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현지 제1부속실장이 지난달 21일 용산 대통령실에서 열린 국무회의에 참석해 있다. 연합뉴스여의도는 프레이밍 경합의 장(場)이다. 정당들은 주요 현안에 대해 하루에도 십 수 개의 논평을 쏟아낸다. 거대 양당이 상대방을 비튼 '내란의힘', '더불어탄핵당'은 서로를 어떤 틀(frame)에 가두려 하는지 잘 보여준다.
국정감사 기간 국회 출입기자의 귀에 박힌 단어는
'만사현통'(모든 일은 김현지를 통한다는 뜻)이다. 국민의힘이 이재명 대통령의 최측근인 김현지 대통령실 제1부속실장을 겨냥한 레토릭으로, '비선실세' 이미지에 방점을 찍었다.
야당은 추석 전부터 '1호 증인'으로 김 실장을 요구해왔는데, 여야 합의 실패로 이달 6일 국감 출석이 사실상 무산된 상황이다. 그럼에도
앞선 3주간의 감사는 '김현지 국감'으로 불렸다. 상임위마다 관련 의혹 제기와 공방전이 이어진 탓이다. 이쯤 되면 정치 고관여층이 아닌 유권자도 궁금해진다. 그래서 '김현지는 도대체 누구인지', '제1야당은 왜 이토록 그를 부르지 못해 안달인지' 말이다. 여기엔 약간의 배경 설명이 필요하다.
김 실장의 실명이 본격적으로 언론에 오르내린 것은 대선 직후 그가 대통령실 총무비서관직에 기용되면서부터다. 청와대 인사와 예산 등 살림 전반을 총괄하는 핵심 직책이다. 자연히 1998년 이 대통령이 설립을 주도한 성남 시민단체에서 시작된 인연도 조명됐다.
야권의 '집요한 관심'도 동반됐다. 국민의힘이 이재명정부 출범 후 지도부 행사나 논평에서 김 실장을 언급한 횟수는 회차수로만 어림잡아도 60회가 넘는다.
또 하나의 분기점은 올 7월 '보좌진 갑질 의혹'으로 '인사참사 논란'을 부른
강선우 전 여성가족부 장관 후보자의 자진사퇴였다. 들끓는 여론에도 당정이 대놓고 사퇴를 요구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결단을 종용한 주체가 김 총무비서관이었다는 언론 보도는 야당의 '좌지우지 현지'론(論)에 힘을 실었다.
물론 김 실장이 실제 국감 출석에 어떤 입장을 지니고 있는지 정확히 확인된 바는 없다. 또 '그림자 실세'란 별명이 말해주듯 워낙 외부의 주목을 꺼린다는 전언을 고려하면, 현 정국에 느꼈을 곤혹스러움도 짐작은 해볼 수 있다.
지난달 28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더불어민주당 문진석 원내수석부대표와 국민의힘 유상범 원내수석부대표가 만나고 있다. 연합뉴스하지만, 달라진 지위에 따라 부여된 책임은 또다른 차원의 문제다. 무엇보다
특정한 한 사람의 국감 출석이 이렇게 확대된 데엔 당정의 책임이 작지 않아 보인다.
민주당은 지난달 29일 운영위 회의에서 국감 당일 김 실장의 '오전 출석'을 지렛대 삼아 윤석열 전 대통령을 비롯한 전 정권 인사 수십 명의 출석을 국민의힘에 요구했다. 일반적으로 국감이 꼬박 하루에 걸쳐 진행된다는 점, 기관 업무보고 시간을 빼면 점심 정회까지 남는 질의시간이 얼마 없다는 점에 비춰보면 실제 의지가 있는지 의문스러운 대목이다.
야당의 뻔한 정쟁 유도에 응할 수 없다는 변명도 궁색하긴 마찬가지다. 14대 국회 이후로는 '비선 논란'으로 단명한 보수정부에서도 증언대에 서지 않은 총무비서관이 없었다고 한다. 2015년 박근혜정부 당시 이재만 총무비서관은 물론, 가깝게는 작년 윤석열정부 때 윤재순 총무비서관조차 국감에서 '김건희 여사 의혹' 관련 민주당의 추궁에 응했다.
국무회의 실시간 생중계까지 시도하며 대국민 소통의 투명성을 강조한 이 대통령의 국정 기조에도 부합하지 않는다. 폐쇄성의 끝판왕인 계엄의 반대급부로 등장한 '국민주권정부'가 내로남불(내가 하면 로맨스, 남이 하면 불륜) 비판을 굳이 자초할 이유는 뭔가.
진짜 '만사현통설(設)'을 키운 쪽은 누군가. 많은 이들은 국감이 임박한 9월 말 김 실장의 보직 변경 인사가 단행된 것을 두고 '국감 회피용'이 아닌지 의심했다. 그 직후 이같은 시선은 '확대해석'이라던 여당의 해명, "김 실장은 국회에 100% 출석할 것"이라고 단언한 우상호 대통령실 정무수석의 인터뷰를 허언으로 만든 것은 또 누구일까.
국민의힘의 공세가 그저 '꼬투리 잡기용'에 불과하다면, 이제는 정면 승부가 답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