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 수원에서 의무경찰로 복무하면서 구로공단 파업 현장을 경험하며 사회의 격변과 노동 현실을 처음 체감했습니다. 그것이 인생의 전환점이 됐죠."1980년대 중반 의무경찰로 군 복무 중이었던 김선영 경기도의원(더불어민주당, 비례·59)은 사회의 변화를 온몸으로 느꼈다. 그저 소모품으로 여겨지던 노동자들은 비민주적 부조리에 맞서기 위해 너도나도 노동조합을 만들고 파업에 나섰다.
1991년 군 제대 이후 회사에 복직하니 이전에는 없었던 노동조합이 생겼다. 회사의 부당한 지시는 당연하지 않은 일이 됐고, 그저 순응하기만 했던 동료들은 사측과 맞서 싸웠다.
33일간 이어진 파업 동안 가장 먼저 앞으로 나가 노동자들을 위해 목소리를 높이자 동료들은 김 의원을 노조 위원장으로 추천했다. 당시 김 의원의 나이는 25살. 역대 최연소 한국노동조합총연맹 소속 노조 위원장의 탄생이었다.
"당시 새로운 집행부를 선출했는데 조합원 평균 연령이 42세를 넘는 상황에서 많은 선배들이 나를 위원장으로 추천했어요. 부모님 반대도 심했지만, 설득 끝에 위원장에 출마했죠."이후 12선을 거쳐 34년간 노조 위원장으로 활동하면서 노동자가 일하기 좋은 노동 환경을 만들기 위해 노력했지만 개인의 노력도 중요하지만 환경을 바꾸는 건 법과 제도라는 사실을 느꼈다.
"노동조합이 아무리 목소리를 내도 법과 제도가 움직이지 않으면 현실은 바뀌지 않더라고요. 그래서 정치에 관심을 갖게 됐습니다."
김 의원은 노조 위원장 출신이지만 노동자만을 위한 정치인은 아니다. 노동자는 기업이 있어야 존재할 수 있고, 기업도 노동자의 헌신 없이는 운영될 수 없다는 것을 잘 알기 때문이다.
"오랫동안 노동운동을 했지만 기업이 살아야 노동자의 삶을 지킬 수 있다는 믿음으로 활동했습니다. 노동자의 권익뿐 아니라 기업의 어려움도 함께 살피고 있습니다."
경기도의회 김선영 의원(더불어민주당, 비례). 박철웅 PD
김 의원의 목표는 '노사가 함께 살아가는 경기도'다. 이런 그의 바람은 그동안 추진했던 조례에도 고스란히 묻어나온다.
'경기도 산업구조 전환에 따른 노동전환 지원 조례'는 김 의원이 정치에 입문해 첫번째로 발의한 조례다. 4차 산업혁명에 적응하는데 어려움을 겪는 기업에 저금리 융자나 전환 설비 도입 지원 등 현실적인 방안을 제시하고, 노동자에게는 교육과 역량 강화 프로그램을 지원하는 것을 골자로 한다.
"4차 산업혁명과 기후 위기 대응, 탄소중립이라는 과제는 대기업이 주로도 추진되고 있습니다. 기존 제조업인 중소기업에서 이 흐름에 대응하기란 매우 어려운 상황입니다."또 최근에는 '경기도 소상공인 가치가게 지원 조례안'을 발의해 법적 기반 위에서 소상공인들을 지속적으로 지원할 수 있는 근거를 마련했다.
"'가치가게'라는 이름에는 '가치를 함께 나누는 가게', '경기도가 인증한 공신력 있는 가게'라는 의미가 담겨 있습니다. 단순 지원이 아니라 소상공인에게 자긍심을 심어주고 도민에게는 믿고 찾을 수 있는 가게를 연결하는 제도입니다."
김 의원의 다음 목표는 학생들을 위한 '노동 인권 교육'이다. 그 역시 학창 시절 노동이 무엇인지, 노동자의 권리와 의무가 무엇인지도 모른 채 일을 하면서 느꼈던 서러움을 새로운 세대가 느끼지 않았으면 해서다.
"지금도 많은 청소년들이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부당한 대우를 받고 있지만 권리조차 인지하지 못한 채 견디고 있습니다. 최소한 고등학교 때 노동에 대해 배우는 과정을 정규 교과에 넣을 수 있다면 사회에 나가서도 자기방어권을 가질 수 있습니다."
경기도의회 김선영 의원(더불어민주당, 비례). 박철웅 PD다음은 김선영 의원과의 일문일답이다.
Q. 정치에 입문하게 된 계기는?
약 30년 넘는 시간동안 노동운동 현장에서 일하는 사람들과 함께했다. 군 복무 시절이던 1980년대 중반, 수원에서 의무경찰로 복무하면서 구로공단 파업 현장을 경험하며 사회의 격변과 노동 현실을 처음 체감했다. 그것이 인생의 전환점이 됐다.
제대를 하고 복직한 회사는 노조가 없었고 민주화 바람과 함께 노조를 설립했다. 발기인 7명 중 한 명으로 참여했고 당시 나이가 25살이었다. 그 뒤 33일간의 파업을 주도하기도 했다. 당시 새로운 집행부를 선출했는데 조합원 평균 연령이 42세를 넘는 상황에서 많은 선배들이 위원장으로 추천했다. 부모님 반대도 심했지만, 설득 끝에 한국노총 역사상 최연소 위원장으로 선출됐다. 그게 1991년이다.
그 후 회사가 합병이 됐고 조합원들의 요청으로 경선에 나서 또다시 위원장으로 선출됐다. 그렇게 12선을 거치며 34년간 노동운동에 전념했다. 하지만 현장에서 아무리 노력해도 한계가 있다는 걸 뼈저리게 느꼈다. 결국 제도와 법을 만드는 정치의 역할에 대한 확신이 생겼고 당시 더불어민주당에서 제안을 받아 경기도의회 노동분야 비례대표로 정치에 입문하게 됐다.
Q. 노동현장에서 느꼈던 정치의 필요성은 어떤 것인가?
노동조합 활동만으로는 해결할 수 없는 구조적 한계는 너무 많다. 지난 2004년도 한국노총 성남·광주·하남 지역지부 의장과 경기본부 상임부의장을 역임하며 노동운동을 하는 많은 분들을 만났고 많은 이야기를 논의하는 과정에서 지역 노동자들의 권익을 지키려면 결국 '입법'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더욱 굳어졌다.
대표적인 예가 노동시간 단축이다. 주 52시간, 48시간, 그리고 주 40시간제가 정착되는 과정은 모두 정치의 힘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또 최근 경기도에서 추진하는 4.5일제도 마찬가지다. 노동조합이 아무리 목소리를 내도 법과 제도가 움직이지 않으면 현실은 바뀌지 않는다. 그래서 정치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현장의 경험을 바탕으로 제도 개선을 이끄는 사람이 되고 싶다.
Q. 경기도의회 입성하며 설정했던 목표가 있었나?
경기도의 많은 정책들은 조례도 없이 단년도 사업이나 시범사업으로 시행되고 이후 흐지부지되는 경우가 많다. 행정은 일관성과 지속성을 가져야 한다. 그러기 위해 반드시 근거가 될 조례가 필요하다. 어떤 정책이든 조례라는 법적 기반 위에 있어야 사업이 중단되지 않고 계속 발전할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조례 제·개정에 중점을 두고 있다.
또 노동과 경제는 서로 뗄 수 없는 관계다. 노동자는 기업이 있어야 존재할 수 있고, 기업도 노동자의 헌신 없이는 운영될 수 없다. 오랫동안 노동운동을 했지만 기업이 살아야 노동자의 삶을 지킬 수 있다는 믿음으로 활동해왔다. 노동자의 권익뿐 아니라 기업의 어려움도 함께 살피고 있다. '노사가 함께 살아가는 경기도'를 만들기 위해 기업과 노동이 상생하는 정책과 입법을 추진하고 있다.
경기도의회 김선영 의원(더불어민주당, 비례). 박철웅 PDQ. 기억에 남은 조례나 의정활동이 있다면?
제일 먼저 발의했던 '경기도 산업구조 전환에 따른 노동전환 지원 조례'안이 기억에 남는다. 시대는 빠르게 변하고 있다. 특히 4차 산업혁명과 기후 위기 대응, 탄소중립이라는 과제는 대기업이 주로도 추진되고 있다. 기존 제조업인 중소기업에서 이 흐름에 대응하기란 매우 어려운 상황이다.
그래서 산업구조를 전환하고 이에 맞게 노동자들도 재교육을 받을 수 있도록 지원하는 조례를 만들었다. 기업에는 저금리 융자나 전환 설비 도입 지원 등 현실적인 방안을 제시하고, 노동자에게는 교육과 역량 강화 프로그램을 통해 변화에 적응할 수 있도록 돕는다. 공공이 모든 걸 책임질 순 없지만, 방향을 제시하고 안내하는 역할을 반드시 해야 한다.
또 하나는 최근 발의한 '경기도 소상공인 가치가게 지원 조례안'이다. 기존에 '명품 점포', '100년 가게', '착한 가게' 등 소상공인 지원 사업들이 있었지만 일몰 되거나 지속되지 못한 경우가 많았다. 힘들게 준비해 놓고 예산이 끊겨 끝나버리는 식이다. 소상공인 입장에선 큰 허탈감을 느낀다.
이런 사업을 조례로 제도화해, 법적 기반 위에서 지속적으로 지원할 수 있도록 만들었다. '가치가게'라는 이름에는 '가치를 함께 나누는 가게', '경기도가 인증한 공신력 있는 가게'라는 의미다. 단순 지원이 아니라 소상공인에게 자긍심을 심어주고 도민에게는 믿고 찾을 수 있는 가게를 연결하는 제도다.
Q. 앞으로 꼭 이루고 싶은 정책이 있다면?
반드시 추진하고 싶은 정책은 '노동 인권 교육'이다. 어렸을 때 학교에서 노동이 무엇인지, 노동자의 권리와 의무가 무엇인지 단 한 번도 배운 적이 없었다. 그래서 처음 노조 활동을 시작할 때 수많은 오해와 사회적 낙인을 감당해야 했다.
지금도 많은 청소년들이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부당한 대우를 받고 있지만 권리조차 인지하지 못한 채 견디고 있다. 최소한 고등학교 때 노동에 대해 배우는 과정을 정규 교과에 넣을 수 있다면 사회에 나가서도 자기방어권을 가질 수 있다. 현재 일부 특성화고에서 노동교육이 시행되고 있지만, 인문계 학생들에게도 동일한 교육이 필요하다. 남은 임기 동안 꼭 실현하고 싶은 과제다.
Q. 의정활동을 하며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가치는?
'견리사의(見利思義)', 이익을 보면 그것이 과연 옳은 일인지 먼저 생각하라는 사자성어로 마음에 품고 있다. 정치 철학이라기보다 평소 가졌던 신념이다. 오랜 시간 노동운동을 하며 수많은 유혹을 마주했지만 일절 개입하지 않았다. 해야 할 일과 하지 말아야 할 일을 정확히 구분해야 한다. 정치도 마찬가지다. 그 선을 넘지 않고 '견리사의'하는 의정활동을 해나가겠다.
경기도의회 김선영 의원(더불어민주당, 비례). 박철웅 PDQ. 내년 지방선거다. 앞으로의 정치적 행보는?
경기도 광주시 오포에서 태어나 지금까지 12대째 살고 있는 토박이다. 누구보다 광주 지역의 민원과 숙원사업들을 잘 알고 있다. 그래서 내년 지방선거에서는 비례의원이 아닌 오포 지역구 도의원으로 출마하고자 한다.
광주는 급속히 성장한 도농복합도시다. 서울, 성남, 용인 등과 접해 있고 교통 인프라도 다양하지만 정작 기반시설은 턱없이 부족하다. 인구는 42만 명이 넘지만 교통체계나 SOC는 여전히 열악하다. 또 팔당댐 상수원 보호구역 규제로 인해 그동안 광주 시민들은 재산권 행사 제한을 받고 있다. 규제 완화와 교통 문제 해결이 광주시민들의 가장 절실한 과제다.
Q. "김선영은 OOO다"라고 표현한다면?
'김선영은 젊은 태양'이라고 표현하고 싶다. 보통 이름 '선영'의 '선'을 'Seon'이라고 사용하는데 저는 여권에도 'Sun'으로 쓴다. 학창 시절부터 태양처럼 따뜻하고 밝은 존재가 되고 싶다는 의미에서 사용했다. 태양은 우리 삶에 꼭 필요한 존재다. 도민들의 삶에 그렇게 필요한 정치인이 되고 싶다. 나중에 사람들이 '김선영은 언제나 따뜻한 태양 같은 사람이었다'라고 기억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