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파고의 아버지' 데미스 하사비스 구글 딥마인드 CEO(사진 왼쪽)와 신진서 9단이 특별 대국을 벌이고 있다. 동규기자10년 전, 신의 창조물 중 가장 바둑을 잘 두는 인간(이세돌 9단)과 인간이 만든 기계 중 바둑을 가장 잘 두는 인공지능(AI) 알파고(AlphaGo)의 대국이 열렸다. 이 세기의 대결 승자는 알파고였다.
10년 후, 현 인류 중 가장 바둑을 잘 두는 신진서 9단과 '알파고의 아버지(개발자)' 데미스 하사비스 구글 딥마인드 CEO가 알파고 대국 10주년을 기념해 만났다.이들은 29일 오후 서울 웨스틴 조선호텔에서 열린 '알파고 10년 : 위대한 동행(A Decade with AlphaGo : An Extraordinary Journey)' 행사에 참석해 특별 대국을 벌였다.
하사비스가 흑을 잡은 이날 대국은 10분간 펼쳐졌다. 짧은 시간의 상징적 경기였지만, 수는 예리했다. 하사비스는 AI의 대표적 수법인 삼삼(3‧三)침입을 선보였다. 신진서는 알파고가 이세돌과의 대국(2국)에서 보여준 혁신적인 '37수'와 유사한 수법(18수)으로 응수했다. 탐색전이 끝날 무렵 29수에서 대국은 마무리됐다.
'알파고의 아버지' 데미스 하사비스 구글 딥마인드 CEO와 신진서의 특별 대국에 많은 취재진이 몰렸다. 동규기자
대국 후 신진서는 "(하사비스가) 알파고의 아버지답게 AI적 기풍으로 바둑을 뒀다"며 "프로 시합인 듯했다"고 너스레를 떨어 관중들의 폭소를 자아냈다. 하사비스는 "겁이 날 정도로 (신진서의) 파워가 느껴졌다. 알파고의 도움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고 화답해 다시 한번 웃음을 선사했다.
이들은 이어진 인터뷰에서 10년 전 AI의 창의성의 상징으로 여겨진 '37수'와 신의 한수로 평가 받는 이세돌의 '78수'에 대한 의견을 나눴다.
'37수'는 상대 돌을 5선에서 어깨를 짚으며 중앙 모양을 키운 수다. 이전 인간 바둑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새로운 수였다. '78수'는 중앙 전투에서 이세돌이 알파고의 흑돌 사이에 끼운 수다. 알파고는 이 수에 버그를 일으키며 악수를 연발하다 처음으로 항복을 선언했다.
10년 전 AI의 창의성의 상징으로 여겨진 '37수'에 대한 의견을 밝히고 있는 데미스 하사비스(사진 왼쪽). 동규기자
신진서는 '78수'에 대해 "AI의 계산에서 벗어난 인간의 묘수"라며 "지금도 AI를 흔들 수 있는 수가 존재한다고 생각한다. (나 역시) 그런 수를 둔 적도 있다"고 전했다. 이어 "AI도 (아직) 바둑의 정답을 한참 알아내지 못하고 있는 만큼, 인간과 협력해 정답을 알아내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그는 다만 "당시는 그 수(78수)가 알파고를 흔들어서 이세돌 선배가 승리했지만, 지금은 AI가 워낙 강해졌고 더 강해질 것이기에 승리까지 이어지지 못한다는 점이 가장 크게 바뀐 점"이라고 평가했다.
하사비스는 "신진서의 의견에 완전히 동의한다. '78수'는 신의 한 수로 큰 감동을 줬다"며 "그런 창의성이 있어야만 한다"고 되돌아봤다. 이어 "AI는 여전히 바둑과 같은 게임을 만들지 못한다"며 인간 창의성의 위대함을 강조했다.
그는 '37수'에 대해서는 "AI가 창의적 불꽃을 일으킨 수였다"며 "이런 것(AI의 창의적인 수)이 질병 치료나 신약 개발에도 기여하길 기대한다"고 밝혔다. 신진서도 "1국에서 알파고의 실력에 충격을 받은 상태에서 2국의 37수는 상당히 창의적인 수라고 생각했다"고 공감했다.
신진서 9단(사진 왼쪽)과 데미스 하사비스가 친필 사인을 한 바둑판을 들어보이고 있다. 동규기자하사비스는 이날 AI의 비전 등에 대해서도 언급했다. 그는 "이세돌과 알파고의 대국이 현대 AI의 출발점이었다"며 "알파고에 바둑을 가르치는 데 오랜 시간이 걸렸지만, 이런 아이디어를 통해 과학이나 의료쪽으로 AI가 확장됐다"고 밝혔다.
이어 "10년 후에는 (AI를 통해) 정말 중요한 의학계의 발전이 이루어졌으면 한다"며 "암 같은 질병에 대한 치료제가 개발되고 로보틱스 산업도 훨씬 발달할 듯한데, 한국이 핵심이 될 것 같다"고 전망했다.
한편 이날 행사에서 한국기원은 하사비스 CEO에게 아마추어 7단증을 수여했다. 하사비스는 한국기원에 알파고 대국의 기보가 담긴 큐브를 선물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