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합뉴스월급은 오르는데 생활은 나아지지 않는다. 성실하게 저축해도 자산은 제자리걸음이고, 통장 속 숫자는 그대로인데 살 수 있는 것은 해마다 줄어든다. 많은 이들이 체감하는 이 불안의 정체를 영국의 금융 전문가 롭 딕스는 단 하나의 질문으로 요약한다. "돈의 가격은 지금 얼마인가."
그의 저서 '돈의 가격'은 "왜 우리는 열심히 일하는데도 가난해지는가"라는 물음에서 출발한다. 저자는 그 원인을 개인의 소비 습관이나 투자 실패가 아닌, 우리가 살고 있는 화폐 시스템 자체에서 찾는다. 인플레이션, 금리, 부채, 통화 정책이 어떻게 맞물려 개인의 저축과 임금을 잠식하는지 구조적으로 해부한다.
롭 딕스가 이 질문을 본격적으로 파고든 계기는 2020년 팬데믹이었다. 정부와 중앙은행이 전례 없는 규모로 돈을 풀어내는 장면을 목격하며 그는 "돈을 이렇게 쉽게 만들 수 있다면, 왜 우리는 평생 돈을 벌기 위해 경쟁해야 하는가"라는 근본적인 의문을 품었다. 이후 그는 영국은행의 회의록과 수백 개의 경제 지표를 추적하며 돈이 만들어지고, 유통되고, 가치가 깎여나가는 과정을 집요하게 분석했다.
이 책이 지적하는 핵심은 단순하다. 문제는 '돈을 못 버는 것'이 아니라 '돈의 가치가 계속 떨어지고 있다는 사실을 인식하지 못하는 것'이다. 저자는 20년 전의 화폐가 현재 얼마나 큰 구매력을 잃었는지 구체적인 수치로 보여주며, 은행 예금만으로는 더 이상 자산을 지키기 어려운 시대에 접어들었음을 강조한다. 금리가 낮아서가 아니라, 인플레이션이라는 보이지 않는 손이 저축을 잠식하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흥미로운 대목은 은행과 대출에 대한 설명이다. 많은 사람들이 은행을 '저축된 돈을 빌려주는 중개자'로 이해하지만, 저자는 현대 금융 시스템에서 은행이 대출을 실행하는 순간 새로운 돈이 창조된다는 사실을 짚는다. 이 구조를 이해하지 못하면, 부채가 왜 시스템 전반에 누적되고 자산 가격이 왜 급등락을 반복하는지 설명할 수 없다는 것이다.
'돈의 가격'은 비트코인, 금본위제 폐지, 정부 부채 같은 주제를 다루지만 특정 자산을 추천하거나 투자 비법을 제시하지는 않는다. 대신 독자를 경제 시스템의 '피해자'가 아니라 구조를 읽는 '주체'로 세우는 데 초점을 맞춘다. 저자가 반복해서 강조하는 것도 "무엇에 투자할 것인가"보다 "왜 그 선택이 구조적으로 유리하거나 불리한가"다.
인플루엔셜 제공책의 후반부에서는 어떤 경제 환경에서도 흔들리지 않기 위한 7가지 원칙을 제시한다. 명목 수익이 아닌 실질 가치를 기준으로 사고할 것, 정부와 전문가의 서사보다 실제 정책과 숫자를 볼 것, 통제할 수 없는 미래 앞에서는 분산을 선택할 것 등이 핵심이다. 이는 단기 수익을 좇는 투자 조언이라기보다, 인플레이션 시대를 살아가기 위한 사고의 기준에 가깝다.
'돈의 가격'은 돈을 불안의 원인으로만 여겨온 독자에게 질문을 되돌려준다. 돈을 쫓기 전에, 돈이 어떤 규칙으로 움직이는지를 먼저 이해하고 있는가. 저자는 말한다. "돈을 이해하는 순간, 보이지 않던 세상의 질서가 비로소 선명해진다"고.
롭 딕스 지음 | 신현승 옮김 | 인플루엔셜 | 280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