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전 대통령. 류영주 기자·사진공동취재단동기는 있는데 목적을 파헤치지 않는 내란 범죄.
헌재가 8대 0으로 파면 결정을 내렸을 때, 야당 정치인들과 시민들은 그 결정문이 "명문"이라고 극찬했다. 114쪽에 달하는 헌재 결정문에서 만장일치의 파면 결정이 났으니, 큰 고비를 넘었다는 안도감에서 우선 그런 평가가 나왔을 것이라고 짐작된다. 돌아보면 얼마나 위태위태한 순간이었는지 섬뜩하다. '편파 판사'로 지목돼 구설수에 오른 지귀연의 구속 취소와 헌재의 '5대 3 데드락설'은 시민들의 밤잠을 설치게 만들었다. 필자도 기자라는 직업 때문에 불안을 하소연하는 분들의 원성을 여러 번 들어야 했다. 사필귀정 외에 더 첨언할 것이 없다.
파면 당하고도 "이기고 돌아왔다"며 집 앞에서 꺼드럭거리며 뽐내는 윤의 모습은 괴이하다. 그러나 낯설지가 않다. 검찰총장 시절, 어느 때인지 정확히 기억나지 않는다. 멘토 역할을 했던 인사가 그의 대통령 출마 얘기를 꺼냈다. 참석자 가운데 한 명이 "괜히 소쿠리를 태우지 말라"고 조언했다. 대통령 할만큼의 그릇은 아니니 괜시리 바람들게 했다가 낭패 보는 일이 없도록 했으면 좋겠다는 얘기였다. 동화로 비유하면 윤은 '자라지 않는 피터팬' 같은 인물이었다. 어쩌면 어느 순간 성장이 멈춰 자의식만 강화되고, 책임 의식은 자라지 않는 성격이라는 세평도 있었다. 역대 특수부 검사 가운데 그만큼 무죄판결을 받은 검사도 드물다.
본재판이 시작되면 검사는 모두진술이라는 이름으로 공소사실을 낭독한다. 뒤어어 피고인측도 변호인이 나서 공소사실을 반박한다. 대개의 법정 관행이다. 그런데 윤은 피고인이자 동시에 변호인이었다. 재판에서 90여 분이 넘게 직접 일장연설을 했다고 한다. 그는 "검사의 공소장이 논리도 없고 난잡하다"고 깍아내렸다. 설령 맘에 안 들어도 자기 조직에서 총수까지 지낸 사람이다. 언행이 사납고 고약하다. 내로남불도 유분수다. 헌재 법정과 마찬가지로 형사 법정에서도 말의 외관만 바꾼 채 궤변을 펼쳤다.
윤석열은 재판도 정치도 직접 관장하기로 작정한 모양이다. 권한대행 한덕수가 윤의 친구인 이완규를 헌법재판관으로 지명한 건 윤의 개입 말고는 설명할 방법이 없다. 또한 한의 대통령 출마설도 윤측의 기획이라는 해석이 많다. 국민의힘에게 윤은 블랙홀이다. 모든 것을 빨아들인다. 그는 국민의힘의 원심력이요, 구심력이다. 국힘이 윤의 손에 더 장악되고, 중도층과 더 멀어지는 극우정당에서 빠져나오기란 불가능할 정도다. 그럴수록 내란은 지속된다. 정치적 계산만 한다면, 국힘이 윤의 손아귀에 들수록 야당 입장에선 역설적으로 '호재'가 된다. 그러나 새도 좌우 날개로 날 듯, 나라도 좌우가 건강해야 견제와 균형이 잡히는 법이다.
파면에도 불구하고 윤의 내란 공작은 언제나 종을 칠 것인가.
윤석열 내란의 의도와 목적을 뿌리뽑지 않는 한 내란은 정리되지 않을 것 같다. 12.3일 비상계엄도 넉달이나 지났다. 그런데 검찰 공소장과 헌재 결정문엔 오직 내란의 동기만 나온다. 내란의 목적과 의도를 찾기 어렵다. 야당을 반국가단체로 만들고 어떤 독재국가, 어떤 파시스트 나라를 만들려고 했는지 내란 목적에 대한 수사 결과와 사법적 판단이 전혀 없는 것이다. 윤석열이 최종적으로 도달하려 했던 계엄의 목표가 무엇이었을까. 계엄의 목적에 대한 사법적 심판이 없으니 윤석열의 계몽령이라는 사기적 언어는 계속되고 있는 것이다.
"계엄과 쿠데타라는 건 완전 다른 거다. 계엄을 갖고 쿠데타, 내란하고 동급으로 얘기하는 자체가 이것은 벌써 법적 판단을 멀리 떠난 게 된다. (중략) 우리 군을 군정과 쿠데타에 활용한다는 것은 한 번도 상상해본 적 없다. 제가 계엄을 선포한 것은 자유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한 것인데 군정, 쿠데타, 장기집권 이런 게 자유민주주의를 붕괴시키는 것이고. 일시적으로 종북반국가세력을 제거하는 것이라고 해도 일시적인 것에 불과하지 그 후유증과 우리나라 장래를 볼 때 도저히 할 수 없는 짓이다." (윤석열, 4월 14일 서울중앙지법 형사법정)
내란 우두머리 혐의로 형사 첫 정식재판을 받는 윤석열 전 대통령이 14일 오후에 열리는 재판에 출석하기 위해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법원에 들어서고 있다. 연합뉴스왜 이 지경이 됐을까. 첫째는 윤의 친위 세력인 검찰의 책임이다. 그들은 내란 목적 수사를 의도적으로 회피하고 있다. 아니 광범위가 드러난 사실과 증거들, 그리고 여인형.노상원에 대한 여죄수사로 법리구성을 더 단단히 하면 될텐데, 그런 노력이 보이지 않는다. 그러니 법정에서 "몇 시간의 사건을 공소장에 박아 넣어서 법리에도 맞지 않는다"는 피고인의 억지 핀잔을 들을 수 밖에 없다. 둘째는 헌재의 책임이다. 헌재 또한 윤의 헌법 위반과 법률 위반만 따졌다. 그의 내란 목적과 의도를 정리하지 않았다. 진보.보수 재판관 간 타협의 결과라고 추정할 수 밖에 없다.
검찰 공소장에 내란의 목적은 오직 "국헌문란과 폭동"이라는 내란죄 법률 용어로만 등장한다. 공소사실에 따르면 "정권퇴진 집회시도, 국무위원 및 다수 고위공직자 탄핵시도, 예산삭감, 선관위 부정선거 의혹으로 국정운영 어려움이 가중되자 윤이 비상계엄을 선포했다"고 말했다. 이어 별도의 비상입법기구를 창설하려는 등 헌법기관인 국회와 선관위의 권능행사를 불가능하게 하려고 했고, 국헌문란 목적으로 폭동을 일으킨 것"이라고 규정했다. 문제는 내란 목적을 '국헌문란'이라고 표현했을 뿐이다. 폭동을 일으킨 다음 국헌문란의 다음 실체가 무엇인지 검찰은 관심이 없다.
"명문"이라고 칭찬받는 헌재 결정문도 마찬가지다. 헌법수호 책임이 있는 재판관들이 '내란의 의도와 목적을 두고 대토론을 벌인 흔적을 찾기 어렵다. 변론 종결 이후에도 무려 한달이 넘도록 헌재는 수많은 평의를 열었다. 하지만 결정문 어디에도 구체적으로 내란 목적과 목표가 무엇인지 가르키지 않는다. 헌재는 야당이 탄핵을 남발하고 예산도 감액하는 바람에 계엄이 불가피했다는 윤석열의 프레임만 차용했다. 그리고 여야 정치권을 훈계했다. 정치적 훈수로 의미가 있다. 그러나 생뚱맞지 않은가. 헌법을 파괴하고 윤석열이 노리는 나라의 그림을 왜 애써 외면하는가.
윤석열에게 야당은 반국가세력이다. 작년 4월부터 "비상대권으로 헤쳐나가는 방법밖에 없다"는 얘기를 내란 중요임무세력들과 만찬에서 여러번 언급했다. 또 명태균 공천개입 사건이 무르익던 작년 11월 24일 회동에선 "이게 나라냐, 바로잡아야 한다"며 계엄 포고문을 만들도록 했다. 계엄 당일엔 최상목에게 비상입법기구 창설을 적은 메모지를 건넸다. 무속 정보사령관 노상원 수첩에선 "재선,삼선을 위한 헌법개정 추진 계획"이 발견됐다.
이같은 객관적 형태의 물증과 사실은 내란 범죄의 목표를 명확하게 말한다. 국회 해산과 선관위 장악으로 비상입법기구를 설치하고 헌정 질서를 중단시키려는 목적이었음이 분명하다. 헌정 중단의 궁극적 목표는 뻔하다. 야당이 존재하지 않는 국가. 장기집권과 권력찬탈 말고 달리 해석하기 어렵다.
윤석열에 대한 공소장과 헌재의 결정문은 수고와 노력이 없지 않았다. 그러나 결정적으로 등짝 없는 거북이와 같은 것이다. 내란의 목적을 야당파괴, 장기집권과 권력찬탈이라고 말하지않는다. 이는 사법기관들의 직무유기나 진배 없다. 윤석열은 그 공간의 틈을 파고 든다. 궤변과 억지주장을 하며 마음껏 떠들고 다닌다. 지귀연 판사는 피고인 사진도 못찍게 만들고 법정에 드나드는 모습도 촬영을 하지 못하게 한다. 또 피고인의 직업을 직접 언급해 준다. 내란죄 재판에 대한 불안은 여기서 싹이 움튼다.
윤의 내란 시도를 종식시킬 방법은 내란 범죄의 목적을 사법적으로 심판할 때 가능하다. 다른 방도가 없다. 당신은 역사책에 12.3 계엄을 무엇이라고 기록해야 한다고 생각하는가. 야당의 탄핵남발로 윤석열이 헌법을 위반했다고만 적을까. 장기집권.권력찬탈이라는 내란 목적을 빼놓고 그냥 그렇게 넘어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