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 대통령이 현정부 정부조직개편의 최대 관심 부처 중 하나인 기획예산처 장관 후보자로 이혜훈 전 의원을 낙점했다.
비대해진 기획재정부에서 분리되는 기획예산처의 수장으로서 정통 관료 출신이 아닌 정치인을 지명한 것도 이례적이지만, 이 후보자가 인사발표 당시까지 국민의힘 당적을 가지고 있는 보수정당 출신이라는 점에 관심이 집중됐다.
이 후보자와 함께, 역시 보수정당 출신인 김성식 전 의원이 국민경제자문회의 부의장으로 전격 지명되자, 정치권에서는 향후 정계 지각변동의 신호탄이 되는 것 아니냐는 전망까지 나오고 있다.
예산처에 이혜훈, 국민경제자문회의에 김성식…'통합·실용' 인사 기조
대통령실은 이재명 대통령이 28일 초대 기획예산처 장관 후보자로 이혜훈 전 의원을 지명했다고 밝혔다. 연합뉴스청와대 이규연 홍보소통수석비서관은 28일 브리핑을 통해 이 대통령이 "기획예산처 장관 후보자에 이혜훈 전 의원을 지명했다"고 밝혔다.
같은 날, 대통령에게 경제분야 중요정책의 수립에 관해 자문을 하는 기관인 국민경제자문회의 부의장(장관급)에는 김성식 전 의원이 지명됐다.
이 수석은 이번 인사가 '통합'과 '실용'이라는 이 대통령의 인사 철학에 기반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이분들은 경제, 예산 분야에 누구보다도 전문가들로 꼽히는 분들"이라며 "또 실무 능력을 다 갖추신 분들이라는 것을 여러분들이 잘 아실 것"이라고 말했다.
이 후보자는 서울대 경제학과를 졸업한 후 서울대에서 경제학 석사학위를, 미국 UCLA에서 경제학 박사학위를 각각 취득한 대표적인 정치권의 경제전문가로 분류된다.
학업을 마친 후에는 한국개발연구원(KDI)에서 연구위원으로 재직했으며, 17대 국회에서 처음 정계에 입문한 후에는 예산을 총괄하는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 간사, 기재부와 산하기관을 피감기관으로 둔 기획재정위원회 위원 등을 역임했다.
김 부의장 또한 서울대 경제학과를 졸업했으며, 18대 국회에 입성한 후 국회 4차산업혁명특별위원회 위원장, 기재위 간사 등을 맡는 등 정책통으로 분류된다.
처음은 아니지만 李정부 정책기조 이어갈 주요 장관직 배치에 파격
이들의 인선이 파격으로 여겨지는 것은 두 인사 모두 보수정당에서만 3선, 재선을 지낸 중진급 전직 의원의 전격 장관 발탁이기 때문이다.
이 후보자의 경우 서울의 보수 핵심 지역인 서초 갑에서만 국민의힘의 전신인 한나라당과 새누리당 소속으로 3선에 성공했다.
특히 이 후보자는 지난해 총선에서 서울 중·성동 을에 국민의힘 소속으로 출마해 현역인 더불어민주당 박성준 의원과 박빙의 승부 끝에 석패한 인물이자, 현재도 해당 지역 당협위원장을 맡고 있는 상태라는 점에서 더욱 놀라움을 안기고 있다.
김 부의장은 16대 총선부터 21대 총선까지 내리 6차례 서울 관악 갑에서만 선거를 치렀는데, 이 중 3차례를 한나라당 소속으로 출마했다.
국민의당 소속으로 당선된 20대 국회에서는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사태로 새누리당에서 분당한 바른정당과의 통합으로 인해 바른미래당에 합류하기도 했다.
보수 진영 인사들의 이재명 정부 합류는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3선 중 한나라당 소속으로 2차례 국회의원을 지낸 권오을 전 의원은 국가보훈부 장관으로 발탁됐다.
국민의힘의 전신인 자유한국당의 비례위성정당 미래한국당을 통해 국회의원을 지냈고, 개혁신당 대표직도 맡았던 허은아 전 의원은 청와대 국민통합비서관으로 재직 중이다.
하지만 이재명 정부의 주요 경제정책을 담당하는 부처와, 정책수립을 자문하는 기관의 장으로 보수 정치인을 기용했다는 점에서 이번 인사의 파급력은 이전보다 더 크다는 평가를 받는다.
보수당에서는 개혁적이었지만…李정부와의 호흡은 과제
국민경제자문회의 부의장으로 전격 지명된 김성식 전 의원. 연합뉴스이 후보자는 경제민주화 등 당시 보수정당에서는 혁신적인 정책을 주장했고, 김 부의장도 진보적 성향의 보수 정치인이었다는 점에서 현 정부와의 호흡을 맞추는데 문제가 없을 것이라는 시각이 제기된다.
이 수석은 이 후보자에 대해서는 "경제민주화 철학에 기반해 최저임금법, 이자제한법 개정안 등을 대표발의하고, 재벌의 불공정거래 근절과 민생 활성화 정책을 추진한 바 있다"고, 김 부의장에 대해서는 "소신이 뚜렷한 개혁 성향의 재선 국회의원 출신"이라고 각각 소개했다.
이 후보자도 입장문을 통해 "경제와 민생 문제 해결은 본래 정파나 이념을 떠나 누구든지 협력해야 할 일이라는 것이 저의 오랜 소신"이라며 "성장과 복지 모두를 달성하고 지속 성장을 이뤄내야 한다는 이재명 정부의 국정 목표는 평생 경제를 공부하고 고민해 온 저 이혜훈의 입장과 똑같다"고 강조했다.
다만 이 후보자가 과거 대선 당시 윤석열 전 대통령을 옹호하는 과정에서 경쟁 대선후보이던 이 대통령을 향해 비판을 가했던 부분은 현정부와의 호흡은 물론, 인사청문회 문턱을 넘기 위해서도 극복해야 할 숙제로 꼽힌다.
그는 "일견 듣기에는 굉장히 그럴 듯 하다. 그런데 이제 찬찬히 생각해보고 그러면 굉장히 걱정되는 면이 많은 얘기들"이라며 기본소득을 비판하는가 하면, 이 대통령이 "문재인 정부의 잘못된 방향을 더 강화하는 분이기 때문에, 방향이 잘못되면, 추진력이 있는 후보가 만약에 (대통령이) 되면 '재앙이 된다'"고 우려하기도 했다.
李대통령의 '중도층' 겨냥 포석?…"검증됐다면 쓸 수 있다"
정치권 일각에서는 이 대통령이 내년 지방선거를 앞두고 이른바 '중도층 표심'을 끌어오기 위한 포석을 펼친 것이라는 분석도 제기된다.
이른바 '반탄파'로 불리는 수위의 강성 우파가 아니라면, 누구든 능력에 따라 기용할 수 있다는 포용력을 보임으로써 중도를 넘어 중도 우파까지 포섭하려는 움직임이라는 것이다.
이 같은 행보의 파급력을 우려한 듯 국민의힘은 이날 오후 즉각 최고위원회의를 열고 이 후보자를 제명하고, 모든 당무 행위를 취소했다.
국민의힘은 "이 전 의원은 당협위원장 신분으로 이재명 정부의 국무위원 임명에 동의해 현 정권에 부역하는 행위를 자처함으로써 지방선거를 불과 6개월을 남기고 국민과 당원을 배신하는 사상 최악의 해당 행위를 했다"며 "나라 곳간을 책임지는 국무위원직을 정치 거래의 대상으로 전락시킨 이 대통령과 이 전 의원을 강력히 규탄한다"고 비난했다.
대통령실 관계자는 "지방선거를 대비한 움직임이라거나 정계개편에 나섰다고 보는 것은 지나친 해석"이라면서도 "통합의 대상이고, 이미 능력이 검증된 인물이라면 다른 정당 출신이라도 쓰지 못하란 법은 없다는 것을 보여주는 측면이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