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종섭 전 국방부 장관이 17일 서울 서초구 순직해병 특검(이명현 특별검사) 사무실에서 열린 '호주 도피성 출국' 의혹 관련 참고인 조사에 출석하고 있다. 채 상병 사건과 관련해 공수처의 수사 대상에 오르며 출국이 금지됐던 이 전 장관은, 지난해 3월 윤석열 전 대통령에 의해 호주대사에 임명됐고 곧바로 출국금지가 해제되며 호주로 떠났다. 박종민 기자순직해병 특검팀이 이종섭 전 국방부 장관의 호주 도피 의혹과 관련해 수사 속도를 내는 가운데, 실질적인 성과가 나타날지 주목된다. 출범 80일을 넘겼지만, 주요 피의자에 대한 기소나 구속은 아직까지 이뤄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특검팀은 의혹의 '정점'인 윤석열 전 대통령에 대한 조사를 오는 10월로 계획해두고 그 전까지 수사에 고삐를 쥘 것으로 예상된다.
해병특검, '이종섭도피' 尹정부 인사 줄소환
23일 법조계에 따르면 순직해병 특검팀은 이번 주 윤석열 정권 당시 외교·법무부 고위 당국자들을 줄소환해 이 전 장관의 호주 도피 의혹과 관련한 수사를 본격적으로 확대할 방침이다.
전날 이시원 전 대통령실 공직기강비서관을 불러 조사한 특검팀은 이날 이노공 전 법무부 차관을, 24일에는 조태열 전 외교부 장관을 각각 피의자 신분으로 불러 조사한다. 이 전 차관과 조 전 장관은 이 전 장관의 해외 도피를 도운 혐의(범인도피·직권남용)로 고발됐다.
이 전 장관은 2023년 7월 발생한 채상병 순직 사건 관련 수사외압 의혹의 핵심 피의자로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 수사선상에 올라 출국금지 조처가 내려졌다. 그러다 지난해 3월 4일 호주대사로 전격 임명됐고, 나흘 뒤인 3월 8일에 출국금지가 해제돼 출국했다. 이후 여론이 악화하자 방산 협력 공관장회의에 참석한다는 명분으로 11일 만에 귀국해 호주대사직에서 사임한 바 있다.
채상병 사건 수사 확대를 막기 위해 이 전 장관을 고의적으로 도피 시켰는지, 윗선이 어디까지 개입했고 어떤 논의 과정을 거쳤는지 밝혀내는 게 특검팀의 과제다.
특검팀은 이날 박진 전 외교부 장관도 관련 참고인으로 조사할 예정이다. 이 전 장관 호주대사 임명을 결정하고 인사 검증하는 과정에서 당시 외교부 장관이었던 박 전 장관이 보고받거나 지시한 것을 캐물을 것으로 보인다.
당사자인 이 전 장관의 경우 지난 17일 참고인 신분으로 불러 12시간 가까이 조사했다. 범인도피죄는 범인을 숨겨주거나 도피하도록 도운 자를 대상으로 하고 있어 해당 수사에서 도피 당사자인 이 전 장관은 참고인 신분이다.
특검팀은 이 전 장관 조사에서 '2023년 9월 중순에 윤 전 대통령이 먼저 대사나 특사로 보낼 수 있다는 이야기를 했다'는 취지의 진술을 확보한 것으로 전해졌다. 애초에 윤 전 대통령이 이 전 장관의 호주대사 임명을 기획·추진했을 가능성도 엿보이는 대목이다.
다만 이 전 장관 측은 "호주대사 임명을 통한 범인도피는 망상"이라며 강하게 반박하는 상태다.
이 전 장관 사건과 관련해선 지난달 압수수색이 이뤄진 장호진 전 국가안보실장, 박성재 전 법무부 장관, 심우정 전 검찰총장 등도 조사받을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채상병 순직 사건 당시 국방부 장관이던 이 전 장관은 채상병 사건 수사 외압·은폐 의혹과 관련해선 피의자 신분이기도 하다. 특검팀은 이날 오전 10시 이 전 장관에 대한 첫 피의자 조사를 할 예정이다. 아울러 같은 시간에는 직권남용 및 모해위증 등 혐의를 받는 김계환 전 해병대사령관에 대한 6번째 피의자 조사가 있다.
출범 80일 넘긴 특검팀, '기소·구속 無'…10월은 尹 조사
윤석열 전 대통령. 사진공동취재단이 전 장관을 둘러싼 의혹은 특검팀 수사의 큰 줄기로, 관련 성과가 나타날지 주목된다.
출범 80일을 넘긴 특검팀이지만 주요 피의자에 대한 기소나 구속은 아직까지 이뤄지지 않은 상태다. 지난 7월 김계환 전 사령관에 대한 구속영장을 청구했다가 기각된 이후, 추가 영장 청구도 없었다.
다른 특검(내란·김건희)에 비해 직접적인 증거 확보가 쉽지 않고 혐의 입증이 어려운 '직권남용' 사건의 특수성이 반영됐다는 평가가 나왔지만, 일각에서는 특검팀이 지나치게 조심스러운 것 아니냐는 지적도 제기됐다.
수사 실적이 저조하다는 지적에 특검팀은 "큰 문제가 없다"는 입장이다. 정민영 특검보는 "법이 개정돼서 11월 말까지 수사를 한다면 현재 중반이 지난 정도라 기소가 안 돼서 수사 실적이 없다는 건 맞는 비판인지 모르겠다"며 "특별히 수사 진행에 큰 문제가 있다고 판단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수사 '정점'인 윤 전 대통령에 대한 조사도 남아있는 상황이다. 특검팀은 오는 10월 정도에는 윤 전 대통령 조사가 있을 것이라며 "어떤 식으로든 중간 결론이라도 보여주지 않을까 싶다"라고 전망했다.
윤 전 대통령 조사를 앞두고 특검팀은 각종 혐의를 다지면서 준비를 할 것으로 예상된다. 조사 전까지 윤 전 대통령과 연결된 주요 피의자에 대한 기소나 구속 등 성과를 내는 것도 특검팀의 과제가 될 것으로 보인다.
한편 특검팀의 수사 기간은 더불어민주당 주도로 3대 특검법 개정안이 지난 11일 국회 본회의를 통과하면서 더욱 늘어났다. 특검팀은 30일씩 2회에 걸쳐 수사 기간을 연장한 뒤, 대통령의 재가를 거쳐 30일을 추가로 늘릴 수 있게 됐다.
부장검사 출신 한 변호사는 "기소·구속 시점은 특검의 수사 스타일에 따른 차이라고 볼 수 있지만 대통령이 마지막 수사 기한 연장을 받아들이기 위해서는 최소한의 명분이 필요할 수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