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택·당진항 전경. 자료사진| ▶ 글 싣는 순서 |
①항만운영 지분을 개인 출자로 변환…평택·당진항 사유화 논란 ②"아버지, 용돈 말고 항만 지분 주세요"…미성년자에게 편법 증여 (계속) |
국가 전략 자산인 항만시설 운영권을 사익화하고 자녀에게 재산을 대물림하는 이른바 '항테크(항만 재테크)' 정황이 포착됐다.
항만 사유화 의혹이 제기된 이강신 전 인천상공회의소 회장이 자녀들에게 자회사 지분을 넘겨 거액의 배당금을 챙기게 한 것으로 확인됐다.
영진로지스틱스 지분 변화. 출처 영진공사 및 영진로지스틱스 외부감사보고서 19세 유학생 등 자녀 2명…부모 자회사 주식 취득 후 배당금 14억 받아
23일 항만 물류기업 영진로지스틱스의 외부감사보고서를 보면 이 업체는 2014년 6월 이 회사의 운영 지분 30%를 이강신 전 인천상공회의소 회장의 두 자녀에게 매각했다. 매각액은 15억 6천만 원으로 1주당 5200원꼴이었다. 이 거래로 영진공사의 지분율은 60%로 낮아졌고, 자녀 2명은 단숨에 회사의 주요 주주로 등극했다.
이 전 회장은 모기업인 영진공사와 자회사인 영진로지스틱스의 대표이사를 맡고 있다. 그는 영진공사의 2세 경영인이다. 그는 또 2015년~2021년 인천상공회의소 회장을 지냈다.
이 전 회장의 두 자녀가 영진로지스틱스 주식을 매입할 당시 나이는 26세와 19세였다. 두 자녀 모두 유년기 때부터 성인이 된 이후에도 줄곧 외국에서 거주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차남은 당시 외국 유학생 신분이었다.
2014년부터 지난해 말까지 이 대표이사의 자녀가 영진로지스틱스로부터 받은 누적 배당금은 14억1천만 원이다. 사실상 부모 회사로부터 넘겨받은 지분을 통해 초기 투자금 대부분을 회수한 셈이다.
영진로지스틱스의 연평균 배당성향은 60%를 상회했다. 이는 코스피 상장사 평균 배당성향(약 20~30%)의 두 배를 웃도는 수준이다.
영진로지스틱스 운영지분 가운데 영진공사 지분이 이강신 대표이사의 자녀에게 옮겨가는 과정 요약. 출처 영진공사 및 영진로지스틱스 외부감사보고서'항테크'의 핵심, 알짜 자회사 지분 넘기기
영진로지스틱스는 2010년 10월 평택·당진항 1종 배후물류단지에 입주하기 위해 인천의 항만물류기업 영진공사와 중국기업인 유룡집단유한공사가 합작한 컨소시엄 형태의 외국인투자기업이다. 영진로지스틱스는 이곳에서 앞으로 최소 15년, 최대 35년 간 사업을 영위할 수 있다.
업계에서는 공공재인 항만 운영권을 기반으로 한 안정적인 수익 구조를 자녀에게 귀속시킨 전형적인 '항테크' 수법이라고 지적한다.
이같은 항만 지분 거래를 통해 이 전 회장의 일가가 챙긴 배당금은 40억원을 넘어선다. 앞서 CBS노컷뉴스는 이 대표이사가 2017년 평택·당진항 벌크화물전용 터미널 부두운영회사인 평택당진항만㈜ 내 영진공사 지분 34.97% 가운데 11.18%를 이 전 회장이 개인출자자 자격으로 취득해 최근까지 26억여원의 배당금을 받아 챙겼다고 전했다. (CBS노컷뉴스 2025년 12월22일 보도 "
항만운영 지분을 개인 출자로 변환…평택·당진항 사유화 논란")
국가 자산인 항만 배후단지 운영권을 통해 발생한 이익이 공적 재투자나 항만 활성화 대신 특정 가문의 현금 창고 역할을 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기업이 직접 배당받을 기회를 경영주 자녀에게 넘겨준 것은 법인 측면에서 배임의 소지가, 개인 측면에서는 변칙 증여의 소지가 다분하다.
영진일가가 평택당진항 운영 지분 일부를 사유화하면서 챙긴 배당금. 출처 평택당진항만, 영진공사, 영진로지스틱스 외부감사보고서까다로운 항만배후단지 입주 자격…사후 관리는 '전무'
이같은 부의 이전이 가능했던 배경에는 정부와 주무관청의 부실한 사후 관리가 자리잡고 있다. 영진로지스틱스가 입주한 1종 항만배후단지는 입주 자격이 매우 까다롭다. 공공성과 전문성을 중시하기 때문이다. 물류 부가가치 창출, 고용 계획, 외국인 투자 유치 등 엄격한 심사를 거쳐야만 입주 자격을 얻는다.
하지만 일단 입주하고 나면 감시망은 사실상 사라진다. 기획재정부 지침상 민자사업의 지분 5% 이상을 변경할 경우 주무관청의 사전 승인을 받아야 하지만 영진로지스틱스의 지분이 모기업 대표이사의 자녀들에게 넘어가는 과정에서 어떠한 제동도 없었다. 항만·물류와 무관한 미성년자 개인 출자자로의 지분 변경이 가능했던 이유다.
특히 영진로지스틱스는 2020년부터 외부감사보고서 등 회계 정보 공시를 중단하며 '깜깜이 경영'으로 돌아섰다.
한 항만업계 관계자는 "영진공사와 영진로지스틱스가 항만 지분을 사유화해 재산 증식과 상속·증여 수단으로 악용하는 동안 해양수산부 등 주무관청은 아무런 역할을 하지 않았다"며 "국가자산인 항만이 사유화되는 것을 막고 공공성을 유지해야 한다는 본래 역할을 포기한 듯 하다"고 말했다.
CBS노컷뉴스는 이강신 전 회장과 그의 자녀 등에게 자금 출처와 지분 변경 과정 등을 묻기 위해 수차례 전화와 문자로 연락했지만 응답하지 않았다.
공공재인 항만을 무대로 벌어지는 그들만의 '항테크'에 둘러싸고 정밀 세무조사와 주무관청의 전수조사가 시급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인천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김송원 사무처장은 "항만기업의 변칙적 부의 이전을 둘러싼 세무조사와 주무부처에 대한 전수조사가 필요해 보인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