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의힘 장동혁 대표가 6일 광주 북구 국립5·18민주묘지에서 시민단체의 항의를 받고 있다. 연합뉴스국민의힘 장동혁 지도부가 광주 5.18민주묘지에서 문전박대를 당했다. 장 대표는 기자들에게 "참배를 막는 것은 이해하기 어렵다"고 했다는데, 묻지 않아도 알 것이다. 자업자득이다.
장 대표는 광주 방문에 앞서 6일 오전 최고위원회의에서 "민주주의를 위해 스러져간 5월 영령들 앞에 고개를 숙이겠다", "오늘 우리의 이 발걸음이 진정한 화합과 국민통합의 미래로 나아가는 새로운 이정표가 될 것이다. 진심을 다하겠다"고 의미를 부여했다.
'민주주의, 화합, 통합, 미래, 진심', 좋은 말은 다 갖다붙였지만 바람이 술술 새듯 마음 속에 남는 것 없이 공허하다. 아니 분노가 치미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윤석열 정권의 탄생에서 몰락의 과정을 지난 수 년간 온 국민이 생중계처럼 지켜봤는데, 그런 관객들 앞에서 정치쇼를 한다고 통할 리 있겠는가. 그럴듯하게 포장한 단어들이 그동안 당이 지나온 궤적과는 반대 방향이었음을 알 만한 사람은 다 안다.
국민의힘 지도부가 방명록에 서명도 못한 채 5.18민주묘지에서 쫓겨나고, 지역 시민단체로부터 "5.18을 정치적으로 이용하려는 얄팍한 수작"이라는 손가락질을 당한 것은 내란옹호당에 대한 성난 민심의 일부분일 뿐이다.
이틀 전에도 국민의힘은 이재명 대통령의 예산안 시정연설에 불참했다. 추경호 전 원내대표에 대한 내란특검의 구속영장 청구에 항의하는 차원에서다. 사상 최대인 728조원의 예산이 제대로 짜여져 있는 지 감시하는게 국회의 임무인데 제1야당이 보이콧을 선언한 것은 직무유기다.
"이번이 마지막 시정연설이 돼야한다"든가 "꺼져라"는 식의 원색적인 극언은 더욱 우려스럽다. 대미 관세협상과 에이펙 정상회담에서 강행군을 벌이고 돌아온 대통령에게 시정잡배나 쓰는 막말을 퍼부은 것은 정쟁을 넘어 다수 국민에 대한 모독이기도 하다.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 송언석 원내대표 등 의원들이 4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야당 탄압 규탄대회를 하고 있다. 국회사진기자단특검의 수사를 야당 탄압으로 연결시키는 것도 무리가 있다. 비상계엄 직후인 지난해 12월 4일 당시 국민의힘 내부에서조차 비상계엄해제요구 결의안 표결에 국민의힘이 대거 불참한 것과 관련해 "의도는 알 수 없지만 결론적으로 혼선을 줘서 (표결 참여를) 방해한 결과가 됐다. 그런 모든 행위는 국민들께서 용서할 수 없을 것"이라는 목소리가 나오지 않았나. 추경호 원내대표도 "당당히 수사에 임할 것"이라고 밝혔으니, 국민의힘은 정쟁이 아니라 수사와 재판을 통해 진실규명에 협조하는 게 순리다.
쇼를 진심처럼 보이게 하려면 정성이라도 필요한데, 국민의힘 지도부의 행보는 정성도 없고 큰 그림도 없어 보인다. 지난달에는 내란과의 결별 대신 내란 우두머리 윤석열을 면회한 뒤 "하나로 뭉쳐 싸우자"고 했다. 대놓고 '윤어게인' 강성지지층에 호소하면서 5.18 민주묘역에도 참배하겠다는 발상은 어디서 나온 건지 종잡을 수 없다.
국민의힘에 희망이 보이지 않는 것은 변화하지 않기 때문이다. 계엄과 탄핵이라는 거대한 태풍이 닥쳐도 극우와 뒤엉킨 정치행태는 요지부동이다. 김건희씨가 근정전 어좌에 앉았던 사실이 드러나도, 그리고 진술을 번복해 샤넬백을 받았다고 시인해도 당에서는 비판과 반성, 사과 한마디 없다.
군통수권자였던 윤 전 대통령이 지휘관들과 관저에서 '술판'을 벌인 걸 자백했는데도, 국민의힘은 위험천만했던 통치 과정에 대해 일절 공식 반응이 없다. 다수의 국민이 '만일 윤석열이 관세협상을 했더라면…'이라는 끔찍한 상상을 하고 있음에도, 대미협상을 진행한 현 정부에는 고춧가루 뿌리기에 바쁘다.
이코노미스트 한국특파원을 지낸 다니엘 튜더는 저서 <익숙한 절망 불편한 희망>에서 "민주주의 제도 자체에 문제가 있는 것이 아니다. 어떤 정치문화가 뿌리내리고 있느냐가 문제다"라고 강조했다. 법과 제도는 멀쩡해도 지도자를 배출하는 정당의 시스템이 고장나거나 시민의식이 미흡하거나 견제와 균형이 흔들릴 때 민주주의는 실패한 제도처럼 보일 수 있다는 것이다.
다행히 내란극복을 통해 우리는 민주주의가 살아있음을 확인했다. 문제는 진보-보수 양날개 중 하나인 국민의힘의 운명이다. 익숙한 절망이 언제까지 이어질 지 알 수는 없다. 다만 윤어게인 세력과 결별한 뒤 환골탈태하지 않고서는 앞이 보이지 않는다는 점만은 분명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