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시간 랭킹 뉴스

기업이 오고, 청년이 머문다…유럽의 '실리콘 작소니' 드레스덴

노컷뉴스 이 시각 추천뉴스

닫기

- +

이 시각 추천뉴스를 확인하세요

편집자 주

인구 절벽이라는 피할 수 없는 흐름 속에 수도권 과밀화가 심화되고 있다. 수도권 밖 대부분의 지역이 지방균형발전을 외치지만 고령인구 비중이 전국에서 가장 높은 전남은 지역소멸 위기에 놓였다. 천혜의 자연경관과 산업 중심지로 지역경제를 이끌던 전남 동부권도 청년층 유출과 경기 침체로 활력을 잃은 지 오래다. 전남CBS는 지역소멸 위기 속에서도 역사와 문화, 산업의 특색을 살려 다시 살아나는 지역으로 거듭난 일본과 유럽의 사례를 통해 전남 동부권의 지속 가능한 해법과 전략을 모색한다.

[지역은 소멸하지 않는다⑥]
대학·연구소·기업·행정이 잇는 교육·경험·현장의 긴밀한 연계
산업 맞춤형 교육으로 지역 인재 양성… 졸업생 80% 지역 정착
프라운호퍼 연구소 12곳, 청년들에게 넓은 실무 경험의 장 제공
기업 유치보다 시스템 설계… 균형 잡힌 인프라로 주목받는 도시

드레스덴 전경. 전남CBS드레스덴 전경. 전남CBS
▶ 글 싣는 순서
① 인구감소 벼랑 끝 '선택과 집중'이 불러온 日 도야마의 변화
② 철강에서 문화도시로…9월이면 '린츠'가 들썩인다
③ '창조적 과소' 가마야마의 역설이 말하는 소도시의 생존법
④ 청년이 돌아온다… 라이프치히 30년의 '반전'
⑤ 변방 산골서 스마트워크로 변모…핵심은 '숫자' 아닌 '순환'
⑥ 기업이 오고, 청년이 머문다…유럽의 '실리콘 작소니' 드레스덴
(계속)

독일 동부 작센주의 주도 드레스덴. '엘베 강의 피렌체'라 불리는 이 도시는 예술의 향기가 흐르는 문화 도시이자, 유럽 최대의 반도체 허브로 변신한 첨단 산업의 중심지다. 바로크 양식 건물이 줄지어 선 구시가지와 최첨단 반도체 공장이 공존하는 풍경 속에 젊은이들은 떠나지 않는다. 오히려 돌아온다.

'실리콘 작소니'라 불리는 드레스덴은 독일 동부 작센주의 주에 위치해 있다. 두산백과 제공 '실리콘 작소니'라 불리는 드레스덴은 독일 동부 작센주의 주에 위치해 있다. 두산백과 제공 

TSMC가 드레스덴을 택한 이유

드레스덴은 지금 유럽에서 가장 역동적인 산업도시다. '실리콘 작소니(Silicon Saxony)'라 불리는 이 산업 네트워크에는반도체·전자·ICT 기업 3,600개가 모여 있고, 회원사만 650곳, 종사자는 7만6천 명에 달한다. 도시 전역이 하나의 거대한 생산·연구 단지처럼 이어져 있다.

2023년 8월 세계 최대 반도체 위탁생산 기업 TSMC는 드레스덴 북부 산업단지에 100억 유로(약 14조 원)를 투자해 유럽 최초의 생산기지를 짓기로 했다. 보쉬, 인피니언, NXP와 함께 ESMC라는 합작법인을 세우고, 2027년 가동을 목표로 공사를 진행 중이다.

토어스텐 쾰러(Torsten Köhler) 드레스덴 상공회의소 교육담당 이사는 "드레스덴에는 인피니언, 글로벌파운드리 등마이크로일렉트로닉스 기업이 밀집해 있다. 좋은 경제 환경과 함께 다양한 산업이 모여 있고, 연구소가 많으며 혁신 인프라가 잘 갖춰져 있어 TSMC 같은 글로벌 기업들이 자연스럽게 찾아온다"고 말했다.

TSMC의 결정은 단순한 부지 선정이 아니라, 산업 생태계·연구 인프라·행정 지원이 완벽히 맞물린 결과다. 이 도시는 '기업을 불러들이는 곳'이 아니라 '기업이 머물고 싶은 환경'을 설계한 게 핵심이다.

인터뷰 중인 안드레아스 프란체(Andreas Franze) 드레스덴 응용과학대학 부총장. 전남CBS인터뷰 중인 안드레아스 프란체(Andreas Franze) 드레스덴 응용과학대학 부총장. 전남CBS

교육기관을 넘어, 산업과 긴밀한 대학

드레스덴의 경쟁력은 대학에서 시작된다. 그 중심에는 HTW (드레스덴 응용과학대학)과 드레스덴 공과대학이 있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드레스덴 공과대학이 이론을 중심으로 한다면, 응용과학대학은 이론보다 실무를, 강의실보다 현장을 중시한다. 대학이 기업들과의 연계를 통해 청년이 머무를 도시를 위해 중점적인 역할을 하는 것이다.

HTW는 최소 500개 이상의 지역 기업과 협력 네트워크를 갖추고 있다. 학생들은 기업과 공동 프로젝트를 수행하며, 논문을 현장에서 완성한다. 교수진의 100%가 산업 경력자이며, 법적으로 최소 5년 이상 기업 근무 경험이 있어야 교수로 임용된다. 이 같은 환경 속에서 카운셀링을 제공하고 기업들과 네트워크가 잘 돼 있어 지속적인 연계가 이뤄진다. 이 사례는 대학이 지역 산업 및 사회와 유기적으로 연계될 때 청년 정착률을 높이고 지역 경제 활성화에 기여할 수 있음을 보여준다.

안드레아스 프란체 HTW 드레스덴 부총장은 "산업과 연계된 대학이 지역의 중심적인 역할을 해야 한다. 또 지역의 문화를 살려 학생들이 자부심을 느끼게 하는 것도 중요하다"며 "대학 시절 형성된 네트워크와 지역 친밀감이 졸업 후 정착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친다"고 강조했다.

HTW 졸업생의 80%가 지역에 남고, 재학생의 75%가 작센주 출신이다. 대학은 단순한 교육기관이 아니라 지역 산업을 움직이는 인재 허브다. 배움, 현장, 정착이 하나의 순환 구조로 이어진다.

전남CBS 취재팀이 드레스덴 응용과학대학 연구실에 대한 설명을 듣고 있다. 전남CBS전남CBS 취재팀이 드레스덴 응용과학대학 연구실에 대한 설명을 듣고 있다. 전남CBS

프라운호퍼 연구소 12개가 밀집… 다양한 실습 기회 제공  

드레스덴에는 독일 전역의 프라운호퍼 연구소 70여 곳 중 12개가 밀집해 있다. 소재, 반도체, 에너지, 바이오 등 각 분야의 핵심 연구소들이 대학과 기업, 그리고 산업 현장과 긴밀히 맞물려 돌아간다.

프라운호퍼 연구소장 상당수는 대학교수를 겸직한다. 연구소는 청년 실습 프로그램으로 아우스빌둥(직업교육), 대학 연계 인턴십, 듀얼 시스템 등 세 가지 주요 프로그램을 운영한다. 이 중 듀얼 시스템은 교수는 강의와 연구를 병행하고, 학생은 연구소에서 실습하며 학위를 준비하는 방식이다.

학생은 한 학기 동안 대학에서 배우고, 다음 학기에는 연구소나 기업에서 일한다. 3~4년 계약 기간 동안 월 1,200유로 내외의 급여를 받으며 공부와 일을 병행한다. 이 시스템을 통해 학생들은 경제적 지원을 받으며 실무 경험을 축적할 수 있다. 단순한 교육 기회를 넘어, 지역 산업 생태계와 청년 인재를 잇는 다리 역할을 하는 셈이다.

프라운호퍼 IKTS의 베아트리스 벤유스(Beatrice Bendjus) 공학박사는 "일하면서 공부하고 싶은 학생들은 연구소와 계약을 맺는다"며 "실습생들은 여러 분야의 프로젝트를 경험하며, 졸업 후 다양한 산업 분야로 진출할 기회를 얻는다. 학생들은 연구소와 지속적으로 연결돼 있어 단기 실습 이상의 가치를 갖는다"고 강조했다.

연구소는 드레스덴의 실험실이자 산업을 잇는 통로다. 학생은 실무 경험을, 연구소는 우수한 인재의 참여로 실제 연구를 진전시킨다. 기업은 즉시 현장 투입이 가능한 숙련 인력을 확보한다.

무엇보다 세계적으로 명성이 높은 프라운호퍼 연구소가 한 도시에만 12개 밀집돼 있다는 사실 자체가 청년들에게 강한 자부심과 동기부여를 안겨준다.

베아트리스 벤유스(Beatrice Bendjus) 프라운호퍼 연구소 공학박사가 일자리 연계 시스템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전남CBS베아트리스 벤유스(Beatrice Bendjus) 프라운호퍼 연구소 공학박사가 일자리 연계 시스템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전남CBS

기업은 유치하는 게 아니라, '올 이유' 를 만드는 것

드레스덴 경제진흥국의 슈테펜 리츠첼(steffen Rietzschel) 국장은"도시의 경쟁력은 개별 정책이 아니라 시스템 전체의 조화에 있다"고 강조한다.

리츠첼 국장은 "젊은 층이 드레스덴을 떠나지 않고 머무는 이유는 특정 한 가지 대책 때문이 아니다. 안정적인 주거, 교통, 교육, 취업, 커리어 성장 등, 이 모든 것이 함께 작동해야 한다. 우리는 기업을 억지로 유치하지 않습니다. 기업이 스스로 오고 싶어 하는 환경을 만드는 게 우리의 역할"이라고 정의했다.

드레스덴 행정은 대기업 유치보다 기존 기업의 성장 여건 조성에 초점을 둔다. TSMC처럼 2,000명을 고용하는 대기업과 단 3명의 스타트업이 같은 조건에서 활동할 수 있는 균형 잡힌 산업 생태계를 설계한다.

예를 들어, 인피니언은 현재 100메가와트의 전력을 사용하지만 5년 내 120메가와트로 늘 전망이다. 도시는 이미 전력망, 용수, 교통 인프라를 확충 중이다. 이처럼 예측 기반의 인프라 행정이 기업의 성장을 뒷받침한다.

드레스덴의 인구는 꾸준히 늘고 있지만, 주거비·물가·집값은 안정적으로 유지되고 있다. 대규모 신축보다는 기존 주택 리모델링·단열 개선 지원에 시 재정을 투입해 공급을 조절한다. 최근에는 60만 명이 모인 문화 축제가 열려 도시의 매력을 생활 전반으로 확장시켰다.

또한 드레스덴은 2010년부터 '드레스덴 컨셉트(Dresden Concept)'를 운영 중이다. 43개의 대학, 연구소, 기업, 도서관, 박물관이 참여해 장비·데이터·인력을 공동 활용한다. 프라운호퍼·막스플랑크·헬름홀츠·라이프니츠 등 독일의 4대 연구기관이 모두 이 네트워크 안에서 협업한다. 하나로 뭉치는 이 연결이 드레스덴의 경쟁력이다.

인터뷰 중인 슈테펜 리츠첼(steffen Rietzschel) 드레스덴 경제진흥국장. 전남CBS인터뷰 중인 슈테펜 리츠첼(steffen Rietzschel) 드레스덴 경제진흥국장. 전남CBS

배우며 일하는 독일식 직업교육 '아우스빌둥'

드레스덴의 낮은 청년 실업률을 가능하게 한 또 하나의 축은 독일식 직업교육 제도 '아우스빌둥(Ausbildung)'이다.

이 제도는 학생이 기업에서 일하면서 배우는 현장형 직업훈련 시스템으로, 기업이 교육비를 전액 부담하고 학생은 월 900~1,300유로의 급여를 받는다. 과정은 약 3년에 걸쳐 진행되며, 학생들은 주 중 3~4일을 기업에서, 1~2일은 학교에서 보낸다.

현재 드레스덴에서는 5천 개 이상의 직업 분야에서 85개국 출신의 청년들이 이 제도에 참여하고 있다.과정을 마친 대부분의 학생은 정규직으로 채용된다.

토어스텐 쾰러(Torsten Köhler)드레스덴 상공회의소 교육담당 이사. 상공회의소 제공 토어스텐 쾰러(Torsten Köhler)드레스덴 상공회의소 교육담당 이사. 상공회의소 제공  
아우스빌둥은 기업의 인력난을 해소하면서 청년에게 안정적 일자리와 성장 기회를 제공하는 제도다. 이 과정을 마친 학생들의 취업률은 100%에 가깝다. 기업들이 처음부터 청년을 '키워서 함께 일하기 위해' 계약을 맺기 때문이다. '배우며 일하는 시스템'이 취업생들에게는 현장 감각을 익히며 안정적으로 경력을 쌓을 수 있는 발판이 된다.

쾰러 이사는 "독일, 오스트리아, 스위스 등 아우스빌둥 제도를 시행하는 국가들은 다른 나라에 비해 청년 실업률이 낮다"고 덧붙였다.

드레스덴의 슬로건은 '내일의 집, Tomorrow's Home.'

반도체 공장과 바로크 돔이 같은 하늘 아래 빛나는 도시에 기업이 몰리고 청년이 머무는 이유는 단 하나가 아니었다. 산업이 기회를 만들고, 대학과 연구소가 사람을 키우며, 행정이 환경을 받쳐 주기 때문이다.

* 본 보도는 한국언론진흥재단의 정부 광고 수수료를 지원받아 제작되었습니다.

0

0

실시간 랭킹 뉴스

오늘의 기자

※CBS노컷뉴스는 여러분의 제보로 함께 세상을 바꿉니다. 각종 비리와 부당대우, 사건사고와 미담 등 모든 얘깃거리를 알려주세요.

상단으로 이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