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홍종호> 다음으로는 어떤 이야기가 있습니까?
◇ 백승민> 네.
유죄 선고받은 르펜, 에코파시즘은 계속된다?
◆ 홍종호> 프랑스의 극우 정치 지도자 마린 르펜 얘기네요. 얼마 전 법원에서 실형을 선고받았다고요.
◇ 백승민> 네. 요즘 급박하게 돌아가는 글로벌 정치 상황이 기후, 경제와 밀접하게 맞닿아 있잖아요. 미국도 그렇고 유럽도 비슷한데요. EU 주도국 하면 독일과 프랑스 아니겠습니까?
프랑스 극우 정당으로 알려진 국민연합의 대표 마린 르펜이 프랑스 법원으로부터 횡령 혐의 유죄를 선고받고, 5년 동안 공직 출마가 제한되었습니다. 르펜은 2004년부터 유럽의회 의원이었고, 2011년부터 은퇴한 아버지 장마리 르펜을 이어서 당 대표직을 맡아왔죠. 사실 원래 르펜 하면 다들 장마리 르펜을 알고 있었는데 이제는 마린 르펜의 인지도가 더 높아졌어요.
르펜이 유죄 선고를 받은 혐의는 유럽의회 자금 횡령입니다. 2004년부터 2016년까지 12년 동안 유럽의회에서 지급된 보조금을 유용해, 유럽의회와 관련이 없는 프랑스의 자기 당 직원들의 급여를 지급하는 데 돈을 썼다는 겁니다. 290만 유로, 우리 돈으로는 약 46억 원 규모의 돈이라고 하는데요. 당의 핵심 권력인 르펜이 공금 횡령 중심에 있었다는 게 법원 판단입니다. 재판부에서 르펜 의원이 전혀 반성하지 않는다, 그래서 피선거권을 박탈할 수밖에 없다는 입장을 밝혔다고 해요.

◇ 백승민> 문제는요. 예를 들어 우리나라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도 사법 리스크가 있지만 대법원판결에 따라서 출마 여부가 갈라지게 되잖아요. 그런데
프랑스에서는 1심부터 피선거권 박탈 효력이 발생합니다.◆ 홍종호> 더 엄격하게 적용하네요.
◇ 백승민> 네. 르펜 의원은 곧바로 항소 의지를 밝혔고요. 출마 저지 시도에 굴하지 않겠다며 자신을 마틴 루서 킹 목사에 빗대면서 '그를 따라 싸우겠다'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사실 항소를 하더라도 절차가 길어요. 못해도 1년은 걸린다고 하더라고요. 내후년 예정된 프랑스 대선에는 출마하기가 어려울 것으로 보여요. 그런데 현재 르펜의 당, 국민연합(RN)의 지지도가 상당히 높다는 점입니다. 그래서 프랑스 재판부가 극우 지지층의 신변 위협에 시달리고 있다고 합니다.
◆ 홍종호> 마치 얼마전까지의 우리나라 상황 같군요.
◇ 백승민> 네. 그러다 보니 르펜 사건을 둘러싸고 국내 언론과 외신들은 주로 '법치주의 대 시민의지' 구도로 바라보고 있습니다. 유죄를 선고받은 정치인이 많은 시민들의 지지를 받고 있다면, 과연 공직 출마를 금지하는 게 옳은지에 대한 논쟁이 벌어지고 있는 거죠. 또 유럽에서 극우 세력이 점점 세를 불려 가고 있잖아요. 이 극우세력에 이번 판결이 어떤 영향을 미칠지, 전반적인 민주주의에는 또 어떤 영향을 미칠지에 대한 분석도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습니다.
◆ 홍종호> 저는 정치 분야 전문가는 아니지만 유럽, 특히 중동 지역을 중심으로 많은 이민자들이 유입되었잖아요. 지역의 어려운 경제 상황과 맞물려 복잡한 상황들이 나타난 것 같습니다. 여기에 기후 문제까지 접목되면서 르펜이 극단적인 이야기를 하는게 아닐까 싶은데요.

◇ 백승민> 네. 그래서 르펜 의원이 그동안 가져왔던 기후 관점에 대해서 조금 살펴봤는데요. 2022년 미국 매체인 더 뉴 리퍼블릭에서 썼던 '마린 르펜의 기후 정책에는 에코파시즘의 냄새가 난다'는 기사를 참고해서 말씀드리겠습니다.
에코파시즘. 환경 문제를 언급하면서 극우 이념의 극단적인 요소들을 정당화하는 겁니다. 환경 문제를 얘기할 때 간혹 "지구에 사람이 너무 많다"거나 사람을 없애야 한다"는 극단적인 주장을 하는 분들이 계시잖아요. 그런데 이걸 실제로 인종 차별을 정당화하는 방식 등으로 실현하려는 것을 에코파시즘이라고 많이 이야기하더라고요.
◆ 홍종호> 일반적으로는 지구의 인구가 너무 많아서 환경의 부하를 키운다고 얘기를 하죠. 환경 문제에 관심이 있거나 환경주의자들도 이런 얘기를 안 하지는 않고요. 그런데 지금 르펜 같은 경우는 극우 이념과 연결하면서 극단적으로 치닫는 성향을 보이는 것 같아요.
◇ 백승민> 네, 맞습니다. 2019년 뉴질랜드 크라이스트처치 총기 난사 사건이 에코파시즘의 대표적인 예시 중 하나입니다. 이 사건으로 무려 51명이 사망했는데요.
살인범이 자신은 민족적 자취와 자연 보전을 위해 총기 난사를 저질렀다고 얘기를 했어요. 하지만 살인은 어떤 이유로도 정당화될 수 없는 것 아니겠습니까?
르펜은 2022년 대선 당시 명목상으로는 탄소 배출량 감축을 지지했습니다. 파리 협정에서 탈퇴할 계획도 딱히 밝히지 않았고요. 그런데 동시에 풍력 터빈을 철거하겠다고 했어요.
◆ 홍종호> 새로 설치하는 게 아니라, 기존 풍력 터빈을 철거하겠다는 거군요?
◇ 백승민> 맞습니다. 이유는 풍력 터빈이 프랑스 시골의 아름다움을 해친다는 건데요. 르펜은 풍력 터빈과 이주민들을 비교해서 이야기했습니다. 모두가 풍력 터빈이 있어야 한다고 동의하지만, 정작 그 누구도 자기 집 근처에 있는 것은 원하지 않는다는 건데요. 이런 침입종으로부터 프랑스의 깨끗한 자연을 보호하기 위해서는 유럽이 유럽인들의 땅이 되어야 한다는 거예요. 이 또한 에코파시즘이라고 볼 수 있을 것 같아요.
◆ 홍종호> 풍력 터빈도 침입종으로 보고, 동시에 이민자들도 침입종으로 생각하는 식의 논리를 만들어 냈군요.
◇ 백승민> 말도 안 되지만 그런 연결을 했더라고요. 그러면서 필요한 에너지는 원전을 통해서 급속히 확대해 충족하겠다고 했는데요. 아시다시피 원전을 짓는 데 시간이 오래 걸리잖아요. 전문가들은 비현실적인 정책이라고 평가했습니다.
또 르펜은 생활비 위기에 초점을 맞췄어요. 그래서 유류세를 높이지 않겠다는 정책을 내세웠거든요. 이 과정에서 몇 년 전 프랑스에서 큰 시위가 있었죠. 노란 조끼 시위. 유류세 인상에 반발했던 정치적 시위였는데요. 르펜이 유류세를 올리지 않겠다고 하니까 노란 조끼 시위대, 소위 노동 계급 시위대의 지지를 얻기도 했습니다.

◆ 홍종호> 그렇군요. 들어보니까 에코파시즘이 환경주의와 과거 프랑스에 대한 향수, 그리고 외국인 혐오 등이 교묘하게 섞여서 정치적인 구호로 나오는 것 같아요. 미국의 백인 우월주의자들도 이런 식의 생각들을 표출하는 것 같은데요. 그런데 이런 주장은 많은 사람들의 공감을 얻는 주류적인 기후 운동과는 확실히 거리가 멀지 않습니까?
◇ 백승민> 그렇죠. 그리고 우익 포퓰리스트들이 생각하는 기후 정책과도 거리가 멀다는 생각이 들어요. 전통적으로 우익 포퓰리스트들은 기후변화가 거짓말이라고 했죠. 기후변화 자체를 부정하는 데 그쳤다면 이제는 기후변화를 전략적으로 활용하는 겁니다.
순수한 환경을 이민자들, 침략자들이 망친다고 주장하면서 비난하고, 사회적 약자들을 폭력적으로 대하는 건데요. 거슬러 올라가면 나치즘의 핵심 사상인 '피와 흙'이라는 슬로건과도 연결됩니다. 그래서 르펜은 2017년 대선에서 2017년 대선에서 애국적 생태학을 언급하면서 적극적으로 에코파시즘을 채택했어요.
지금 르펜이 상황이 안 좋아지면서 국민연합당에서는 르펜의 대체자로 29살의 당대표 조르당 바르델라가 거론되고 있는데요. 조르당 바르델라도 2019년에 '생태학의 가장 좋은 동맹은 국경이다'라는 주장을 펼쳤습니다.
◆ 홍종호> 한술 더 뜨는군요. 들어보니 르펜이 법적 문제 때문에 사라진다고 해도, 젊은 당 대표가 그런 주장을 하고 있으니 극우 정당 국민엽합의 기조는 바뀌지 않을 것 같네요.
◇ 백승민> 네. 국민연합에서 르펜이 가장 대표적 얼굴이기는 하지만, 이미 많은 인사들이 기후변화 부정론에 발전된 형태로서 에코파시즘의 입장을 취하고 있습니다. 작년 조기 총선에서도 르펜의 기후 입장은 크게 변하지 않았고요.

◇ 백승민> 올해 초, 국민연합 당 대표인 바르델라가 유럽의회의 다수당이자 보수파인 국민당에 EU그린딜이 경제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친다며 정책 철회를 촉구했다는 보도가 있기도 했습니다. 유럽 국민당은 유럽연합 내에서 자동차 CO2 배출 규제를 완화하려고 호시탐탐 노리고 있는데요. 현 집행부가 탄소 중립 사업을 지원하는 인사들로 구성돼 있어서 규제가 크게 완화되지는 않을 것으로 예상됩니다.
이야기 마무리해 보면요. 사실 작년 프랑스 조기 총선에서 기후 의제 자체가 크게 주목받지 못했어요. 그런데 저는 기후 의제의 중요도가 밀려날수록, 기후변화가 다른 주장을 위한 도구로써 사용된다는 인상을 받았습니다.
잠깐 팩트 체크 하나 해보면, 인구가 늘어나면 기후가 나빠지는 걸까요? IPCC에 따르면, 인구 증가의 효과는 1인당 배출량 증가에 비하면 미미한 수준이라고 합니다. UN 분석에 따르면 인구 증가가 아니라 부의 증가가 자원 사용을 훨씬 더 많이 촉진한다고 하고요. 그래서 세계에서 가장 부유한 나라는 인구가 느리게 증가하지만, 1인당 배출량은 가난한 나라보다 50배가 더 많아요.
◆ 홍종호> 네, 사실 잘 알려진 사실이죠. 전 세계 80억 명 중 상위 10% 고소득자가 탄소 배출의 51%를 담당한다. 그만큼 에너지를 많이 쓰고 풍요롭게 살기 때문이에요. 이런 문제는 늘 있었죠.
결국 인구와 부, 기술이 환경 부하를 증가시키긴 하지만 동시에 우리가 기술을 발전시켜서 탄소 배출을 줄일 수도 있고, 부도 재원을 활용해 탄소 배출을 줄이는 방향으로 쓰일 수 있죠. 인구는 불평등을 해소하는 방향으로 노력하면 탄소 배출을 줄일 수도 있고요. 그렇기 때문에 이 자체가 잘못됐다며 이민자들을 내보내야 한다는 식으로 주장하는 것은 상당히 포퓰리즘적이에요. 또 자신들의 주장을 정당화시키기 위해 에코파시즘을 동원하는 모습들은 바람직하지 않다는 생각이 드네요.
오늘 말씀 여기까지 듣겠어요. 지금까지 백승민 작가였습니다. 고맙습니다.
◇ 백승민>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