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일 오후 동덕여자대학교 남녀공학 전환 외부 연구 용역 결과 발표회가 열리는 학교 백주년 기념관에 학생의 대자보가 붙어있다. 유리문에는 1년 전의 '래커칠 시위' 흔적이 남아 있다. 김지은 기자남녀공학 전환을 두고 갈등을 겪었던 동덕여자대학교가 3일 2029년 공학 전환을 추진하기로 발표했다. 학생, 동문들은 공론화 과정이 민주적이지 않았다며 결정에 반발하고 있다.
동덕여대 김명애 총장은 이날 "2일 공학전환공론화위원회(공론화위)로부터 최종 권고안을 제출받았으며, 그 결과를 존중해 수용하고자 한다"며 "이행 시점을 현 재학생이 졸업하는 2029년으로 계획"한다고 밝혔다.
학교 공론화위는 전날 '공학전환공론화 결과에 따른 권고안'에서 "숙의기구 토론, 타운홀 미팅, 온라인 설문조사 등 단계별 공론화 결과에서 '공학 전환'을 선택한 의견이 '여성 대학 유지'를 선택한 의견보다 높게 나타났다"며 "공학 전환 추진을 권고한다"고 했다.
학교 측은 이날 오후 3시 한국생산성본부가 6월부터 수행한 '2025년 동덕여대 발전을 위한 공학 전환 분석 및 의견 수렴 연구용역 결과 발표회'도 열었다. 해당 발표회에서는 숙의 과정에 대한 구체적인 설명이 이루어졌던 것으로 전해졌다.
다만 학생, 동문들은 이번 결정에 학교 구성원 전체 중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 학생들의 의견이 충분히 반영되지 않았다며 반발하고 있다.
"학생들 입장 제대로 반영되지 않아…동덕에는 제2의 계엄"
3일 오후 서울 성북구 동덕여자대학교 정문 앞에서 동덕여대 민주동문회가 학교의 남녀공학 전환 결정에 반대하는 시위를 하고 있다. 김지은 기자
동덕여대 민주동문회는 이날 오후 발표회가 열리는 백주년 기념관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공학 전환 공론화 과정과 총장의 '기습 승인 발표'를 비판했다. 동덕여대 77학번인 김종분 민주동문회장은 "이날 남녀 공학으로 전환하기로 했다고 갑작스럽게 발표를 했다. 이 과정에서 남녀 공학 전환에 반대한 학생들의 입장이 제대로 반영되지 않았다"며 "민주동문회는 온갖 방법을 동원해 재학생들과 함께 우리 학교가 여자 대학으로서의 정체성과 역사성을 지켜나갈 수 있도록 할 것"이라고 말했다.
03학번 문모씨는 "공론화위의 권고안은 투표 결과 등 정량적인 지표만 공개하고 있는데 숙의 기구와 타운홀 미팅에서 구성원들이 여러 의견을 냈다. 그 안에 있는 다양한 맥락과 정성적 측면까지 반영해 결정되어야 했는데도 이런 내용들은 전혀 공개되지 않고 있다"고 주장했다. 또 "작년 비상계엄 사태가 발생한 지 1년이 됐다. 이날 총장의 남녀공학 전환 기습 승인은 동덕에는 제2의 계엄이라고 생각한다"고 목소리를 높이기도 했다.
동덕여대 중앙운영위원회(중운위)도 이날 입장문을 내고 "학생 위원들은 전체 구성 비율에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학생들의 의견이 보다 충분히 반영돼야 한다고 지속적으로 주장했으나, 의견 반영 비율은 전체 구성원의 의견을 존중하기 위해 모수가 아닌 표본값을 구한 것이란 이유로 의견은 받아들여지지 않았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민주동덕 제58대 중운위는 학생 의견이 반영된 결과를 만들어내기 위해 끝까지 학우분들과 함께할 것임을 약속드린다"며 "학생 의견을 다시 한번 대학 본부에 전달하기 위해 3일~5일 공학 전환에 대한 8000 동덕인 총투표를 진행한다"고 밝혔다. 이들은 '공학 전환에 대한 8000 동덕인 의견 조사' 학생 총투표를 이날부터 시작했다.
1년 전, 남녀공학 전환 반대 '래커칠 시위'
3일 오후 동덕여대 백주년 기념관 앞 바닥에 '래커칠 시위'의 흔적이 남아 있다. 김지은 기자지난해 11월 동덕여대 재학생 일부는 학교 측이 학생 의견 수렴 없이 일방적으로 남녀공학 전환을 추진했다며 강하게 반발했다. 학생들은 본관과 백주년 기념관을 점거하고 교내 곳곳을 래커칠하며 강경 시위를 벌였다.
학교 측은 교내 점거 농성을 벌인 학생들을 재물손괴·업무방해 등 혐의로 경찰에 고소했으나 지난 5월 이를 모두 취소했다. 다만 피해자가 처벌을 원하지 않으면 형사 처벌할 수 없는 반의사불벌죄에 해당하지 않아 경찰은 지난 6월 동덕여대 재학생 등 22명을 검찰에 불구속 송치했다.
동덕여대는 이러한 내홍을 겪은 뒤 학생·교수·직원·동문이 참여하는 공론화위를 꾸리기로 총학생회 측과 합의하고 공학 전환을 논의해 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