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①항만운영 지분을 개인 출자로 변환…평택·당진항 사유화 논란 (계속) |
정부 재정 부담을 줄이기 위해 민간 자본을 유치해 부두를 건설하고 민간사업자에게 30~50년 운영권을 주는 '민자부두'가 지분 거래를 통한 '항만 금수저'의 재산 증식·상속 수단으로 악용된 정황이 포착됐다.
부두운영회사 지분에 경영주 개인 지분 11%…누적 26억원 배당받아
22일 항만업계에 따르면 경기 평택항과 충남 당진항의 벌크화물전용 터미널 부두운영회사(TOC·Terminal Operation Company)인 평택당진항만 주식회사의 운영지분은 여타 부두운영회사와 다른 형태를 띠고 있다. 운영 지분 가운데 개인 출자자가 있기 때문이다.
평택당진항만㈜의 지분 구성은 우련TLS 34.97%, 영진공사 23.79%, 이강신(영진공사 경영주) 11.18%, 경기도 5.32%, 평택시 2.66%, 기타 22.08% 등이다.
2005년 설립된 평택당진항만㈜의 지분은 애초 경기도 36%, 평택시 15%, 영진공사 21.5%, 우련통운 21.5%, 기타 6%로 구성됐지만 2017년 유상증자 과정을 거치면서 지금의 형태를 띠게 됐다.
항만업계는 이 시기에 평택당진항만의 운영지분이 영진공사와 우련통운의 2세 경영인들의 재산 증식 또는 재산 상속 수단으로 악용했다고 의심한다.
영진공사 2세대 경영주인 이강신 회장은 2017년 7월 개인출자자 자격으로 평택당진항만 운영 지분 11.18%를 취득했다. 이 회장은 약 9억여원으로 해당 주식을 취득한 이후 매년 60%대의 배당금을 받고 있다. 이 회장이 2017년부터 지난해까지 평택당진항만 지분으로 받은 배당금은 26억4700만원에 달한다.
이미 지분 매입가 대비 17억원의 시세차익을 챙긴 셈이다. 여기에 그가 영진공사 대표이사 자격을 매년 받은 연봉 2억8천만 원을 더하면 최근 8년간 약 40억원이 그의 주머니로 들어간 것으로 추정된다.
평택당진항만 주주 변경 현황. 평택당진항만 외부감사보고서 캡처'5% 이상 지분 양도시 사전 승인'…민자사업 지침 위배한 듯
이 회장의 사례는 정부의 '민간투자사업 추진 일반지침'을 위배한 것으로 보인다. 이 지침은 매년 기획재정부가 공고하는 것으로 국내 모든 민자사업에 대한 기본 지침 역할을 한다. 이 지침을 보면 5% 이상의 지분을 다른 출자자에게 양도할 경우 주무관청의 사전 승인을 받아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해양수산부가 부산항 등 여타 민자부두와 관련해 발간한 질문응답집에서도 항만의 지분 변경은 원칙적으로 불허하고, 출자사 부도 등 불가피한 사유일 경우 주무관청 승인을 받아야 한다고 적혀 있다.
"별도 법령 없다" 주무관청·지자체 민자 운영 관리 '손 놔'
그러나 주무부처와 지자체는 항만법 등 관련 법령에는 민간자본 지분에 대한 내용이 없어 권한이 없었다거나 이러한 사실을 몰랐다는 입장만 내놨다.
해양수산부 관계자는 "항만 민간투자사업에서 지분 변경에 대해 조치를 취해야 한다는 별도 법령은 없다"며 "별도 규약이나 지침이 있는지 확인해야 한다"고 말했다.
평택당진항만의 주요 주주인 경기도 역시 "영진공사의 경영주 개인출자 지분 변경 사실을 알지 못했다"면서 "당시 주주총회 회의록 등 기록을 보면 단순 주주변경은 의결 사안이 아니기 때문에 별도 통보나 논의가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중국업체들, 개인 지분 변환 뒤 매각 제안"…항만 민영화 넘어 사유화?
영진공사의 개인 출자 지분 변경은 국내 '항만 민영화' 사업들이 사실상 '항만 사유화' 단계로, 나아가 '항만 주권 확보의 위험 신호'로 해석된다.
한 항만업계 관계자는 "최근 영진공사 사례 이후로 중국기업들이 국내 항만업계 주주들에게 지분 개인 출자 변환 뒤 중국기업에게 매각하는 방안을 제안하는 경우가 늘고 있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이런 식으로 지분 전환이 실제로 이뤄지면 부두운영사가 해외로 넘어갈 가능성이 있다"며 "이는 특정 부두가 특정 회사 또는 국가 전용 부두로 전락하는 단초가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아들 지분 100% 회사에 저가 매각…우련통운 지분 상속 '의심'
영진공사 이강신 회장보다 4개월 앞선 2017년 3월 출자자 변경을 시도한 우련통운은 2세 경영인에게 지분을 상속한 사례라는 의혹을 받는다.
창업주인 배인홍 회장이 약 92%의 지분을 소유한 우련통운은 2017년 3월 평택당진항만 지분 34.97%를 아들 배요한 대표이사가 지분 100%를 갖고 있는 우련TLS에 약 31억 원에 매각했다. 1주당 6800원으로 이를 두고 저가매입이라는 지적을 받았다. 당시 평택당진항만 주식가는 1주당 최소 3만 원대 였기 때문이다.
더구나 경기도가 2006년 지분을 1주당 9280원에 내놓았던 걸 감안하면 10년 뒤에 이보다 더 적은 액수로 매각했다는 게 납득하기 어렵다는 지적도 있었다.
2017년 이후 지난해 말까지 우련TLS가 평택당진항만으로부터 받은 배당금은 약 82억 원에 이른다. 주식 매입가 대비 51억 원의 시세 차익이 발생했다.
'세월호 구상권 청구 회피 꼼수' 의심도…"적법 절차였다" 해명
당시 우련통운이 이같은 손해를 감수하면서도 지분들을 우련TLS로 옮기는 걸 두고 '세월호 구상권 청구' 책임을 회피하려는 시도라는 지적이 나왔다. 주요 수입원을 우련TLS로 옮겨 우련통운을 '깡통회사'로 만들면 구상권 청구 재판에서 불리한 결과가 나오더라도 이를 회피할 수 있다는 계산이 깔려 있다는 것이다.
세월호 참사 당시 화물의 고박(결박) 업무를 담당한 우련통운은 세월호 선사인 청해진해운과 더불어 세월호 참사 관련 구상권 청구 대상 업체 중 하나였다.
현재 우련통운을 상대로 진행 중인 구상권 청구 소송은 정부(행정안전부·해양수산부)와 근로복지공단, 공무원연금공단 등 3건으로 소송금액은 1800억 원에 달한다. 우련통운의 주요 계좌와 부동산은 가압류 상태로 소송 결과에 따라 손해배상액이 결정된다.
우련통운 측은 구상권 청구 재판 회피 의혹에 대해 주요 자산을 우련TLS로 매각한 건 정부의 가압류로 부족해진 현금 자산을 확보하기 위한 '어쩔 수 없는 선택'이라고 해명했다.
평택당진항만 주식의 저가매도 의혹에 대해서는 당시 회계법인과 법무사 등의 평가를 통해 적법하게 이뤄진 거래라고 덧붙였다.
인천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김송원 사무처장은 "항만업계가 최근 항만 배후부지를 불법 재임대하는 방식으로 부당 이득을 취한 것을 넘어 이젠 지분 거래로도 부당 이득을 챙긴다는 사실이 놀랍다"며 "주무관청이 이를 제대로 관리하지도 못했고, 관련 법령에 사각지대가 있는데도 아무 조치도 취하지 않았다는 점에서 대책 마련이 시급해 보인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