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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과 사는 남자' 엄흥도는 사실 '촌장'이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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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 주

책보다 영상으로 역사를 배우는 시대라고들 말합니다. 사극 영향력이 날로 커지는 이유겠죠. 무려 1천만 관객을 넘긴 영화 '왕과 사는 남자'만 봐도 그래요. 물론 역사는 '과거'입니다. 그러나 '지금'을 비춥니다. 그리고 '미래'로 향하죠. 그래서 우리는 역사를 배웁니다. 우리 시대 사극의 길을 역사학자들에게 물었습니다.

[사극에 바란다 ①] 역사학자들 눈에 비친 '호장 엄흥도'

영화 '왕과 사는 남자' 스틸컷. 쇼박스 제공영화 '왕과 사는 남자' 스틸컷. 쇼박스 제공
▶ 글 싣는 순서
① '왕과 사는 남자' 엄흥도는 사실 '촌장'이 아니었다?
(계속)

비운의 조선 왕 단종을 다룬 영화 '왕과 사는 남자'에는 명배우 유해진이 연기한 실존 인물 엄흥도가 주인공으로 나온다. 극중 엄흥도는 단종이 유배된 강원도 영월 청령포 마을 '촌장'으로 소개된다. 이는 엄흥도라는 인물의 역사적 실체를 오롯이 드러내지 못하는 호칭이라는 지적이 인다.

권기중 한성대학교 역사문화큐레이션트랙 교수는 "사실 엄흥도는 촌장이 아니라 '호장'으로 널리 알려졌다"며 "영화에서는 관객들이 알기 쉽도록 일부러 촌장으로 표현한 것 같다"고 전했다.

조선시대 마을 공동체를 연구해온 역사학자로서 권 교수는 "고려시대까지는 이른바 지방 수령이 곳곳에 파견되지 않았는데, 당대 국가 권력이 그만큼 지역에 깊이 침투하지 못했기 때문"이라며 "이렇게 수령이 파견되지 못한 곳에서 호장은 그 지역 관청조직 최고 행정관리자였다"고 설명했다.

이어 "조선시대 들어 중앙에서 지방으로 수령을 파견하면서 호장은 향리라는 중인으로 격하되는데, 단종 때까지는 완전히 중인으로 떨어지지 않고 각 지역 지배계층으로 남아 있었다"며 "이에 따라 고려시대 호족의 후손인 호장 엄흥도는 그 지역에서 실질적인 지배 계급이었을 것"이라고 전했다.

이상균 강릉원주대학교 사학과 교수 역시 "고려를 개국할 때 왕건을 도운 지방 호족들이 중앙에 진출해 고려 전기 권문세족으로 성장했고, 지방에 남은 호족들은 그 지역 행정을 장악했다"고 말했다.

강원 지역사 연구 등에 매진해온 역사학자인 이 교수는 "고려 말에 지역 호족들이 다시 신진사대부로 중앙에 진출했고, 그들이 조선 개국 이후 권력을 잡게 된다"며 "이때에도 지역에 남아 있던 호족들은 수령을 보좌하는 행정관리인 향리가 되는데, 그 향리의 우두머리가 호장"이라고 부연했다.

영화 '왕과 사는 남자' 스틸컷. 쇼박스 제공영화 '왕과 사는 남자' 스틸컷. 쇼박스 제공

"유학·성리학 접했던 호장…지역 지식인 계층"


역사는 사료 등 기록된 사실에 바탕을 둔 해석의 영역이다. 그 사실을 바라보는 시각에 따라 해석도 여러 갈래로 나뉘기 마련이다.

그래서일까, 엄흥도를 지칭하는 표현이 촌장이든 호장이든 큰 차이가 없다는 의견도 있다.

김근하 서강대학교 HUSS포용사회사업단 연구교수는 "엄흥도가 살던 시기에는 이미 촌장과 호장이라는 용어를 섞어서 썼다"며 "지금 우리가 교수를 '선생님' '학자' 등으로 다양하게 부르는 것과 마찬가지로 그 당시에도 여러 호칭으로 (호장을) 표현했다"고 말했다.

조선사 연구자로서 소현세자 죽음을 다룬 사극 영화 '올빼미' 자문을 맡기도 했던 김 교수는 "호장 엄흥도가 살던 때는 이미 고려시대로부터 삼사백년이 지난 시점인데, 지금 우리가 '양반의 후예'라고 말하더라도 그것이 실제 삶에 큰 영향을 끼치지 못하는 것과 마찬가지"라며 "엄흥도가 호족의 후예일 수는 있으나, 결국 당대 중인 계급으로 바라봐야 한다"고 짚었다.

권기중 교수도 "중앙에서 내려온 수령과 달리 호장은 그 지역에서 오래 살아온 장로처럼 대표로 세금도 걷었으니 촌장으로 봐도 틀렸다고 할 수는 없다"고 여지를 뒀다.

이어 "호장은 그 지역에서 유학·성리학을 공부한 지식인 계층으로서 충과 효 등 유교적 가치를 받들었을 것"이라며 "이에 따라 자신이 임금으로 모셨던 사람에 대한 충성심도 당연히 품고 있었을 것으로 보인다"고 전했다.

영화 '왕과 사는 남자' 스틸컷. 쇼박스 제공영화 '왕과 사는 남자' 스틸컷. 쇼박스 제공

단종과 겸상하는 엄흥도, 실제로 가능했을까


'왕과 사는 남자'를 본 사람들 사이에서 가장 분분한 의견을 낳는 설정이 있다. 바로 엄흥도가 유배 온 단종과 겸상하는 장면이다. 극중 엄흥도는 끼니를 제대로 챙기지 않는 단종에게 언성을 높이기까지 한다.

이상균 교수는 "사료에 나오지 않으니 의견이 분분할 수밖에 없다. 더욱이 단종이 노산군으로 강등된 상태에서 유배를 왔으니 그렇게 여겨질 수 있다"면서도 "아무리 단종이 강등돼 유배를 왔기로서니 실제로 엄흥도가 단종과 겸상할 수는 없었을 것"이라고 봤다.

김근하 교수 역시 "조선 후기를 기준으로 유배 갔던 사람들 일기를 보면 마을 사람들과 겸상한 경우를 종종 확인할 수 있다"며 "조선 왕 가운데 유배를 간 케이스는 단종과 연산군·광해군 정도인데, 기록에는 없지만 사실상 (단종과 엄흥도의) 겸상은 불가능했을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그는 "영화 '왕과 사는 남자'에 나오는 겸상 장면은 단종이 백성들과 교감하면서 각성하는 과정을 보여 주기 위한 장치로 여겨진다"고 분석했다.

다만 권기중 교수는 "유배 온 사람을 관리하는 일은 향리들이 맡았는데, 향리 가운데 우두머리였던 호장 엄흥도는 단종과 밀접한 관계였을 것"이라며 "유배인들이 내려오면 잘 데가 없으니 처음에는 주막 같은 곳에 있다가 향리들 집이나 향리가 구해 준 집에서 살았다. 이때 향리는 유배인들이 밥을 잘 먹는지 등을 살폈다"고 설명했다.

이어 "유배 온 단종이 거주지를 벗어났는지 감시하고 식사 등을 챙기는 총 책임자가 바로 호장 엄흥도였던 셈"이라며 "실제로 호장들은 수령과 겸상하기도 했으니, 영화 속 모습은 어느 정도 가능한 설정"이라고 전했다.

권 교수는 "결국 유배인들은 그 지역 호장들과 친해질 수밖에 없었는데, 다산 정약용은 유배인과 향리들 사이 교류를 한자 '귀양 갈 적' '사귈 교'를 써서 '적교'(讁交)로 표현했다"며 "이는 향리들이 중앙과 관계를 맺는 아주 기본적인 교류 방법이었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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