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경고등사범학교 시절 학암 이관술 선생. 연합뉴스조선정판사 '위조지폐' 사건의 주모자로 몰려 처형된 독립운동가 고(故) 이관술 선생의 재심에서 무죄가 선고됐다.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1부(이현복 부장판사)는 22일 이 선생의 통화위조 등 혐의 재심 선고공판에서 "관련자들의 자백은 사법경찰관들의 불법 구금 등을 통해 이뤄진 것으로 유죄의 증거로 쓸 수 없다"며 무죄를 선고했다.
재판부는 미군정 판결에서도 사법경찰관의 인신구속은 무제한 허용되지 않고 이 과정에서 나온 공동 피고인들의 자백 진술의 증거 능력이 없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재심 대상 판결 당시에도 사법경찰관의 인신구속이 무제한 허용되는 것이 아니고 유죄 증거는 법령에 의한 적법절차에 의한 것이어야만 한다는 점이 형성된 상태였다"며 "사법경찰관들이 자행한 불법 구금 등과 직권남용 범행을 통해 이뤄진 것으로, 진술의 임의성을 인정하지 못하거나 위법수집증거에 해당함이 명백히 인정된다"고 판단했다.
이어 "기존 판결이 유죄 증거로 고시한 증거 중 주요한 것은 증거능력이 없고 나머지 증거들은 증거가치가 희박하다. 피고인에 대해서는 무죄 판단을 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 최종 판단"이라며 "이 판결이 선생과 유족에게 조금이나마 위안이 되기를 희망한다"고 밝혔다.
지난 15일 검찰은 "판결문과 현존하는 일부 재판기록, 당시 언론 기사와 연구 서적 등을 종합적으로 검토해 엄격한 증거법칙에 따라 무죄를 구형했다"며 "앞으로도 과거사 재심 사건 등에서 객관적인 자세로 증거와 법리에 따라 검찰권을 행사할 것"이라고 했다.
조선정판사 위조지폐 사건은 이 선생 등 조선공산당의 핵심 간부가 1945년 말부터 1946년 초까지 서울 소공동 근택빌딩에 있는 조선정판사에서 인쇄 시설과 인쇄용 재료를 이용해 6회에 걸쳐 200만 원씩 총 1200만 원의 위조지폐를 찍은 사건이다.
조선정판사는 일제가 조선은행권을 인쇄하던 곳이다. 광복 후에는 조선공산당이 접수하면서 공산당 본부로 활용된 바 있다.
이 선생은 조선공산당 자금 마련을 위해 조선정판사 인쇄소에서 지폐를 위조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져 1947년 법원에서 무기징역을 선고받았다.
그 뒤 대전형무소에서 복역하다 6·25 전쟁 중인 1950년 7월 대전 골령골에서 처형됐다.
이 선생의 외손녀 손모씨는 지난 2023년 7월 법원에 재심을 청구했다. 재판부는 "사법경찰관들의 불법구금에 의한 확정판결의 증명이 있다는 점이 인정된다"며 지난 10월 재심 개시를 결정했다.
손씨는 이날 선고 뒤 "오랜 세월 억눌려왔던 정의가 마침내 역사 앞에 바로 섰음을 온 국민과 함께 선언한다"며 "이번 선고는 단순히 일개 형사 사건 재판을 바로잡은 판결이 아니라 해방 직후 국가 권력이 정치적 목적 아래 행정, 군대, 경찰, 사법기구를 총동원해 허구의 범죄 사건을 구성함으로써 역사적 과오를 79년 만에 대한민국 사법부가 공식적으로 인정하고 다시 끼운 역사적 판결"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