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합뉴스국내 이공계 인재들이 새로운 기회를 찾기 위해 중국으로 떠나고 있는 가운데, 중국 대표 빅테크 기업인 화웨이에서 일하는 한국인 연구진만 3백명 이상인 것으로 확인됐다. 중국 빅테크들이 고액의 연봉을 제시하며 전세계 인재들을 흡수하고 있는 가운데, 한국 연구진들도 상당수 중국에 포진해 있음이 수치로 확인된 것이다.
韓 이공계 인력도 석학도 속속 중국으로
CBS노컷뉴스 취재결과, 중국 기술굴기의 선봉장 역할을 하고 있는 중국 대표 빅테크 기업 화웨이에서 일하는 한국인 R&D 인력이 올해 6월 기준 3백명대인 것으로 파악됐다.
중국 화웨이의 상황을 잘 아는 한 업계 고위 관계자는
"화웨이에서 일하는 한국인 R&D 인력이 3백여명"이라며 "이들은 조선족 등이 아닌 한국에서 정규 교육을 받은 한국 국적의 인재들"이라고 말했다.
이어
"국내 이공계 인재들이 미국 빅테크로 나간다는 점은 많이 알려져 있지만, 화웨이 외에 다른 중국 기술 기업에서 일하는 한국인 이공계 인력 규모 역시 상당한 수준이라고 알고 있다"고 덧붙였다.
화웨이의 R&D 인력은 전체 직원(20만8천명) 중 55%로 R&D 인력 중 한국인이 차지하는 비중이 절대적으로 크다고는 볼 수 없다. 다만
은퇴가 예정된 이공계 인력 등이 주로 중국행을 택한다는 일반적인 인식과 달리 현역 인력들의 비중도 상당하단 게 중국 기술 업계를 잘 아는 인사들의 전언이다.
중국행을 택하는 국내 이공계 석학들도 줄을 잇고 있다. 통신·신호처리 분야 석학으로 최연소 임용 기록을 세웠던 한국과학기술원(KAIST) 전기 및 전자공학과 송익호 명예교수도 최근 중국 청두 전자과학기술대(UESTC) 기초 및 첨단과학연구소 교수로 부임했다.
앞서 국가 석학으로 지정된 과학자인 국내 대표 물리학자인 이기명 전 고등과학원 부원장과 탄소나노튜브(CNT) 세계적 권위자인 이영희 성균관대 석좌교수도 정년퇴직 후 중국으로 이동하는 등 이공계 인재들의 중국 이동은 이례적이지 않은 상황이 됐다.
고액 연봉에 이공계 우대하는 中…과기한림원 회원 2명 중 1명, 中서 제안
연합뉴스이공계 인력의 중국행은 고액 연봉과 더불어 기술 인재를 우대하는 분위기가 적지 않은 영향을 주고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1978년 덩샤오핑(鄧小平) 집권 이후 중국은 대대적인 개혁·개방 정책을 추진하며 과학 기술 등을 국가 대계로 삼았고, 이공계를 중심으로 대학을 활성화 시키는가 하면 기술 관료들이 대거 등용됐다.
특히 2018년 미국이 중국의 기술 굴기를 막기 위한 제재를 시작한 뒤 중국 주요 대학과 기술 기업들은 인재 유치에 열을 올리고 있는데 한국 이공계 인재 역시 이들의 주요 '표적' 중 하나다.
한국과학기술한림원이 지난 5월 정회원 200명 대상으로 설문 조사한 결과 61.5%가 5년 이내 해외 연구 기관으로부터 영입제안을 받은 경험이 있다고 답했다. 특히 이들 중 82.9%는 중국에서 영입 제안을 받았다고 답했다.주중 대사관 상황을 잘 아는 한 인사는
"미국의 대중 제재 전부터 주한 중국대사관 인력의 중요한 역할 중 하나가 중국으로 갈 수 있는 한국인 이공계 인력을 찾는 일이었다"고 전하기도 했다.
이공계 인력을 향한 러브콜도 적지 않다.
국내 한 대기업R&D센터에서 일하고 있는 한 관계자는 "중국 기업이 제시하는 연봉 등 처우는 국내 기업과는 비교가 안 되는 수준"이라며 "국내에 중국 기업에서 일하는 것에 대한 인식이 호의적이지 않은 부분이 있다는 점이 하나의 걸림돌이라면 걸림돌인데, 경기가 좋지 않을 때 이공계 인력, 연구 인력부터 내치는 한국과 중국의 분위기는 사뭇 다른 것 같다"고 말했다.
美 전문직 신규 비자 발급비 100배 인상, 韓에 반사이익? 글쎄
최근 미 행정부가 과학·기술·공학·수학(STEM) 분야의 전문 직종에 적용되는 비자인 H-1B 비자 신규 발급 비용을 현행 1천달러에서 10만달러(우리돈 약 1억4천만원)로 대폭 인상한 것을 두고 국내에선 '글로벌 이공계 인재 유치의 기회로 활용하자'는 이야기가 나오지만 이공계 인력들은 고개를 갸웃거리는 분위기다.
현 상황에서
미국 잔류가 불발된 이공계 인재가 EU나 영국, 중국 등이 아닌 한국행을 선택할만한 유인책이 뚜렷하지 않다는 것이다.강훈식 대통령 비서실장은 전날 용산 대통령실에서 열린 수석보좌관회의에서 미국의 비자 정책 변화를 글로벌 이공계 인력의 국내 유치 기회로 활용할 방안을 마련하라고 관계부처에 지시한 바 있다.
국내 대학을 졸업한 후 미국 빅테크에서 일하고 있는 한 이공계 인사는 "비자 정책이 바뀌더라도 탑급 인재는 비자 비용을 감수 하고 라도 미국 기업들이 지키려고 할 것"이라며 "인도 엔지니어는 유럽을 중국 엔지니어는 본국행을 택할 가능성이 커 보이는데
한국인 유학생을 포함해 유럽과 중국, 한국 모두가 선택지가 될 수 있는 이들에게 처우나 분위기가 상대적으로 열악한 한국을 택할 유인책이 무엇인지 잘 모르겠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