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전법원 종합청사. 김정남 기자| ▶ 글 싣는 순서 |
①"감정 지연 하세월…재판 멈췄다" 소송 당사자 '눈물' ②재판의 '병목'된 감정 지연…왜 반복되나 ③'반송에 기피까지' 감정 꺼리는 감정인들…멈추는 재판 ④대전고법, 감정관리센터 운영…감정 '신속·공정' 도모 (끝) |
대전고등법원이 감정 절차의 신속성과 공정성을 확보하기 위한 제도 개선에 나섰다. 지연과 불신이 반복된 법원 감정 절차에 변화를 주기 위해 올해 초 '감정관리센터'를 설립했다.
대전고법 감정관리센터는 의사, 건축기술사 등 전문 자격을 갖춘 심리위원을 위촉해 재판부의 감정 절차 관리를 의뢰한다. 감정 관리위원은 감정인을 물색해 감정 수행에 대한 의견을 확인한 뒤 재판부에 전달하는 역할을 맡는다. 이후 감정인이 결정되면 감정 절차 진행 상황을 확인해 감정서 제출을 독촉하는 등 관리 업무를 하게 된다.
지난 9월 대전고등법원에서 열린 의료감정 업무협약식. 대전고법 제공
최근 대전고법 감정관리센터는 가톨릭대 대전성모병원, 순천향대 부속 천안병원과 '의료감정 절차 발전을 위한 업무협약'을 했다. 이를 통해 감정이 신속하고 공정하게 이뤄질 수 있도록 의료기간과 긴밀히 협력할 방침이다.
대전성모병원 정낙칠 파트장은 "그동안에는 전국 병원에 감정을 보내다 보니까 시간이 오래 걸리고, (사건 당사자가) 타 지역까지 가야하는 불편함이 있었다"며 "이번 협약으로 대전 내에서 감정이 신속히 이뤄져 당사자의 불편이 줄어들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대전고법 감정관리센터 김성식 감정담당판사도 "이번 협약을 통해 신체 감정은 3개월, 진료기록감정은 2개월 내 감정서 회신을 약속받았다"며 "통상 6개월 이상 걸리는 의료감정 절차가 상당기간 단축돼 재판 지연을 해소하는데 큰 효과가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센터 출범에 이어 법원행정처는 지난 17~18일 충남 태안의 대법원 사법역사문화교육관에서 전국 고등법원 감정관리센터장·감정담당판사·상임 전문심리위원이 참여한 '상임 전문심리위원(감정관리위원) 실무연구회'를 처음 개최했다.
올해 감정절차 관리제도가 시작된 이후 실제 운영 현황을 공유하고, 개선 방향을 논의하기 위한 자리다.
연구회에서는 서울고법·부산고법 소속 상임 전문심리위원들이 감정관리위원 업무와 건설 분야 감정관리 개선 방안, 전문심리·감정관리 업무 수행 과정 등을 주제로 발표했다.
지역별 사건 특성이 달라 운영 방식도 다양해진 만큼, 장단점을 분석하고 개선점을 도출하기 위해 정기 연구회 개최의 필요성이 제기됐다. 또 감정 절차 관리제도가 신속성 확보를 위한 제도지만, 동시에 당사자가 공정성에 의구심을 갖지 않도록 감정관리위원의 운영 기준·유의사항 등을 담은 절차 관리 매뉴얼 마련이 필요하다는 데 공감했다.
무엇보다 의료 감정 지연 해소를 위해 협력 의료기관 발굴을 확대해야 한다는 의견과 함께, 건설 분야 감정절차에서는 일반감정인 명부와 전문감정인 명부의 구분 기준, 전문 분야 감정인 선정 기준을 새롭게 정립해야 한다는 논의도 이뤄졌다.
법조계는 이번 실무연구회가 제도 정착을 위한 첫 논의의 장이라는 점에서 의미를 부여하고 있다.
다만, 일선 변호사들은 제도 개선의 취지는 긍정적으로 평가하면서도 "아직은 체감 변화가 크지 않다"고 지적한다.
대전 지역의 한 변호사는 "아직은 체감하지 못하고 있다. 일선에서는 달라진 게 사실 느껴지지 않는다"고 말했다. 또 "지역적인 문제라기보다는 (감정인) 수준의 문제"라며 "감정인의 수준을 전체적으로 올릴 수 있는 방안을 마련해줬으면 좋겠다. 불성실한 감정인을 명단에서 제외하는 관리 시스템이 활성화됐으면 좋겠다"고 강조했다.

노동·시민사회단체 역시 감정 지연이 장기 소송과 피해자 고통을 가중시킨다며 제도 개선 필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노동시민단체 반올림 이종란 노무사(상임활동가)는 "산재 노동자에게 신속한 보상은 너무도 중요하다. 너무 많은 피해자들이 몇 년씩 걸리는 산재 처리 과정으로 고통을 당해왔다"고 지적했다.
이어 "대법원 판례에서도 업무와 질병 사이의 '상당 인과 관계'는 엄격한 의학적 입증이 아니라 사회통념상 합리적 수준이면 충분하다고 본다"며 "그럼에도 의학적 감정 때문에 몇 년씩 시간이 걸리는 것은 산재보험법의 취지에도 맞지 않는다"고 비판했다.
그는 "이번 감정절차 관리제도가 이런 문제를 개선하는 방향으로 자리 잡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감정관리센터는 이제 첫 발을 뗀 상태다. 법조계는 이 제도를 감정 절차 신뢰 회복의 첫걸음으로 평가하면서도, 제도적 안착에는 시간이 필요하다고 보고있다.
김성식 판사는 "사법부 내 감정절차가 통일적이고 체계적으로 이뤄질 수 있을 것"이라며 "유능한 전문 감정인단을 확보한 의료기관과 협력 기회를 마련하고, 전문 감정 관리위원을 통한 감정절차 진행을 점차 늘려가도록 노력하겠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