 당하기에 이 마을 이름을 입에 올리지 않아야 했다. 붙여진 별칭 그대로 유령마을인 셈이다.
이번에 수해로 1,200 가구 중 500여 가구가 물에 잠기고 무너졌다. 방배동, 대치동에는 공무원, 경찰, 군인들이 복구 작업에 나섰지만 구룡마을엔 출동하지 않았다. 구룡마을 주민들에겐 침수피해 가구에 주어지는 보상금 100만원조차 지급되지 않는다. 트윗으로 마을 소식이 알려지며 시민자원봉사자들이 매일 찾아와 복구 작업을 거들었다. 이런 사연이 알려지자 시장, 구청장이 드디어 다녀갔다.
2. 카페 마리 - 홍대 두리반 - 용산 재개발
재개발 지역 영세 상인들의 점포 문제도 구조상으로는 판자촌 문제와 흡사하다. 가진 돈을 모두 털고 융자도 얻어 보증금에 권리금까지 얹어 주고 작은 가게를 마련한다. 장사가 조금이라도 더 잘될까 싶어 사는 집 전세금을 빼 가게를 이리저리 꾸며도 본다. 그럴 때쯤이면 재개발할 테니 나가라며 쫓아낸다. 가게 보증금과 이사비용만 약간 내주며 떠나라 한다. 참사가 빚어진 ''''용산재개발'''' 지역이 그랬다.
홍대 앞 작은 용산으로 불리던 칼국수 집 ''''두리반'''' 사건도 마찬가지이다. 권리금만 1억3천만 원을 주고 들어와 5년 간 열심히 장사해 아이들을 키웠는데 내몰며 내놓는 돈이 300만원이었다. 어디를 가든 권리금 1억 이상을 주지 않으면 좌판 깔고 장사하는 것도 어려운 세상이다. 갈 곳이 없다. 억울해 버티면 역시 등장하는 건 용역업체 직원들이다. 가게는 강제 철거로 쑥대밭이 됐고 전기 등 모든 것이 끊긴 가게에서 주인은 500일을 농성으로 버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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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산에서 홍대 두리반, 이번에는 명동 카페 마리이다. 명동 일대가 도시환경정비사업 구역으로 지정돼 명동성당 맞은 편 일대 상가 30여개가 모두 철거당했다. 가게 크기에 따라 400만원에서 1,400만 원 정도 보상금을 받고 쫓겨난 상인들이 있고, 강제철거 당한 11개 점포 상인들은 커피를 팔던 가게 ''''마리''''로 들어가 농성을 하고 있다. 그 상가는 조그만 분식집 권리금이 1억을 훨씬 넘고 가게 꾸미느라 들인 비용도 5~6천만 원 수준은 된다.
그 이후 벌어지는 사건들은 마치 백마고지 전투와 비슷하다. 마리에서만 몰아내면 상가지역을 완전히 점령하게 된다고 보고 용역업체 직원들이 공격하고 상인들과 시민, 학생들이 힘을 합쳐 방어한다. 빼앗으면 탈환한다. 용역 직원들은 카페 마리에 있는 세면기와 용변기도 이미 부수어버렸다. 후퇴하면서 군량미와 시설을 불태워버리는 병법전략처럼 말이다. 어제 새벽 4시쯤에도 용역직원들이 소화기를 뿌리고 몽둥이를 휘두르며 들이닥쳐 몸싸움이 벌어졌고 20여 명이 부상당했다.
임대차상가보호법, 도시재정비사업 등이 근본적으로 세입자의 권리금을 고려해 보상하는 방향으로 바뀌지 않으면 언제까지고 계속될 전쟁 같은 도시의 삶이다. 개발하는 쪽의 수백억 이익을 계산하느라 십억, 이십억이면 해결될 가난한 상인들 문제는 늘 싸늘한 법과 용역업체 무력으로 해결한다는 걸 부끄러워해야 하는데 그러지 않는다. 국가와 정치의 역할이 무엇인가? 폭우로 무너지면 갈 곳, 쉴 곳 마련해주고 공무원, 경찰, 군인들까지 나서 치워주고 닦아내 주듯이 외부의 충격과 천재지변 있을 때 내부의 약자를 보호하는 게 정치와 공권력의 임무이다. 그렇지 못하면 민주주의가 작동하지 않고 있는 것이다.
3. 정의와 희망이 달보다 멀다멕시코 북동부 ''''엘 그란 투날''''이란 마을은 멕시코 원주민이 사는 산간 오지마을이다. 먹을 거라고는 돌과 먼지 밖에 없다는 최극빈 지역이었다. 그러나 공식적으로는 소멸되어 정부 행정통계에도 나타나지 않아 아무런 지원도 없는 유령 마을이었다.
1997년 이 마을 87세 노인이 당나귀를 타고 걷고 하며 수천리 길을 걸어 수도 멕시코시티 대통령 궁 앞 광장에 자리를 잡았다. 노인은 대통령을 만나게 해달라고 농성을 시작했다. 경찰에게 미친 노인 취급을 받으며 매일 당나귀와 함께 얻어맞고 욕을 먹으며 버티기를 1년2개월 보름. 온 국민이 할아버지와 당나귀의 존재를 알게 되고 그들이 무엇을 원하는지 알게 되자 결국 멕시코 정부는 할아버지에게 정당한 국민으로서의 권리 보장을 약속 했다. 그래서 노인은 당나귀와 함께 수천리 길을 다시 걸어 마을로 돌아갔다. 노인을 마을에 내려놓고 조금 지나 당나귀는 숨을 거두었다. 그 당나귀의 이름이 차파로, 세계사에 이름을 남긴 유일한 당나귀이다.
할아버지가 직접 남긴 말인지는 모르지만 이 말 한마디가 남겨져 있다. ''''마을에서는 정의와 희망이 달보다 더 멀다, 달은 눈에 보이기라도 하니까''''
용산 참사의 가족들, 두리반 주인 가족, 명동 카페 마리 사람들에게 물어 보라. 달이 더 먼지 희망이 더 먼지, 달이 더 먼지 정의가 더 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