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 대통령이 16일 용산 대통령실에서 열린 한미 관세협상 후속 민관 합동회의에서 참석자들과 국기에 경례하고 있다. 연합뉴스국내 주요 그룹 총수들이 16일 이재명 대통령과 만나 최소 800조 원을 웃도는 규모의 국내 장기 투자 계획을 내놨다. 미국발 관세 영향으로 수개월 간 지속된 경영 불확실성이 한미 정부 합의와 문서화로 한층 걷히자 '통 큰 투자'로 화답한 모양새다. 이는 기업들의 대미 투자 확대로 국내 산업이 축소될 수 있다는 우려를 불식시키기 위한 차원의 약속으로도 여겨진다.
4대그룹 총수들이 언급한 국내 투자액만 최소 800조…AI·반도체·로봇·조선·방산 힘 싣는다
이 대통령 주재로 한미 관세 합의 후속 논의를 위해 이날 서울 용산 대통령실에서 열린 민관 합동회의에는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과 최태원 SK그룹 회장, 정의선 현대자동차그룹 회장, 구광모 LG그룹 회장과 여승주 한화그룹 부회장, 정기선 HD현대 회장, 서정진 셀트리온 회장이 참석했다.
삼성, SK, 현대차, LG 등 4대 그룹이 이번 회의를 계기로 약속한 향후 3~5년 간의 국내 투자액 규모만 803조 원을 웃돈다.
삼성은 앞으로 5년 동안 연구개발(R&D)을 포함해 국내에 총 450조 원을 투자할 것이라고 밝혔다. 경기 평택사업장 2단지에 반도체 생산라인을 추가해 AI(인공지능) 확대와 맞물린 메모리 반도체 수요 증가에 대응하는 한편, 지역 균형 발전을 위해 수도권 이외 지역 투자도 확대하겠다는 게 대규모 투자안의 골자다.
(관련기사: 삼성, 향후 5년 동안 450조 '국내 투자'…반도체 포함 지역투자 확대) 지역 균형 발전 투자 계획에는 삼성SDS의 전남·구미 AI데이터센터 건립, 플랙트의 한국 생산라인 구축, 삼성SDI의 차세대 배터리 생산 거점 구축 등이 망라됐다. 삼성은 그룹 차원에서 향후 5년 간 6만 명을 신규 채용하기로 한 약속도 재확인했다.
정의선 현대자동차 그룹 회장이 16일 용산 대통령실에서 열린 한미 관세협상 후속 민관 합동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연합뉴스현대차그룹도 내년부터 2030년까지 국내에 총 125조 2천억 원 규모의 투자를 단행할 것이라는 매머드급 계획을 내놨다. 그룹 역사상 최대 규모의 국내 투자 계획이다. (관련기사: 현대차, 125.2조 '최대 국내투자' 5년간 단행…'AI·로봇 발전' 힘 싣는다) 국내 AI·로봇 산업 육성과 그린 에너지 생태계 발전에 초점을 맞춘 이번 투자 계획에는 △고전력 AI 데이터센터 건립 △현대차그룹 피지컬 AI어플리케이션 센터 설립 △로봇 완성품 제조와 파운드리(위탁생산) 공장 조성 △1GW 규모 고분자전해질막(PEM) 수전해 플랜트 서남권 건설 등 굵직한 구상들이 대거 포함됐다. 이에 더해 현대차·기아가 올 한해 1차 협력사가 부담하는 대미(對美) 관세 전액도 소급 지원한다는 내용도 발표됐다.
최태원 SK그룹 회장이 16일 용산 대통령실에서 열린 한미 관세협상 후속 민관 합동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연합뉴스SK그룹도 2028년까지 128조 원이 넘는 국내 투자를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특히 경기 용인시에 조성되는 대규모 반도체 산업단지인 용인반도체클러스터에 SK그룹은 2027년 가동을 목표로 반도체 생산공장(팹) 1기를 짓고 있는데, 향후 계획대로 4기를 짓게 되면 총 투자규모만 600조 원에 이를 것으로 추산된다는 게 그룹 관계자 설명이다.
아울러 국내 반도체 소부장(소재, 부품, 장비) 생태계 활성화를 위해 정부와 공동 구축 중인 트리니티 팹, SK그룹과 아마존웹서비스(AWS)가 협력해 건설 중인 울산 AI 데이터센터, 오픈AI와 구축을 검토 중인 서남권 지역 AI 데이터센터 등도 국내 주요 투자 계획으로 제시됐다.
SK그룹은 또 매년 8천명 이상인 채용 규모도 늘려나갈 것이라고 했다. 팹 완공 속도에 따라서는 1기당 1만 4천명에서 2만명까지 직간접 고용효과가 예상된다고 그룹은 밝혔다.
구광모 LG그룹 회장이 16일 용산 대통령실에서 열린 한미 관세협상 후속 민관 합동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연합뉴스LG그룹도 향후 5년 동안 100조 원을 국내에 투자할 것이라며, 이 가운데 60%는 소부장 기술 개발과 확장에 투입하겠다고 밝혔다. 특히 협력업체에 설비 자동화, AI 노하우를 전수해 산업 전반의 경쟁력을 높이겠다는 방침이다. 회의에 참석한
한화그룹과 HD현대도 조선업과 방산 분야 등을 중심으로 5년 간 각각 11조 원, 15조 원을 국내에 투입하겠다고 약속했다.
셀트리온 역시 3년 간 국내 시설투자에만 4조 원을 쏟아붓겠다고 했다.
'대미 투자 확대로 국내 산업 위축' 우려 불식 차원…총수들 일제히 "관세 합의 감사"
이 대통령과의 회의에서 재계 총수들은 정부가 미국과 관세 합의를 이뤄내면서 기업을 둘러싼 경영 불확실성이 경감된 점에 대해 감사를 표했다.
이 대통령은 이 자리에서 "대미 투자 강화로 국내 투자가 줄어들지 않을까 하는 걱정들을 하는데, 여러분이 잘 조치해줄 것으로 믿는다"고 했는데, 총수들이 내놓은 국내 투자 확대 방안은 그 해결책으로도 여겨진다.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이 16일 용산 대통령실에서 열린 한미 관세협상 후속 민관 합동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연합뉴스삼성전자 이재용 회장은 "관세 협상 타결로 기업들이 크게 안도하고 있다. 그동안 정말 노고가 많았다. 감사하다"며 "국내 산업 투자 축소 우려가 일부에 있겠지만, 삼성은 국내 투자 확대, 청년 일자리 창출, 중소·벤처기업 간의 상생에 더욱 노력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 회장은 또 "대통령이 경주 한미 정상회담을 마친 뒤 '어려운 대외 환경을 맞아 국력을 키워야 되겠다'고 했는데, 어떤 말보다 제 머릿속에 남았다"며 "삼성은 미래 기술 개발을 위해 할 수 있는 모든 노력을 하겠다"고 덧붙였다.
SK그룹 최태원 회장도 "신중하고 결단력 있는 리더십으로 협상을 잘 이끌어 준 데 대해 감사하다"며 "교역 환경의 불확실성이 해소된 만큼, 국내 기업들도 실질적인 경제 성장을 창출하기 위해 노력을 계속하겠다"고 밝혔다.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 역시 "한미 협상 타결에 따라 글로벌 강국으로 도약할 기회를 마련해 준 대통령과 정부의 모든 분들에게 진심으로 감사하다"고 했다. 정 회장은 이어 "미 관세로 인한 수출 감소와 국내 생산 위축 우려를 잘 알고 있다. 그래서 현대차그룹은 국내 공장의 완성차 수출을 확대하고, 특히 국내 전기차 전용 공장 신설을 통해 차량 수출을 2030년까지 현재 대비 2배 이상 확대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구광모 LG그룹 회장도 "국익을 최우선에 두고 끝까지 협상 과정을 이끌어준 정부에 깊이 감사드린다. 이번 한미 관세 협상으로 오랫동안 이어졌던 불확실성이 많이 해소됐다"며 "앞으로 기업이 해야 할 일은 미래 시장을 이끌 첨단 기술을 지속 확보하고, 이에 필요한 소재, 부품, 장비를 국내에서 개발하고 생산하는 혁신 생태계를 꾸준히 키워나가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LG도 이를 위한 국내 투자와 협력에 더욱 노력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