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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평중앙교회 전기천 장로 "기독교 선교 역사 연구는 내가 가장 설레고 행복한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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핵심요약

■ 방송 : 대전CBS 라디오 FM 91.MHz, 홍성 FM 99.3MHz (13:15~14:00)
■ 제작 및 진행 : 서경희 아나운서 (대전CBS 선교팀장)
■ 출연자 : 태평중앙교회 전기천 장로

대전 CBS 라디오 방송에 출연한 태평중앙교회 전기천 장로의 인터뷰를 통해 한국 기독교 선교 역사의 중요성을 조명합니다. 전문 연구자가 아님에도 사명감을 갖고 25년 넘게 국내외 선교 유적지를 직접 답사하며 귀중한 역사적 기록과 숨겨진 일화들을 수집해 온 그의 헌신적인 활동을 소개합니다. 특히 대구와 강경 등 보존 상태가 우수한 성지 순례지를 추천하고, 평양신학교 1기 졸업생들의 이야기를 통해 신앙의 뿌리를 되짚어 봅니다. 그는 선교사들이 남긴 유물을 체계적으로 보존하고 계승하는 것이 오늘날 성도들의 중요한 의무임을 강조합니다. 마지막으로 복음의 빚진 자라는 겸손한 마음가짐으로 다음 세대에게 신앙의 유산을 전달하고자 하는 그의 열정적인 삶의 태도를 보여줍니다.


 
◇ 서경희 아나운서:
오후의 만나, 만나 초대석 오늘의 이야기 손님을 소개합니다.
기독교 선교 140년의 역사, 여러분은 얼마나 알고 계십니까?
우리 기독교의 선교 역사를 연구하고 이를 토대로 성도들을 위한 성지 순례 프로그램을 제공해 주고 계신 장로님 한 분과 오늘은 인터뷰 나누겠습니다.
태평중앙교회 섬기시는 전기천 장로님 함께 합니다. 어서 오세요.
 
◆ 전기천 장로:
네 반갑습니다. 먼저 참으로 이 귀한 자리에 서게 하신 우리 주 하나님께 감사를 드리고요.
대전 CBS 청취자 여러분께 인사를 드립니다. 저는 대전 중구 태평동에 위치한 태평중앙장로교회를 섬기고 있는 전기천 장로입니다. 반갑습니다.
 
◇ 서경희 아나운서:
어서 오세요. 제가 앞에 장로님 하시는 역할을 소개를 드렸는데 기독교 역사 연구 관련해서 또 많은 관심을 갖고 계시다고 하는데 직접 좀 소개해 주세요.
 
◆ 전기천 장로:
이제 제목은 정말 저한테 감당할 수 없는 그런 제목인 것 같아요.
제가 신학을 한 사람도 아니고 또 전공을 한 사람도 아니고 또 유아 때부터 뭐 이렇게 하나님을 섬겼던 사람이 아니기 때문에, 제목이 참 많이 부담스러웠었는데 한마디로 말씀드리면 저한테는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였다 그리고 선교에 관한 역사, 그런 사연들을 집중할 수 있도록 인도하심이 있었다 그렇게 말씀드릴 수 있을 것 같아요.
 
◇ 서경희 아나운서:
그러시군요. 최근에 그 섬기고 계시는 교회에서 성지 순례를 성도님들과 목사님 모시고 다녀오셨다고 하는데 어디를 다녀오셨습니까?
 
◆ 전기천 장로:
저희가 1박 2일 코스로 이렇게 다녀왔는데요. 전주 그다음에 익산, 강경, 논산 그렇게 1박 2일 코스로 다녀왔습니다.,
 
◇ 서경희 아나운서:
코스 이렇게 구성하고 인솔을 직접 해 주신다고 하는데, 이번에는 이렇게 좀 구성하게 되신 이유가 있으셨어요?
 
◆ 전기천 장로:
저희가 이제 주로 이제 한 4~50명 선에서 이렇게 이동을 하게 되는데 이동 거리가 이제 너무 길고 힘들면 같이 동행하는 분들의 그런 체력적인 부담도 있고 해서 저희가 이제 지역적으로 또 이제 교단별로 또 이렇게 분류를 해서 담당하시는 우리 전도사님하고 함께 답사를 한 두 세 차례 이렇게 합니다. 실제로 가서 해설하시는 분한테 들어보기도 하고 현장을 가서 직접 우리가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하면서 이렇게 철저하게 준비해서 1박 2일 코스를 이렇게 정해서 이동하게 됐습니다.
 최근 태평중앙교회 전기천 장로가 기획한 강경 국내성지순례 (침례교 최초 예배지). 전기천 장로 제공최근 태평중앙교회 전기천 장로가 기획한 강경 국내성지순례 (침례교 최초 예배지). 전기천 장로 제공
◇ 서경희 아나운서:
준비하시면서 부담도 좀 많이 되셨을 것 같은데 이번에는 어떤 시간 보내셨습니까?
 
◆ 전기천 장로:
많은 분들이 그런 것 같아요. 힐링을 한다 하는 생각을 가지고 여행 가는 마음으로 생각을 가지고 처음에 참여를 했다가 이제 좀 실망하는 분들도 있고 좀 부담스러워하는 분들도 있고 이제 그렇거든요.
그런데 이번에 강경 같은 경우에는 코스 중에 산과 언덕도 있고 올라가셔야 되죠.
정말 계단도 잘 오르시고 철저하게 그 인솔자의 인솔에 따라서 움직이시는 걸 보고 처음보다는 많이 관심을 깊게 가지게 되셨구나 그런 부분을 경험을 했던 것 같아요.
 
◇ 서경희 아나운서:
그러셨군요. 지금 우리 그 교회에서 성지 순례를 벌써 3년째 하고 계시다고 합니다.
처음에 어떻게 시작하게 되셨어요?
 
◆ 전기천 장로:
저희 교회 담임하시는 장경근 담임 목사님의 권유로 기획을 하고 준비를 하게 됐어요.
그래서 처음에 다녀온 곳이 저 멀리 증도에 문준경 전도사님 그 사역지를 1박 2일 코스 다녀오면서 순교자의 교회 등 여러 교회들을 이렇게 돌아보고 오게 되는 그 1박 2일 코스를 다녀오게 됐습니다.

태평중앙교회 전기천 장로(좌)와 장경근 담임목사(우). 전기천 장로 제공태평중앙교회 전기천 장로(좌)와 장경근 담임목사(우). 전기천 장로 제공 
◇ 서경희 아나운서:
그러셨군요. 이때 좀 아무래도 처음이었을 텐데 같이 가신 분들 반응이 좀 어떠시던가요?
 
◆ 전기천 장로:
저는 이제 주일학교 부장 때 아이들하고 한번 여기를 다녀온 적이 있었고요.
네 그때는 이런 시설들이 좀 이렇게 부족했던 것 같아요.
근데 답사하러 가서 보니까 이제 너무 그 숙소도 잘 이용할 수 있게끔 해 놓았고 그다음에 안내 표시도 잘 되는 그런 모습들을 보고 또 전국에서 많은 청소년들이 와서 이렇게 직접 보고 기도하고 가는 모습들을 많이 봤어요.
그리고 우리 성도님들께서는 이제 말로만 듣던 것을 실제로 눈으로 보고 듣고 하게 되니까 굉장한 감동을 경험했던 것 같아요.
처음이었는데 그랬던 것 같아요. 근데 좀 이 코스가 난코스도 있어서 나이 드신 분들은 그 산 꼭대기에 있는 그 기도처 같은 데는 못 올라가시고 영상으로만 보고 그랬던 경험이 있습니다.
 
◇ 서경희 아나운서:
신안군에 있는 문준경 전도사님이 만드신 기도처, 저도 그 기도처에 올라간 적이 있는데 거기 상당히 조금 가파르죠. 그래도 또 이제 나름의 은혜가 있는 장소인데 성도님들 모시고 다녀오셨어요.
장로님 그 앞에 이제 소개를 직접 해 주셨지만 기독교 역사 연구 아무래도 이제 호기심 갖고 관심 갖게 되신 어떤 시기가 있으실 것 같아요. 언제쯤이십니까?
 
◆ 전기천 장로:
한 제가 25년쯤 됐을 것 같아요. 국내에서가 아니라 어떤 영성 훈련 프로그램에서 중국의 일부 지역을 가게 됐는데, 존 로스(John Ross, 1842년~1915년, 스코틀랜드 출생, 최초로 성서를 한국어로 번역) 목사님이 개척한 동관교회를 가서 이렇게 한글 번역해서 성경을 보급했던 장소를 보게 되었고, 그 다음에 윤동주 시인의 외삼촌인 김약연 목사님의 대성학교, 지금의 명동중학교가 있는 명동촌 지역을 돌아보게 됐어요.
그때는 큰 어떤 관심을 가지고 갔던 것이 아닌데, 거기서 "아, 저분들이 민족의 어떤 우리 의식을 깊이 심어준 계기가 되었구나." 하고 알게 됐습니다.
그 당시만 해도 일반 기록에 김약연 목사님이 윤동주 시인의 외삼촌이란 기록은 없었는데요.
제가 여러 자료를 보다 보니까 윤동주 시인이 김약연 목사님의 외조카라는 것이 분명하더라고요. 그래서 제가 여러 곳에 물어보고 확인했던 그런 경험이 있었는데, 과연 그 분들은 어떤 삶을 사셨건 걸까 충격을 받은 것이 김약연 목사님의 그 작은 동상 밑에 그런 글이 써 있더라고요.
 
"내 삶이 유언이다."
이 유언처럼 살아가는 그런 삶의 모습을 우리 민족의 지도자다운 그런 기록이 써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런 감동을 받은 후에 이제 기회가 있을 때마다 이제 집중적으로 찾아보고 연구를 시작하게 됐습니다.
 
◇ 서경희 아나운서:
그러면은 그 이제 내가 좀 궁금하다 하면 직접 이제 발품을 팔아서 가신 거죠?
시간을 내서 그 장소에 직접 가보고 또 들어보고 자료를 모으고 이렇게 해 오셨는데, 직접 다녀보신 곳 중에 이곳은 좀 보존이 잘 되어 있어서 좀 소개를 하고 싶다 하는 그런 선교지가 있으셨어요?
 
◆ 전기천 장로:
최근에 본 것 중에 추천하고 싶은 곳은 대구 청라 언덕의 제일교회, 구 기독교 박물관이 이렇게 온도라든가 일조권이라든가 그런 거를 잘 해 놓았고, 이렇게 채광이 잘 돼서 유물들도 보존이 잘 돼 있는 그런 관리하는 모습을 보게 되었고요.
또 대구시에서 그걸 직접 관리하고 지원한다는 그런 이야기를 듣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시 차원에서 관리도 하고 국가 차원에서 지원을 받아야 되지 않는가 저 혼자 개인적으로 생각했는데 그 뒤에 이제 저희 교회가 여름 수양회를 통해서 공주제일교회 기독교역사박물관을 가게 되었어요.
 
그 소개하는 박 목사님의 이야기를 듣고 제가 개인적으로도 여쭤본 그런 일이 있었는데, 모든 것이 온도나 습도나 그런 조절을 통해서 보존에 힘쓰고, 유물이라고 할 수 있는 기록들을 지키는 것을 보고 우리 후대의 기독교의 자녀들한테 저런 걸 끝까지 보게 해주려면 저런 자료나 기록들을 정말 앞으로도 계속해서 그대로 보존해야 되지 않겠는가 그런 생각을 했고요.
한 군데는 강경성결교회, 강요한 담임 목사님이 시무하시는 교회에 구 한옥교회가 있는데 정말 그곳은 이렇게 잘 보존되어 있고 또 강요한 목사님이 방문객마다 스크린을 보며 영상을 자세하게 설명해 주는 그런 과정을 보면서 아 이렇게 잘 된 곳도 있구나 느끼게 됐습니다.

◇ 서경희 아나운서:
아무래도 해당 교회의 목회자분들이 관심 갖고 있는 것이 굉장히 중요하고, 직접 또 설명을 해 주시면서 이렇게 또 관람객들을 맞이하고 계시군요.
지금 공주제일교회 기독교박물관의 학예사이신 박계영 목사님 소개를 해 주셨는데, 얼마 전에 도 '오후의만나'에 출연해 박물관에 대해 자세히 설명해 주신 적이 있습니다.
지금 공주 얘기도 해 주셨습니다만, 대전 충남지역의 선교 유적지들 가운데 중요도 면에서 봤을 때 굉장히 중요하다 싶은 장소가 있습니까?

한남대학교 내의 선교사촌. 전기천 장로 제공한남대학교 내의 선교사촌. 전기천 장로 제공 
◆ 전기천 장로:
제가 저희 목사님께도 말씀을 드리고 이제 추천을 했는데요.
한남대학교에 이제 인돈 선교사의 유적, 선교관 마을이 보존되어 있는데요. 거기에 이제 송현강 교수(문학사, 한남대 탈메이지교양대학 교수, 인돈학술원 연구위원)님을 우연히 만난 기회가 있었습니다.
그래서 구석구석을 정말 잘 설명해 주시는 모습을 제가 보고 참 감사한 마음에 지금도 교제를 나누고 있거든요.
그래서 대전 충남이 사실은, 특히 대전시에 그런 어떤 유적이 많지 않은데 저희 교회도 그 곳을 가 보지 못했어요. 그래서 제가 목사님께 이제 송 교수님하고 교재 내용을 말씀드리면서 주일날 오후에 시간이 날 때 우리 청년부라도 한번 이동해서 갔으면 좋겠다 하고 우리 송 교수님한테는 제가 허락을 받아놨습니다.
 
또 특히 유진벨 선교사님의 4대째 이어지는 한국 사랑과 가족사에 대한 이야기도 정말 잘 알고 계시고, 무엇보다도 대전 유성, 충남 공주 이쪽 지역의 선교 역사에 대해 아무 원고도 보지 않고 구석구석을 정말 잘 소개해 주시는 분이시더군요.
그래서 저런 분들이 이제 나이가 드시면 우리가 그 이야기를 들을 수 있는 사람이 없어져 버리는데 어쩌나..하는 아쉬움의 그런 혼자만의 생각을 했었고요.
강경을 다녀오면서 강경의 침례교회의 시작점이 되는 '최초의 'ㄱ'자 교회' 교회가 옥녀봉에 있습니다. 그거를 토대로 서울로 옮겨갔던 한국침례신학대학교가 대전에 생기게 된 배경이 됐고, 교단 초대 감독을 지낸 말콤 선교사나 폴링 선교사님을 통해서 그 침례교회의 시작이 됐다는 걸 알 수 있습니다. (기독교한국침례회 최초 교회에서 1906년 전국 31개 교회가 참여한 침례회 최초 총회를 개최하였으며 당시 개설한 성경학교는 현재 대전에 있는 침례신학대학으로 발전-해당 장소의 안내 글 참조)
 
그런 말씀이 기록된 거를 보고 우리 충남 지역에는 그리 많지 않지만 그래도 역사적으로 참 크게 증명할 수 있는 자료들이 많고, 당시 강경성결교회 주일학교 김복희 선생님과 어린이들이 신사 참배를 거부한 사건 등 어떤 불굴의 의지, 민족 정신까지 심어줄 수 있는 그런 시작점이 아니었나 그렇게 생각이 듭니다.

강경성결교회의 '최초 신사참배 거부 선도 기념비'. 전기천 장로 제공강경성결교회의 '최초 신사참배 거부 선도 기념비'. 전기천 장로 제공 
◇ 서경희 아나운서:
그렇군요. 강경 또 한남대, 이렇게 소개를 해 주셨는데 한남대 선교사촌은 우리 일반 성도님들이 그냥 가도 볼 수 있나요?
 
◆ 전기천 장로:
대부분 문이 안 열려 있고요. 그런데 많이 오십니다.
전국에서 저도 이제 몰랐는데 많이 오시는데 저는 이제 무작정 한번 갔는데 공부하는 시간이었어요. 송 교수님이 내부에 계시다 깜짝 놀라서 이제 소개를 드렸더니 시간을 내주셨어요.
 
◇ 서경희 아나운서:
내부는 좀 보존이 돼 있나요?
 
◆ 전기천 장로:
네, 잘 보존돼 있습니다. 그 많은 어떤 서적이라든가 기록들이 있구요. 장소가 좁을 정도로 쌓여 있는 모습들을 확인했습니다.
 
◇ 서경희 아나운서:
그러시군요. 이제 그 선교사님들이 사용하셨던 어떤 물품이나 책이나 이런 것들이 잘 보존이 되어 있군요.
진짜 지금 말씀을 들어봐도 전국에 좀 어떤 이런 선교지가 있다 하시면 발 벗고 이렇게 나서셔서 가셔서 이렇게 자료도 찾아보고 만나보고 하시는데, 최근에 가깝게 교제하고 영향 받으신 역사 연구가 있으세요?
 
◆ 전기천 장로:
거의 일주일에 한 두 번씩 그 연구하는 내용들이라든가 이런 거를 보내주시는 대신신학연구원의 이종전 교수님이 계십니다. 그 교수님께서 제가 이제 여러 가지 궁금한 거를 여쭤보니까 당신이 그동안에 쓴 책에 대한 연구, 그 다음에 그 강화도에 대한 여러 가지 기록들, 인천 제물포에 대한 사연들을 우리가 그 일반 책에 나오지 않은 그런 이야기들을 전해 주셨는데, 제가 거의 매달리다시피 좀 귀찮게 많이 했어요.
그런데 그거를 그대로 받아주셔서 아 이 사람 정말 궁금해서 묻는 거구나 생각하신 거 같아요. 수시로 저한테 연락을 주시고 자료를 이렇게 좀 제공해 주시고 있고요.
 
그 다음에 설기현 박사님이라고 양화진에서 한 10년 동안 묘지 해설하신 교수님이 계세요.
그 교수님이 이제 저하고 서울에서 공부할 때 만난 교수님인데 시간 날 때마다 당신이 새롭게 발굴하는 자료, 서울 사대문 안에 있었던 여러 가지, 그 동안에 발굴하지 못한 자료를 발견하게 되면 제가 꼭 발견한 것처럼 이렇게 저한테 연락을 주시고 그래서 정말 감사하게 그렇게 보고 있습니다.
 
◇ 서경희 아나운서:
장로님께는 정말 24시간이 모자라실 것 같아요.
이렇게 받은 자료들 혹은 직접 가서 이렇게 좀 발견한 자료들, 장로님은 어떻게 보관 중이세요?
 
◆ 전기천 장로:
제가 이제 저는 거의 노트링을 합니다. 노트로 기록을 해서 큰 대학 노트가 아니고 수첩에 노트를 해서, 그때 그때마다 제가 기록을 쭉 하고, 이제 저만이 기억할 수 있도록 시간이 가면 무슨 얘기였지 그렇게 모르니까.
그때 이제 상황을 보고 이거는 내가 어디에서 나온 몇 페이지이다 그걸 표시를 해서 확인할 수 있는 그 기록들을 찾아서 노트를 한 것이 대여섯 권 정도 되구요.
최근에는 그거를 하나 하나 다시 정리하고 있습니다.
 
◇ 서경희 아나운서:
손으로 써서 하고 계신 거예요. 이게 보통 일은 아닐 것 같다는 생각도 들고, 앞으로 이것들을 좀 공개해서 전시회를 여신다든지 책을 좀 만들고 싶다 뭐 이런 계획이 있으세요?
 
◆ 전기천 장로:
우리 담임 목사님께서 먼저 그 말씀을 하신 것 같아요.
한번 책 같은 거 낼 생각 없는가 이런, 그러니까 주변에 그 권면을 한두 번 제가 받았는데 실제로 뭐 지금 보면은 책으로 구입을 하려면 얼마든지 구입해서 볼 수 있고 자료들을 볼 수가 있는데 저는 그것보다도 이렇게 한 번 보면 밤을 새서라도 참 보고 싶은 그런 책이 있잖아요.
저희가 어떤 선교사님들의 어떤 간증집 같은 거 보다 보면 막 밤을 새서 보잖아요.
그런 어떤 뒷이야기, 활동했던 이야기보다는 그 어떤 선교사님이나 우리 목사님이나 그런 분들의 살아오게 된 한국에 오게 된 배경 또 한국에서 선교를 하게 된 그런 배경의 뒷이야기들을 찾아서 기록하고 싶었어요.
 
그래서 이제 뭐 예를 들면 길선주 목사님이 왜 시력을 잃게 되었는가,, 그런 이야기들, 또 이기풍 목사님 같은 경우는 왜 선교사에게 돌을 던졌고 하필이면 턱을 맞아 흉터가 남았을까..이런 이야기들이 궁금해서 찾아보니까 실제 자료들이 남아 있었어요.
그래서 그런 쪽에 책을 제가 좀 쓰고 싶어서 그런 쪽에 노트링을 좀 많이 하고 있는 쪽입니다.
 
◇ 서경희 아나운서:
그러시군요. 집에 계시면 뭐 이 자료들 좀 정리하시고 노트 하시고 필기하시고 시간이 없으실 것 같은데 가족들의 반응은 어떠세요?
 
◆ 전기천 장로:
제가 이제 오늘도 조금 일찍 일어나서 이렇게 정리를 하는데 가장 집중할 수 있는 시간, 다른 생각 없이 집중할 수 있는 시간들이 저만의 공간이고 그런 시간이었던 것 같고 제가 재미가 없고 실증이 났다면 제가 학교 다닐 때 역사 공부를 잘했던 사람도 아닌데 처음에 말씀드린 것처럼 정말 하나님의 은혜로 이렇게 집중할 수 있었다 말씀드리겠습니다.
정말 재미있게 어떤 자료가 있으면 정말 끈질기게 찾아봤던 것 같아요.

AI 생성 이미지AI 생성 이미지 
◇ 서경희 아나운서:
우리 장로님께서 이 기독교에 잘 알려지지 않은 어떤 이야기들 스토리들, '야사(野史)'라고 할 수도 있을 것 같은데 이런 데 좀 관심이 많으시다고 하셨는데 오늘 좀 소개해 주실 얘기가 있다고 합니다. '평양 신학교 출신 7인의 목사'에 대해서 좀 소개해 주신다고 하는데 어떤 분들이셔요?
 
◆ 전기천 장로:
7분의 목사님들 얘기는 이 시간에 다 할 수는 없고요.
이제 한석진 목사님인데, 그 기록을 보다 보니까 한 목사님은 실제로 3학년에 편입을 하셨더라고요.
신학교 1학년에 들어가신 게 아니라 편입을 하셨어요.
그래서 선교사님들의 조사 역할을 쭉 해오다가 편입을 하신 것 같고요.
그 동안에는 보면은 평양신학교가 다니기에 만만한 학교는 아니었다.
너무나 힘들고 어렵고 그래서 한문을 철저히 다 알아야 되는 그런 과정이었기 때문에, 정말 아주 우수한 그런 분들이 다녔던 학교라고 이제 기록을 하고 있고요.
또 이제 길선주 목사님 같은 경우에는 예수 믿기 전에 국선도의 대가여서, 그렇게 기록이 돼서 어느 정도였느냐 그러니까 황동 항아리를 찌그러뜨릴 정도, 뭐 웬만한 담장은 뛰어넘을 수 있는 그런 능력을 갖춘, 또 차력도 했던 그런 목사님이라고 기록이 돼 있는데 저기 경북의 봉화 척곡교회나 제임스 게일(Gale, James Scarth) 선교사님이 시무하셨던 서울의 연동교회나 그 기록에 보면 부흥회를 한 번 가시면 한 일주일을 하셨던 기록들이 나옵니다.
실제로요 그래요. 막 연장에 연장을 해 가지고 그러면서 많은 분들이 영성의 대가였다 이렇게 기록이 돼 있습니다.

또 이기풍 목사님은 정말 사연이 참 많잖아요. 제가 초중등부 부장을 할 때 아이들하고 같이 제주도 이기풍 목사님 기념관을 갔었는데요. 풍랑주의보가 내렸는데도 아이들과 어렵게 배를 타고 그 기념관을 찾아갔던 기억이 나요. 거기에서 나오는 날 관리하는 안수지 집사님께서 저한테 봉투를 하나 주셨는데 그게 뭐냐 하면 이사례 권사(이기풍 목사의 막내딸) 한테 윤함애 사모(이사례 권사의 모친)가 준 10가지의 그 기도 제목의 편지였어요.
 
◇ 서경희 아나운서:
편지를 주셨어요?
 
◆ 전기천 장로:
그러니까 복사본이죠. 하나님께 어떻게 대하라 그분의 말씀을 거역하지 말아라, 뭐 이런 내용의 10가지 기도 제목인데, 그때 같이 동행했던 우리 교사 선생님들한테 한 장씩 나눠주고 은혜를 나눴습니다.
그런데 우연하게 제가 중국에 이제 단기 선교를 갔었는데, 저 구석에서 한국 사람들이 이야기를 나누는데 이기풍 목사님 이야기를 하는 거예요.
그래서 제가 가서 자세히 질문을 하니까, 그 나이 드신 분이 이기풍 목사님의 바로 옆집에서 살았다는 이야기를 하시는 거예요.
그래 가지고 정말 우리가 들을 수 없는 어떤 어디에 기록이 없는 그런 이야기들을 듣게 되는 그런 시간도 있었거든요.
전라남도 쪽에 오가면서 목회를 또 선교 사역을 감당했던 목사님으로 기록이 되고요.
 
잘 아시는 서경조 목사님은 서상륜 장로님의 동생이잖아요.
서상륜 장로님은 존 로스 목사님의 번역한 책 6백 권을 인쇄해서 제물포로 들여오다가 발각되는 그런 일이 있었거든요.
그 다음에 당시 관료인 묄렌도르프의 부인에게 편지를 보내어 그걸 그대로 통관하게 되는 과정도 있는데요. 서경조 목사님과 서상륜 장로님을 통해서 황해도에 최초로 우리 민족이 만든 교회가 세워지는 그런 거를 우리가 여러 자료들을 쉽게 볼 수 있는 그런 일이 있었어요.
그래서 특별히 정말 우리가 지금으로서는 상상할 수 없는 정말 능력 있는 그런 목회자들이었지 않았는가 그렇게 생각이 됩니다.
 
◇ 서경희 아나운서:
그러시군요. 장로님께서 이 7분의 그 이름을 외울 수 있는 쉬운 방법을 알려주셨잖아요.
우리 청취자들께도 좀 알려주세요.
 
◆ 전기천 장로:
제가 저는 이제 어떤 거 외우려고 하면 안 되고 그런 부분들이 있는데, 그때 그때 따라서 이름으로 인용을 많이 했는데, 이 분들의 성이 한 씨, 양 씨, 송 씨, 서 씨, 방 씨잖아요. 성만 쭉 합치면 '한양 송 서방'이잖아요.
한양에는 송 서방만 있는 건 아니지만… 그 다음에다가 이기풍, 길선주 목사님 성을 따서 '이 길' 하면은 이렇게 외울 수 있겠다 그래서 제가 쉽게 어디 가서 설명할 때 머리에 기억을 합니다.
'한양 송 서방 이 길' 이렇게 기억을 해서 평양신학교 7인의 졸업생의 이름을 기억합니다.
 
◇ 서경희 아나운서:
이렇게 외우시면 조금 더 쉬울 것 같아요. 알겠습니다.
우리 듣는 분들이 오늘 또 새롭게 또 또 기억하게 되셨을 것 같아요.
이 분들의 발자취를 따라가고, 선교 역사를 또 이렇게 외워가고 이러시면서 많이 또 영향을 받으셨는데 이 분들의 이야기가 지금 우리 현 시대 믿고 있는 우리 성도들에게 주는 메시지가 분명히 있을 것 같거든요. 뭐라고 생각하세요?
 
◆ 전기천 장로:
우리가 할 일은 그 사도행전에 땅 끝까지 복음을 전하라 하셨는데 그게 아닐까 싶어요.
저는 하나님의 명령이다 생각하는데요. 첫 번째로 목적을 둬야 될 목표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그 유명한 많은 분들이 알고 있지만은 그 맹인 백사겸 전도사도 그 눈에 보이지 않지만 자기 아들을 통해서 성경을 읽어줄 때 점자가 없을 당시에 읽어줄 때 그거를 다 외우게 되었고 결국은 지역마다 다니면서 하나님의 복음을 전하는 그런 역할을 감당하지 않았는가 그렇게 생각해요.
 
그래서 하나님의 명령, 사도행전의 말씀은 생명이고, 우리가 앞으로 예수를 믿는 사람이 나아가야 될 그 길이 아닌가 그렇게 생각이 됩니다.
 
◇ 서경희 아나운서:
아 그러시군요. 선교 역사, 기독교 역사에 많은 분들이 조금 더 관심 가질 수 있도록 우리 또 직접 연구하고 계신 장로님께서 한 말씀 전해 주신다면요?
 
◆ 전기천 장로:
전국을 이렇게 많이 돌아다니다 보면은 특히 이제 전주의 서문교회 역사 자료들을 정리하는 과정 중에 일일이 라벨을 붙여 정리해 놓으신 것을 봤어요.
정말 많은 자료였어요. 저거를 어떻게 보존할까 싶었는데, 공주제일교회나 대구 청라 기독교박물관처럼 그렇게 보관할 수 있으면 좋겠다 생각이 듭니다.
'성경과 5대 제국'을 쓴 저자 조병호 통 박사님의 책을 내용을 보다 보면은 그런 내용이 나옵니다.
영국 대형 박물관을 방문했던 기록이 나오거든요.
조 박사님의 표현에 의하면 많은 나라에서 가져온 어떻게 보면 탈취했다고 볼 수 있겠죠.
가져왔던 그런 유물들이 정말 대형 박물관에 그 날씨나 습도나 조건에 맞춰서 너무나 잘 보존돼 있다.
그래서 원래 있던 곳에 놔뒀다면 저게 과연 지금까지 남아 있었을까 그런 생각을 했대요.
 
조 박사님의 표현에 의하면 그래서 우리나라도 개신교 한 4~50년의 그 역사의 자료들이 실제로 그 중요한 사진들, 조선의 역사들을 보면은 지금도 미국이나 캐나다에서 그 사진이 들어오고 있잖아요.
흑백 사진들이. 이제 우리도 바뀌고는 있는데 그런 기록들을 잘 보존하려면 우리나라에도 각 지역 지자체에서라도 그런 장소를 지원해서 만들어야 되지 않을까 소장하는 물건들을 잘 품을 이렇게 보관할 수 있어야 하지 않을까 그런 생각을 해봤습니다.
 진안 지역 최초로 1901년 세워진 배넘실교회. 전기천 장로 제공진안 지역 최초로 1901년 세워진 배넘실교회. 전기천 장로 제공
◇ 서경희 아나운서:
네 보관이 중요하다는 얘기세요. 정말 의식 있는 많은 분들의 노력으로 이런 게 좀 이루어졌으면 좋겠고 우리 성도님들 한 사람 한 사람이 바로 또 그 주인공이 되셨으면 좋겠습니다.
장로님 좀 앞으로 여기는 좀 꼭 가봐야겠다 하는 어떤 국내 선교지 있으세요?
 
◆ 전기천 장로:
작년 여름에 제가 무주, 진안, 장수를 돌아보고 왔어요.
그쪽은 그 당시에 미국의 남장로교회가 지원했던 곳이잖아요.
그런데 시 한복판에다가 스테이션을 세워 놓고 시내에서 선교 활동을 먼저 시작한 것이 아니고 사람이 잘 들어갈 수 없는 가장 오지로 들어가서 시작하고, 점차 시내로 이렇게 나왔던 그런 기록들이 있더라고요.
그래서 지난해 제가 진안의 배넘실교회라는 데를 이제 갔었는데 지금도 아주 낙후된 곳이었어요.
거기에 제가 이제 95세 된 그 장로님을 만나서 교회의 역사에 대한 뚜렷한 기억을 말씀 들었던 기억이 나고 그 장로님이 교회에서 팔아서 헐어버리려고 하는 초가 한옥의 교회를 당신이 구입을 해서 소유중인데요. 교회 안에다가 빨래를 널어 놓는 등 개인적으로 관리가 어려운 것을 볼 수 있었습니다.

진안 배넘실교회의 구 성전인 한옥 교회가 개인 소유로 남아있다. 전기천 장로 제공진안 배넘실교회의 구 성전인 한옥 교회가 개인 소유로 남아있다. 전기천 장로 제공
그런데 그 장로님이 신사 참배를 거부해서 할아버지와 아버지와 같이 그 연해주로 피난을 갔다가 연해주에서 선교사님의 도움을 받고 신앙생활을 하다가 다시 해방을 맞아서 돌아와서 살고 있는 그런 과정을 설명해 주셨어요.
그러면서 그 초가에 사각형으로 된 교회 건물을 보여주고 설명을 주셨는데 그런 기록들을 우리 교계가 이렇게 보존해야 되지 않을까 해요. 그냥 허물어지면 실제로 지금 우리나라에 남아 있는 한옥 교회, 그러니까 김제 'ㄱ'자 교회'와 익산의 성당면에 있는 두동교회만 지금 사용되고 나머지는 거의 유명무실하게 사용이 안 된다든지 폐가 상태로 있는 교회가 대부분이거든요.
그리고 이제 사각형 교회는 좀 남아 있습니다.
사각형 교회는 실제로 운영되고 있는 교회가 영천의 좌천교회라든가 아까 말씀드린 봉화의 척곡교회는 실제로 예배를 드리고 있는 교회로 지금 남아 있습니다.
 
그리고 제 개인적인 욕심은 일본에서 성경 번역을 철저하게 도왔던 전라남도 옥과 출신의 이수정 선생의 일본에서의 그 4년 동안의 행적들을 제가 실제로 눈으로 보고 확인하고 싶은 그런 욕심이 있습니다.
그래서 기회가 되면 그쪽에 한번 방문을 하고 한번 돌아보고 싶은 그런 마음이 있습니다.
 
◇ 서경희 아나운서:
연구하고 싶은 그런 인물들도 있으시군요. 참 이렇게 열심이신 우리 장로님의 이야기를 들으니까 많은 분들이 정말 우리 선교 역사 더 관심 갖고, 또 이제 향후에 책을 또 내신다면 아마 많은 분들이 또 찾아보시면서 도움을 받지 않으실까 이런 기대도 하게 되네요.
오늘 방송에서 다양한 얘기들 나눠 봤는데, 청취자들께 나누고 싶은 기도 제목 혹시 있으세요?
 
◆ 전기천 장로:
제가 한 몇 년 전에 모로코를 통해서 우간다에서 선교 사역을 했던 한 선교사님을 만났는데 한 20여 년 동안에 200여 개 넘는 교회를 세우시고 그 다음 분에게 인수인계를 하고 지금 한국에 와서 사역하시는 한 선교사님을 만났는데 젊어서 선교지로 떠나 청춘을 다 바친 거잖아요. 제가 정말 감동을 받았어요.
그 분이 한국에 나왔는데 "혹시 양화진에 가보셨습니까?" 물으시는 겁니다.
그래서 몇 번 가봤다고 말씀드렸더니 그 선교사님 하시는 말씀이 저는 양화진에 계신 분들의 빚을 갚으러 갔습니다.
그 말씀을 하시더라고요. 제가 그 얘기를 듣고 좀 마음이 살짝 울컥했어요.
 
자기 평생의 청춘을 바쳐서 자녀들도 있고 한데 모로코를 거쳐서 알려지지 않는 그 아프리카 우간다에서, 그것도 우간다의 공항이 있는 엔테베 지역이 아니고 거기서 한 6~7시간 비포장 도로로 가야 하는 오지입니다. 거기에 2백여 개가 넘는 교회를 세우면서 오직 양화진을 생각하며 우리 민족을 위해서 생명을 바쳐 복음을 전한 그분들의 그 빚을 갚으러 왔다는 마음으로 이렇게 사셨던 분들도 있구나.
그분이 이정식 선교사님인데 그래서 지금도 그 분과 같이 교제를 나누고 있어요.
 
그래서 우리는 늘 이렇게 이 땅에 살면서 예수 믿는 사람만큼은 빚진 자의 마음으로 기도하며 살아야 한다고 생각해요. 이 땅 선교지에서 낳은 자녀들이 아버지 어머니의 고향도 가보지 못하고 풍토병으로 양화진에, 대구, 광주, 전주에 묻혀 있는 저들을 위해서라도 우리가 빚진 마음으로 기도하며 그들을 기억하며 살아야 되지 않을까 그런 생각을 늘 하고 있습니다.
 
◇ 서경희 아나운서:
네, 알겠습니다. 오늘은 우리 기독교의 선교 역사를 발굴, 연구하고 스토리를 찾아가고 계신 태평중앙교회 전기천 장로님과 얘기 나눠봤습니다.
앞으로의 사역도 응원하겠습니다. 마지막은 우리 장로님의 찬양 신청곡 529장 '내 주여 뜻대로'를 함께 듣겠습니다. 귀한 시간 내주셔서 감사합니다.
 
◆ 전기천 장로:
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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