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북 의성 대형 산불이 인근지역으로 확산하고 있는 모습. 독자 제공낮 기온이 25도까지 올라가며 때 이른 봄바람이 불던 지난 3월 22일.
경북 의성군 안평면과 안계면 두 곳의 야산에서 불길이 피어올랐다. 산불의 원인은 50대 성묘객과 60대 과수원 임차인의 실화였다.
성묘객은 야산에서 조부모 묘를 정리하며 나무에 불을 붙였고, 과수원 임차인은 영농 부산물을 태우다 불씨를 제어하지 못해 산불로 번진 것이다.
고온·건조한 날씨 속에 산불은 순간 최대 풍속 초속 25m의 강풍을 타고 시간당 8.2km의 속도로 안동에 이어 청송과 영양, 영덕까지 5개 시군을 덮쳤다. 내륙인 의성에서 동해안 영덕까지 불길이 번진 시간은 단 12시간에 불과했다.
괴물 산불에 정부는 국가 재난 사태를 선포했고, 헬기 1200여 대와 장비 8300대, 진화 인력 7만여 명을 투입한 끝에 산불 발생 149시간 만인 3월 28일에야 주불 진화에 성공했다.
경북 5개 시군을 휩쓴 산불이 확산하는 모습. 경북소방본부 제공
하지만 여의도 면적의 35배인 9만 9490ha의 산림이 한순간에 잿더미로 변했다. 지난 2000년 동해안 산불의 피해 면적 2만 3794ha를 크게 상회하는 역대 최악의 산불 피해다.
특히 밤사이 산불이 급속하게 번지면서 제때 대피하지 못한 26명이 숨졌고, 32명이 부상을 입는 등 인명피해는 매우 컸다. 또 5개 시군에서 3만 6674명의 이재민이 발생했다.
농어촌 마을을 중심으로 주민들이 평생 이뤄온 생계 수단이 하루아침에 잿더미가 되며 지역 경제와 주민 생활은 심각한 타격을 입었고, 재산 피해액만 1조 원을 훌쩍 넘는 것으로 집계됐다.
정부는 5개 시군을 특별재난지역을 선포했지만, 주택 최대 복구 지원금이 3600만 원에 그치는 등 피해 보상과 복구에 한계가 분명했다.
이에 국회는 지난 9월 산림 복원과 주택 지원 등의 내용을 담은 사상 첫 '산불 특별법'을 통과시켰다. 경상북도도 산불 피해 재창조본부를 출범하고 마을과 산림, 농업 등 분야별 재건사업에 나섰다.
그러나 복구는 여전히 더딘 상태다. 산불 발생 9개월이 지난 지금까지도 4천여 명이 임시주택에서 해를 넘길 것으로 예상된다.
산불 피해를 입은 영덕군 영덕읍 노물리 해안. 독자 제공
전문가들은 더 이상 초대형 산불을 단순한 자연재해로 볼 수 없다고 지적하고 있다. 겨울과 봄철의 강수량 감소, 고온 현상, 강풍이 반복되면서 대형 산불 발생 위험이 상시화되고 있다는 분석이다.
특히 경북은 전국에서 산림 면적이 가장 넓은 지역으로, 한 번 불이 나면 피해 규모가 급격히 커질 수밖에 없는 구조적 취약성을 안고 있어 우려는 더욱 커지고 있다.
이에 산불 감시 체계 고도화와 임도 확충, 대형 헬기 확보 등 예방 중심의 정책 전환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경북도는 산불 피해를 막기 위해 119 산불특수대응단을 신설하고 담수량 5천 리터 이상인 대형 헬기와 산악 지형에 강한 중형 산불 진화차, 펌프차도 도입하기로 했다. 그러나 일부 장비는 예산 문제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상황이다.
이철우 경북도지사는 "산불 피해 지역이 혁신적 재창조 지역으로 거듭날 수 있도록 모든 역량을 집중하고 산불 예방과 초기 진화를 위한 정책 마련에도 힘을 쏟겠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