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진원 기자올 한 해 동안 해외연수 출장비 부풀리기와 성추행 의혹, 공무원 폭행 등으로 물의를 빚은 대구·경북 기초의회 의원들이 내년 전국동시지방선거를 앞두고 기초의회에 대한 불신을 키우고 있다.
그 중에서도 지방의회의 국외 출장은 오래전부터 눈총의 대상이 됐지만 여전히 외유성 출장과 항공료 부풀리기 등으로 문제가 되고 있다.
국민권익위원회는 지난 2023년 한 지방의회가 공정거래위원회에서 정한 비율보다 과다하게 국외 출장 항공비 취소 수수료를 지급했다는 신고를 접수하고 전국 243개 지방의회에 대해 전수조사를 벌였다.
이후 233개 의회에 대해 외유성 출장, 항공비 부풀리기 등과 관련해 행정기관과 수사기관에 감사와 수사를 의뢰했다. 대구는 대구시의회와 9개 구·군의회가 모두 포함됐고 경북에서는 23개 의회 중 경상북도의회를 포함해 22개 기초의회가 조사 대상이 됐다.
경찰 수사 끝에 지난달 대구 동구의회·달서구의회·서구의회·군위군의회 소속 공무원 13명과 여행사 관계자 8명, 대구 현직 구의원 1명이 국외 출장 항공권 비용을 실제 가격보다 부풀려 총 3800만 원의 재산상 손해를 입힌 혐의로 검찰에 넘겨졌다. 북구의회와 대구시의회는 여행사가 단독으로 범행한 것으로 조사됐다.
경북에서는 경상북도의회와 청송군·경산시의회 소속 공무원 12명, 여행사 직원 4명 등 16명이 국외 출장 항공비를 실제 가격보다 부풀려 6100만 원의 재산상 손해를 입힌 혐의로 검찰에 넘겨졌다. 이밖에 경상북도 내 11개 기초의회에 대해서도 경찰 수사가 진행 중이다.
일각에서는 오랫동안 관행처럼 이어져오던 기초의회의 출장비 부풀리기가 이제서야 수면 위로 드러났다는 지적이 나온다.
지역의 한 기초의회에서 근무했던 A씨는 "옛날부터 관례로 출장비를 소액 부풀려온 걸로 안다. 의원들 출장에 대한 부정적 시간이 많다 보니 예산이 적어서 빚어지는 문제"라며 "공무원에 대한 처벌보다는 관행 개선에 나서야 한다"고 주장했다.
공무원 폭행·음주운전자 바꿔치기…도마 오른 TK 의원들 윤리성
지난 6월 대구 남구의회 소회의실에서 정재목 전 남구의회 부의장이 '음주운전 방조 의혹'에 대해 사과했다. 곽재화 기자출장비 부풀리기 이외에도 올해 TK 기초의회는 공무원 폭행과 음주운전 후 운전자 바꿔치기 등 굵직한 사건들로 얼룩졌다.
현직 시의원이 성비위 의혹에 휘말리는 일도 있었다. 안동시의회 B 의원은 지난 9월 안동국제탈춤페스티벌 행사장에서 튀르키예 국적의 미성년 단원의 신체를 만져 성추행했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대동난장' 행사 도중 부적절한 접촉이 있었다는 의혹으로, 피해자의 부모가 축제 추진위원회에 피해 사실을 알리면서 불거졌다.
조사를 벌인 안동시의회는 "외국인 소녀에게 씻을 수 없는 상처를 줬다는 사실만은 명백히 확인된다"며 B 의원을 제명하는 한편 강제추행 등 혐의로 경찰에 고발했다. 반면 B 의원은 "어떠한 형태의 부적절한 신체접촉이나 성적 행위도 없었다"며 반박했다.
의전을 문제 삼으며 시의원이 공무원을 폭행한 일도 있었다. 구미시의회 C 의원은 지난 5월 구미 인동시장에서 열린 낭만야시장 개막식 행사에서 축사를 할 기회를 얻지 못했다는 이유로 시의회 소속 공무원의 뺨을 때리고 욕설을 퍼부었다.
구미시 공무원노조는 "공무원은 시민의 봉사자이지, 시의원의 분풀이 대상이 아니다"라고 강하게 반발하며 공무집행방해 등 혐의로 C 의원을 경찰에 고발했다. C 의원은 지난 7월 검찰에 송치된 후 재판을 진행 중이다.
대구에서는 남구의회 정재목 전 부의장이 음주운전을 한 뒤 운전자 바꿔치기를 해 질타를 받았다. 정 전 부의장은 지난 4월 50대 여성 D씨와 술을 마시고 승용차를 몰다 달서구의 한 도로에서 경찰의 음주 단속에 걸리기 전 D씨에게 운전대를 넘겨줬다.
경찰 조사에서 정 전 부의장은 처음부터 D씨가 운전했다며 운전자 바꿔치기 혐의를 부인했지만 검찰 수사에서 돌연 입장을 바꿔 자신이 음주운전을 했고 D씨에게 덮어씌우려 했다고 시인했다.
자정 멈춘 기초의회…시민단체 "정당과 유권자의 역할 중요"
구미시의회. 연합뉴스
기초의회의 자정 활동이 미흡해 출장비 부풀리기와 각종 도덕적 해이를 반복하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공무원을 폭행한 C 의원은 구미시의회로부터 출석정지 30일 징계를 받았지만 앞서 구미시의회 윤리특별위원회가 의결한 '제명'보다 수위가 낮아 '제 식구 감싸기'라는 비판을 받았다.
대구 남구의회도 정족수 과반을 넘기지 못했다는 이유로 정재목 전 부의장에 대한 부의장 불신임안을 부결시켰고, 시민단체는 "제 식구 감싸기에 몰두했다"며 비판을 쏟아냈다.
이후 남구의회는 정 전 부의장의 의원직 제명을 의결했으나 재적의원 7명 중 4명이 대구지방법원에 정 전 부의장에 대한 징계 집행정지 결정을 요구하는 탄원서를 제출한 것으로 알려지면서 다시 논란이 됐다.
시민단체는 내부적으로 자정 활동이 이뤄지지 않는 기초의회에 대해 공천권이 있는 정당과 유권자의 역할이 최후의 보루라고 말한다.
대구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조광현 사무처장은 "내부적으로 자정 시스템이 갖춰져 있는데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다고 하면 외부적으로 선출직 의원들이 의식하는 정당과 유권자의 역할이 없으면 근본적으로 일탈을 바로잡기 힘들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