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T광화문빌딩의 모습. 류영주 기자KT 무단 소액결제 및 해킹 사태 여파로 김영섭 대표가 연임을 포기했지만, 주요 거버넌스 주체인 이사회는 거취 표명 등 입장을 밝히지 않아 책임을 회피하는 게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이사회는 의장직을 이사회 내 다른 이사에게 넘기는 것으로 책임을 지겠다는 입장이지만, 내부에서는 "썩은 과일의 포장지만 바꾸는 게 아니냐"는 비판이 제기된다.
김영섭 대표 물러났지만, 이사회는 '의장 교체'에 그쳐
7일 KT에 따르면, 지난 4일 열린 KT 이사회에서 김성철 이사(고려대학교 미디어학부 교수)가 의장직을 사퇴하고, 김용헌 이사(법무법인 대륙 아주 변호사)가 의장직을 넘겨받았다. 김 전 의장은 최근 KT에서 발생한 무단 소액결제 및 해킹 사태와 관련해 이사회 차원의 책임을 지기 위한 조치라는 입장으로 전해졌다.
그러나
주요 거버넌스 주체인 이사회가 이사직 사퇴와 같은 거취 표명 없이 의장직만 교체하는 것은 책임 면피라는 지적이 나온다. 현재 KT 이사회는 10명으로 구성돼 있으며 이중 8명이 사외이사다. 업계에서는 소액결제 및 해킹 사태 이후,
김 대표 연임 포기와 함께 일부 이사가 사퇴하는 게 아니냐는 관측이 제기됐지만, 의장직 교체에 머문 것이다.
이에 대해 직원들과 노조원 사이에서는 "의장직을 다른 이사에게 돌리는 게 왜 책임 이행 조치인지 모르겠다",
"결국 썩은 과일의 포장지만 갈아치운 게 아니냐"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이사회가 김 대표의 경영 실패에 대한 책임도 공유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앞서 김 대표 재직 당시 KT는 마이크로소프트와 총 2조3천억원 규모의 계약을 맺었지만, 대외용 성과를 위한 불공정 계약이 아니냐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 또 정부의 '국가대표 AI' 선발 사업에도 고배를 마셨으며, 엔비디아의 그래픽처리장치(GPU) 수급 대상 기업에도 포함되지 못했다. 이후 전격적으로 진행된 구조조정 과정에서는 근로자 6명이 극단적 선택을 하기도 했다.
이사회가
지난 2023년 무리하게 김 대표 선임에 나섰다는 지적에서도 자유로울 수 없다. KT 대표에 선임되기 전, 김 대표는 LG CNS 재직 당시 1200억 규모의 정보시스템 구축 사업에 실패해 국정감사에서 강한 질타를 받았다. 그럼에도 당시 이사회는 선임에 나섰다. 오히려 이사회는 내부 대표 선임 자격 요건에서 'ICT 지식'을 삭제하고 '산업 전문성'으로 기준을 완화해, 구조조정 전문가인 김 대표를 위한 안배라는 지적이 많았다. 이를 두고 김 대표가 윤석열 정부 낙하산이 아니냐는 의혹도 나왔다.
이사회 '셀프 연임' 이력도…"이사들 서로 임기 거래 의심"
서울 시내의 한 KT대리점의 모습. 류영주 기자이사회의
'셀프 연임'도 논란을 더하는 대목이다.
지난해 이사회는 사외이사 8명 중 올해 3월 임기가 만료되는 4명(김성철·김용헌·곽우영·이승훈)을 모두 재선임했다. 임기 만료를 앞둔 4명의 이사가 모두 재연임하는 것은 드문 일이다. 당시 경영진에서는 빠르게 변화하는 경영 환경에 대응하기 위해 외부 인사 3명을 영입하자는 의견을 제시했지만 거부된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이들 4명의 이력이 당시 통신사가 공들이던 인공지능(AI) 분야와 거리가 있다는 점도 문제로 지적됐다.
일각에서는 이들 사외이사가 임기를 '짬짜미'한 게 아니냐는 의혹을 제기하고 있다. 올해 임기가 연장된 4명이 그 대가로, 내년 3월에 임기가 끝나는 나머지 4명의 임기도 연장해 주려는 게 아니냐는 것이다.
권한을 독점 중인 이사회 멤버들이 서로의 연임을 보장하는 거래를 진행한 것 아니냐는 회사 안팎의 시각도 상당하다.
결국
최소한
김 대표 선임 과정에 주도적인 역할을 했던 일부 이사들은 대표이사후보추천위원회(사추위) 활동이 종료되는 내년 3월 이후 거취를 표명해야 하는 게 아니냐는 목소리가 나온다. 당장은 혼란 수습을 위해 새 대표 선출에 집중해야 하지만, 이후에는 이사 교체가 불가피하다는 지적이다.
KT새노조는 4일 성명서를 통해 "이사회는 KT의 공공성과 책임경영 회복을 위해 스스로의 역할과 책임을 분명히 해야 한다"며 "새 CEO 선임 이후, KT 이사회 역시 김영섭 체제의 경영 실패에 대한 공동 책임을 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와 관련해 이사회 측은 "해킹 사태와 직접 의결하지는 보고를 받았지만 관련 의결은 없어 결정에 관여하지는 않았다"는 입장으로 전해졌다.
한편 KT는 지난해 자사 서버가 강한 악성 코드에 서버 43대가 대량 감염된 사실을 자체 파악하고도 당국에 신고하지 않고 은폐한 것으로 나타났다. 민관합동조사단은 전날 이같은 내용의 중간 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해당 감염 서버에는 이용자의 성명과 전화번호, 이메일 주소, 단말기 식별번호(IMEI) 등 개인정보가 담긴 것으로 파악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