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종민 기자국민의힘 내홍을 촉발한 한 지점은 김경율 전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의 '마리 앙투아네트' 발언이었다. 2023년 말부터 윤석열 전 대통령 부인 김건희씨의 명품백 수수 사건을 두고 논란이 일었고, 이는 22대 총선에 악재로 작용할 것이 틀림 없었다. 김경율 전 비대위원은 이듬해 1월 김건희씨의 사과를 촉구했는데, 그러면서 김씨를 마리 앙투아네트에 빗대 파문을 일으켰다.
결국 김경율 전 비대위원은 여권의 집중 포화 속에 총선 출마를 접었고, 불똥은 그를 발탁했던 한동훈 전 비상대책위원장에게도 튀었다. 새로 헤게모니를 쥐기 위해 윤석열과 차별화를 꿈꾸었던 한 전 위원장이었지만, 폭설이 내리는 화재 현장에 윤 전 대통령을 맞아 '90º 폴더 인사'를 하며 무릎 꿇어야 했다. 사치와 향락의 대명사인 마리 앙투아네트의 이미지를 김건희씨에게 대입한 건 이처럼 대통령의 역린을 건드리는 일과 같았다.
그러나 시간이 흘러 김건희씨는 마리 앙투아네트를 넘어 레이디 맥베스에 비교되는 처지에 이르고 만다. 레이디 맥베스는 셰익스피어 4대 비극 중 하나인 '맥베스' 주인공의 아내로, 지난해 12월 영국 더 타임스는 "한국인들은 계엄령의 배후로 대통령의 '레이디 맥베스'를 지목하고 있다"는 제목의 기사를 실었다. 작품 속 레이디 맥베스는 야심에 끌려 남편을 부추겨서 왕을 죽이도록 했고, 그 회유에 넘어간 맥베스는 왕좌에 오르지만 결국 타락해 내외가 함께 파멸하고 만다.
이제 김씨는 차라리, 자신은 마리 앙투아네트와 같았을 뿐이라고 주장해야 할 신세다. 국고를 낭비하거나 정치적 영향력을 행사한 잘못은 있었을지언정 그밖의 의혹은 자신을 악마화하려는 과도한 공격이라 항변하고 싶을 것이다. 레이디 맥베스 이미지가 되기 전까지 몇번의 기회는 있었다. 김씨는 윤석열이 대권을 쥘 수 있도록 억지 사과를 했지만 "남편이 대통령이 돼도 아내의 역할에만 충실하겠다"는 약속을 지키지 않았고, 이후 새로운 의혹이 불거질 때는 무시로 일관하며 반성하지 않았다. 레이디 맥베스의 이미지를 만든 건 그 자신이다.
마리 앙투아네트와 레이디 맥베스 사이 김건희씨의 진짜 역할을 밝히는 것이 '김건희 특검'의 목적일 터다. 말하자면 오늘 소환되는 김씨가 대통령 곁에서 호가호위하던 V2였는지, 대통령을 조종하던 V1이었는지를 규명하는 게 특검의 수사 방향이다. 이미 이권을 두고 각종 브로커와 결탁한 행적, 공사 구분 못하고 명품을 받아챙긴 모습, 권력을 이용해 자신과 가족의 재산을 부풀리려 한 흔적은 국민들이 모두 지켜보았다. 윤석열의 '김건희 구하기'가 내란 사태의 배경 아니었느냐는 관측까지 나온다. 아무리 큰 오해가 있었다 한들, 김씨는 민주주의를 농락하고 헌정질서를 훼손한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그런 김씨의 최종 선택이 너저분한 변명이어서는 안 된다. 납득할 수 없었던 수많은 의혹과 논란에 대해 이제라도 납득할 수 있을 정도의 자백을 내놓아야 한다. 측근들마저 뒤늦게 윤석열 내외에 등을 돌리는 마당에 한줌 극우 유튜버에게라도 기대고 싶을 테지만 그 얄팍한 기대는 더욱 추한 몰락을 낳을 뿐이다. 끝내 반성을 내팽개친 이의 종말이 어떠할지는, 자신에게 빗대어진 인물들의 말로를 보면 잘 알 수 있다. 눈물로 사죄하고 처벌을 감수하는 전 대통령 부인의 모습이라야, 막장 정치 활극의 막은 비로소 내려질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