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불어민주당 정청래 대표가 정부조직법 처리를 예고한 본회의를 앞둔 25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의원총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연합뉴스이재명 정부 첫 정부조직법은 금융조직 개편안이 통째로 빠진 채 국회 본회의에 올라갔다. 정부조직법은 당초 여야가 '더 센 특검법' 완화를 조건으로 협의를 약속했었다는 점에서, 정청래 대표가 합의를 파기한 게 문제의 단초가 됐다는 지적이 나온다.
합의 파기가 불러온 '나비효과'
더불어민주당과 정부가 지난 7일 발표한 정부조직 개편안에는 금융위원회의 금융 기능과 감독 기능을 분리하는 내용이 담겨 있었다. 예산·재정 정책과 금융정책을 기획재정부로 이관해 한 축에서 관리하게 하고, 별도로 금융감독위원회를 신설해 감독 기능을 분리·강화하겠다는 취지였다.
그러나 당정은 25일 해당 법안의 국회 본회의 상정 계획을 3시간여 앞두고 급히 내용을 바꿨다. 당과 정부, 대통령실 간 긴급 회의 뒤 브리핑에서 "패스트트랙(신속처리안건)으로 추진하려고 했던 금융위원회의 정책 감독 기능 분리와 금융 소비자보호원 신설을 담은 부문은 이번 정부조직 개편에 담지 않기로 했다"는 발표가 나왔다.
금융조직 개편안을 정부조직법에서 급히 뺀 이유로 당정은 '국민의힘 반발'을 꼽았다. 민주당의 입법 강행에 반대하는 국민의힘이 금융위 설치법 등 금융조직 개편을 뒷받침할 후속 법안 처리에 반대하고 나설 게 분명하다는 이유였다.
실제 국민의힘 소속 윤한홍 정무위원장이나 임이자 기획재정위원장이 안건을 상정하지 않으면 정부·여당의 시간표대로 금융조직 개편안을 완성하기는 사실상 무리였다.
고육지책으로 후속 법안을 패스트트랙에 올릴 수 있지만 부담은 남을 수밖에 없었다. 미국과 관세협상이 중대 기로에 놓인 데다 3500억 달러 대미투자가 현실화할 경우 경제 불확실성이 커질 우려가 있는데, 외환정책의 키를 쥔 금융위가 그 동안 사실상 식물 상태가 될 우려가 있기 때문이었다.
민주당의 한 재선 의원은 CBS노컷뉴스에 "만약 그 사이에 미국과의 관세 협상에 문제가 생기기라도 하면 모든 책임을 지게 됐을 것"이라고 말했다.
어정쩡한 상태가 장기화할 가능성도 적잖았다. 후속 법안이 상임위 문턱을 넘기까지 국회법상 패스트트랙 시한으로 규정된 180일을 꽉 채울 경우 내년 3월말쯤 된다. 그런데 그 때는 이미 6·3 지방선거를 두달 앞두게 되는 터. 선거 중이라 각자가 여론에 예민할 때 정부조직법 개정을 강행한다는 건 무리가 따를 수밖에 없는 일이다.
아울러 올해 말 내년 예산안을 짤 때, 법적 근거가 뚜렷하지 않은 정부기관에 예산을 배정하기 어렵다는 점까지 고려하면, 여러모로 금융조직 개편은 난관이 많아 보였다. 이런 혼란을 막기 위해 별안간 꺼낸 고육지책이 바로 금융조직 개편을 이번 정부조직법에서 빼는 것이었다.
정청래 책임론 제기…의총서도 반발
연합뉴스덕분에 최악은 면했지만 당 안팎에서는 결과적으로 이렇게 정부조직법 후퇴를 초래한 정청래 대표의 '책임론'도 심심찮게 거론된다.
앞서 김병기 원내대표는 '더 센 특검법' 완화를 조건으로 국민의힘 측에서 정부조직법 처리 협조를 약속받았지만, 하루 만에 파기됐다. 합의 소식이 알려지자 강성 지지층과 강경파 의원들 사이에서 "내란 종식은 협상의 대상이 아니다"라는 공개 반발이 터져나왔고, 정 대표가 재협상을 지시하기에 이르렀다.
이날 본회의 직전 의원총회에서도 '국정기획위원회가 오래 논의한 개편안을 급하게 수정한 건 매우 아쉽다'는 취지의 문제 제기가 나온 것으로 파악됐다.
국정기획위에서 금융조직 개편에 머리를 맞댔던 한 관계자는 "여야 원내대표 간 합의가 명분도, 실리도 괜찮았는데 메시지 관리 문제로 타협하는 것처럼 비치면서 결국 이렇게 됐다"고 아쉬움을 토로했다.
다른 여권 관계자도 "합의 정치가 실종되면서 벌어진 문제"라며 "이렇게 되면 관료들은 '아, 실력이 없는 정부구나' 하면서 잘 따르지 않게 된다. 말을 꺼내놓고 실천하지 않는 건 최악"이라고 말했다.
물론, 합의 파기보다 국민의힘의 '발목 잡기' 태도가 근본적인 문제라는 반론도 나온다. 한 민주당 의원은 "국민의힘은 비쟁점 민생 법안도 이해관계에 따라 반대하는데, 정부조직 개편에 순탄하게 동의해줬을 것이라고 기대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결국에는 위원장 선에서 막았을 게 뻔하고, 동의해 주지 않을 사람들이기 때문에 이렇게 한 것"이라고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