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윤철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후보자가 6월 29일 오후 서울 중구 예금보험공사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모두발언을 하고 있다. 기획재정부 제공이재명 정부 경제 컨트롤타워의 키를 쥘 조타수로 구윤철 전 국무조정실장이 지명됐다. 0%대 초(超)저성장 위기 속에 대미(對美) 통상협상을 마치고, AI(인공지능) 등 신성장동력을 발굴하면서도 지난 윤석열 정부 시절 파탄에 이른 재정까지 돌봐야 하는 '4대 과제'에 어떤 해법을 내놓을까 주목된다.
이재명 정부는 지난달 29일 정권 초대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후보자로 구윤철 전 실장을 선택했다. 구 후보자가 국회 인사청문회를 거쳐 정식 임명되면 이재명 정부의 경제 정책을 총괄하는 '경제 콘트롤타워' 역할을 맡는다.
그간 대선 전후로 예고됐던 기재부 조직 개편 등을 고려할 때, 비교적 대(對)국회 협상력이 강한 이른바 '뺏지' 출신 등 외부 인물이 선택될 가능성도 제기됐다. 하지만 이 대통령의 선택은 대표적인 '예산통'이자 기재부 조직을 속속들이 파악하고 있는 구 후보자로 향했다.
이재명 정부가 파격적 인사 대신 정통 기재부 관료 출신인 구 후보자를 선택한 배경으로, 당분간 경기 회복에 정책 역량을 집중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눈에 띈다. 관건은 구 후보자가 인사 청문회 고비를 마치고 정식으로 부총리로 임명된다면, 한국 경제 앞에 놓인 '4개의 숙제'를 어떻게 풀어가냐에 달렸다.
구윤철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후보자가 30일 서울 중구 예금보험공사 본사에 마련된 인사청문회 준비단 사무실로 들어서고 있다. 구 후보자는 '인사청문회 준비는 잘 되고 있느냐'는 취재진 질의에 "잘 준비해서 '진짜 대한민국' 만들겠다"고 답하고 걸음을 옮겼다. '진짜 대한민국'은 이재명 새 정부의 5년간 청사진을 그리는 국정기획위원회의 캐치프레이즈다. 최서윤 기자 우선 한국 경제의 GDP 성장률에 대해 국내외 기관 곳곳에서 0%대 성장을 경고하고 있다. 한국은행은 0.8% 성장을 예고했는데, 국책연구기관인 한국개발연구원(KDI)나 주요 해외 투자은행(IB) 8곳의 평균 전망치와도 일치한다.
한국 경제성장률이 2% 미만으로 떨어진 일은 한국은행이 관련 집계를 시작한 1954년 이후 단 6차례 뿐이다. 그만큼 올해 경제 상황은 '역대급 위기'다.
전망을 넘어, 이미 최근 경기 상황이 녹록치 않다. 1차 '필수 추경' 예산이 지난달부터 시중에 본격 투입되기 시작했지만, 경기가 반등할 기미는 아직 보이지 않는다.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달 전산업생산은 1.1% 후퇴하며 두 달 연속 감소했고, 내수 부진에 소매판매도 앞선 두 달 연속 감소한 데 이어 보합에 그쳤다. 1차 추경만으로는 경기 회복의 '마중물' 역할을 못한 셈이다.
국내 상황을 넘어 대미 통상협상 등 대외 불확실성도 불안요소다. 여한구 통상교섭본부장이 대미 협상 태스크포스(TF) 협상단과 함께 고위 통상관계자 면담, 3차 기술협의 등을 진행했지만, 산업부 관계자조차 최근 "협상을 잘해도 관세 전 현상 유지로 돌아갈 수 있는 가능성은 거의 없다"고 할 정도로 전망이 어둡다.
미-중 협상이 고비를 넘긴 후 미국의 통상 압박이 한풀 풀렸다지만, '관세 장벽'은 여전하다. 여기에 미국 정부는 원화 가치 절상 등 환율 압박도 수위를 높이고 있다. 만약 대미 협상이 실패로 돌아가 상호관세 유예기간이 종료되는 올 여름부터 관세 충격이 불어닥치면 경기 회복은 물 건너가게 된다.
이에 대해 구 후보자는 지명된 직후 기자간담회에서 "주식회사 대한민국을 건설하겠다"며 "진짜 경제성장을 위한 경제 대혁신을 추진하겠다"고 강조했다. 구체적으로는 △민생경제 회복 △대외불확실성 대응 △경제대혁신 등 3가지 과제를 꼽으며 "AI 등 신산업에 대한 집중 투자로 새로운 성장동력을 만들어내겠다"고 강조했다.
문제는 이를 뒷받침할 정부 재정조차 구멍투성이라는 점이다. 바닥까지 떨어진 경기를 되살리려 두 차례에 설쳐 추경을 편성한 가운데, 2차 추경이 정부안대로 집행되면 정부 지출은 700조 원을, 국가 채무 규모는 1300조 원을 넘어서게 된다. 실질적인 나라 살림살이를 보여주는 관리재정수지 적자폭은 110조 4천억 원으로 늘어나면서 GDP 대비 적자 비율도 -3.3%에서 -4.2%로 악화될 전망이다.
이에 대해 구 후보자는 "예산 재정은 성과적인 측면으로 봐야 한다"며 "돈을 써서 더 많은 돈을 벌게 된다면, 산업이 발전한다면 돈을 써야 한다"고 주장했다. 경기 회복을 위한 정부 재정의 적극적인 역할을 강조한 발언으로, 구 후보자는 "혁신 경제를 만들어서 대한민국이 돈을 많이 벌면 세금이 들어온다"고 요약했다.
구윤철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후보자가 6월 29일 오후 서울 중구 예금보험공사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모두발언을 하고 있다. 기획재정부 제공더 나아가 구 후보자의 장담대로 정부가 경제 혁신으로 새로운 성장 동력을 마련하도록, 전문가들은 재벌 중심의 경제 운용과 금융의 투기적 행태를 방임했던 윤석열 정부의 실패를 반복해서는 안된다고 말한다.
아주대학교 국제학부 김용기 교수는 "그간 기재부는 예산 권한을 가지고 정부 부처 간 역할을 쉽게 조정해 왔지만, 그러한 수단이 분리될 예정이기 때문에, 예산 권한이 없이도 정부 부처의 역할 분담을 조정하는 일은 쉽지 않을 것"이라며 "새 정부 경제정책방향, 즉 '진짜 성장'을 위한 전략을 확정짓는 일이 시급하다"고 지적했다.
더 나아가 김 교수는 거시적 측면에서 새 정부가 확장적 재정과 완화적 통화정책을 펼칠 수밖에 없다고 설명하면서 "문제는 과연 현재 경제성장을 저해하고 있는 총수요(국내 소비와 기업 투자)의 부족함을 진작시킬 수 있을 것인지"에 달렸다고 강조했다.
자칫 과도한 재정 확장이 부동산 버블만 양산할 수 있는 만큼, 금융의 투기적 행태를 막고 재정과 소비·투자를 연결하도록 주택담보대출 대신 기업대출을 확대하도록 해야 한다는 얘기다.
또 김 교수는 "재정과 통화, 금융정책을 지속적으로 관찰하고 조정하는 일이 중요하다"며 구체적으로는 현행 거시경제·금융현안간담회(F4회의)를 법적 근거를 갖춘 회의체로 격상해 그 역할을 맡기자고도 제안했다.
충남대학교 경제학과 정세은 교수도 "역대 어느 정부도 성장이 중요하지 않다는 말을 한 적이 없다. 방법론에서 어떻게 성장할 것이냐가 중요하다"며 "지난 윤석열 정부에서 감세 및 규제 완화 일변도의 성장 정책이 문제를 불렀다"고 주장했다.
이어 "성장을 추구하되 근본적인 역량 강 등 다른 방식의 성장 정책을 어떻게 쓸 것인가 여부가 중요하다"며 "현재 국가 재정 여력이 부족하지만, 예산 정책 전문가라는 평가를 받는 구 후보자가 어떻게 낭비를 줄이며 성장으로 이어지게 하면서도, 복지를 위축시키지 않을 것인가 하는 어려운 과제에 기대를 충족하는 역할을 해주기를 바란다"고 당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