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일 서울 중구 하나은행 본점 딜링룸에서 딜러가 업무를 보고 있다. 연합뉴스고공행진하던 코스피가 인공지능(AI) 고점론으로 숨 고르기에 돌입한 모양새다. 시장은 AI 고점론을 반박하며 5천피 달성 전망에 힘을 싣고 있다.
다만 미국 지역은행에서 발생한 신용 부실 리스크가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와 비슷한 충격을 줄 '불씨'가 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7일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코스피는 지난 4일부터 전날까지 3거래일 연속 하락하며 4000선 방어에 집중했다. 코스피가 3거래일 연속 내린 것은 지난 9월 24~26일 이후 처음이다.
10월 들어 3500선 돌파를 시작으로 4200선까지 사상 최고점을 끌어올리며 20% 가까이 상승한 코스피가 가쁘게 숨을 고르는 이유는 'AI 고점론' 탓이다.
모건스탠리와 골드만삭스의 최고경영자(CEO)가 10% 이상 조정 가능성을 시사한 상황에서 영화 '빅쇼트'의 주인공인 마이클 버리가 엔비디아와 팔란티어 하락에 베팅한 사실이 알려지며 뉴욕증시 고평가에 부담을 느끼던 투자 심리가 급격하게 냉각됐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등 '반도체 투톱'이 상승 랠리를 이끌던 코스피도 한때 고점 대비 8% 넘게 하락했다.
다만 이번 코스피는 지난해 8월 5일 AI 고점론 영향으로 하루 만에 8% 하락한 '블랙먼데이'와 달리 투자 심리가 빠르게 회복하는 분위기다.
단기적으로 변동성 확대가 불가피하지만, AI 인프라 투자에 따른 반도체 실적 회복은 이제 막 시작했기 때문에 밸류에이션이 훼손되지 않았고 상법 3차 개정안 등의 연내 처리로 코스피 상승 원동력이 살아있다는 분석에 힘이 실리면서다. 코스피는 기술적으로도 20일 이동평균선을 지지하며 반등했다.
시장은 AI 고점론보다 아직 수면 아래에 있는 '미국 신용 리스크'를 우려하는 분위기다. 전 세계 금융시장에 큰 충격을 준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를 촉발한 '구조화 상품'이 다시 문제가 됐기 때문이다.
지난 9월 미국 중고차 담보대출 업체인 '트라이컬러' 등 서브프라임(저신용자) 대상 자동차 금융회사가 잇따라 파산하거나 보호신청을 하면서 지역은행들이 부실 및 사기성 대출로 인한 손실을 발표했다.
'신용 리스크'에 대한 의심이 커진 이유는 저신용 대출자 증가와 '구조화 상품'이 엮이면서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를 떠올리게 한 탓이다. 당시 위기도 저신용자의 주택담보대출을 유동화한 구조화 상품인 '주택저당증권(MBS)'이 문제가 됐다. 고금리와 주택 가격 폭락으로 인해 저신용자가 파산하자 MBS를 거래한 금융기관의 파산으로 이어져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 또는 '리먼브라더스 사태'로 불리기도 한다.
이번에 문제가 된 구조화 상품은 '프라이빗 크레딧 부채담보부증권(CLO)'과 유사한 구조다. 프라이빗 크레딧 펀드는 기업에 대출해 주고 받은 채권을 다시 담보로 금융기관에서 대출(NAV Loan) 받는다. 또 이 채권을 기초자산으로 CLO를 만들어 투자자에게 판매한다.
즉 금융기관과 CLO 투자자가 하나의 채권을 놓고 각각 다른 권리를 갖는다. 이른바 '이중담보 충돌' 사건이다.
더 큰 문제는 현재 드러나지 않은 이중담보 구조화 상품이 상당한 규모일 가능성이다. JP모건의 제이미 다이먼 최고경영자(CEO)가 트라이컬러 파산과 관련해 "바퀴벌레가 한 마리 나타났다면 아마도 더 많을 것"이라고 지적한 이유다.
iM증권 이승재 연구원은 "취약차주 환경 악화가 세부 부문에서 나타나는 가운데 2008년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 이후 다각화된 미국 차주들의 자금조달 경로에 부실화가 일부 일어나고 있다"면서 "은행권 규제에서 벗어난 일종의 '그림자 금융'으로 볼 수 있으며 강제적 디레버리징(부채 축소) 시기에는 저신용자 대출부터 부실이 순차적으로 일어날 수 있음을 고민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시장은 이번 사건의 영향이 제한적일 것으로 본다.
손실 규모와 범위가 2023년 실리콘밸리은행 파산 때보다 작기 때문에 충분히 대응할 여력이 있다는 분석에서다. 또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 등 금융당국과 은행들도 대출 심사 강화와 리스크 재점검 등에 나섰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번 사태가 신용 리스크로 확대하지 않도록 경계하고, 구조화 상품에 대한 투명성을 확보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iM증권 이 연구원은 "2008년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 직전에도 리스크를 진단할 당시에는 위험성이 제한적이라고 시장이 판단했던 점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고 꼬집었다.
하나증권 이영주 연구원은 "트라이컬러 사태는 단순한 기업 파산이 아니라 유동성의 속도와 자산의 중복이 결합할 때 금융시장이 얼마나 빠르게 허수로 팽창할 수 있는가를 보여준 축소판"이라며 "가장 중요한 것은 '하나의 담보가 몇 번 거래되고, 어떤 권리가 겹쳐 있는가'를 투명하게 아는 것이다. 그 투명성이 확보되지 않는다면 제도권의 합법적 구조조차 신뢰를 잃고 또 다른 시스템 리스크의 씨앗이 될 수 있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