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상호 감독은 극 중 등장하는 이연주(한지현) 환영에 대해 "성민찬이 시각적인 계시를 직접적으로 보여주는 만큼, 이연희의 죄의식도 어떤 시각적인 형태를 갖는 게 좋겠다고 생각했다"며 "명확한 형태 보다는 다소 모호한 느낌이 드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했다"고 밝혔다. 사진은 극 중 계시를 받는다고 착각하는 성민찬의 모습. 넷플릭스 제공작품 의도는 명확했다. 넷플릭스 시리즈 영화 '계시록'을 연출한 연상호 감독은 이 작품을 통해 '지금의 사회'를 떠올렸다고 설명했다.
"지금 우리 사회가 보고 싶은 것만 보려는 쪽으로 가속화되고 있는 생각이 들었어요."연 감독은 최근 서울 여의도 한 호텔에서 진행된 인터뷰에서 "과거에는 TV를 틀어놓으면 별로 관심 없던 것도 자연스럽게 보게 됐는데 지금은 유튜브를 통해 보는 사람의 취향에 맞춰진 콘텐츠만 보게 된다"고 떠올렸다.
그는 "보고 싶어 하는 것만 보여주는 세상이 되어가는 것 같더라"며 "이러한 사회적 분위기를 '계시록'을 통해 담아내고 싶었는데 제 입장에선 작품 의도를 너무 대놓고 보여준 거 같았다"고 웃었다.
'계시록'은 왜곡된 신념에 사로잡힌 인물들의 이야기를 다룬다. 영화는 실종 사건의 범인을 단죄하는 것이 신의 계시라 믿는 목사 성민찬(류준열)과 죽은 동생의 환영에 시달리는 형사 이연희(신현빈), 그리고 실종 사건의 용의자로 의심받는 전과자 권양래(신민재)를 중심으로 전개된다.
연상호 감독(왼쪽)과 배우 신민재. 연합뉴스이 과정에서 연 감독은 닮은꼴로 알려진 배우 신민재를 언급하며 작품 의도를 보다 상세히(?) 설명했다.
그는 "저는 신민재 배우와 닮지 않았다고 말하는데 사람들이 왜 닮았다고 얘기하는지를 곰곰이 생각했다"며 "제 모습은 거울을 통해 2D(평면적)로만 인식하지만, 사람들은 3D(입체적)로 보기 때문인 거 같다"고 떠올렸다.
이어 "입체적으로 보면 신민재 배우와 엄청 닮았음에도 불구하고, 저 스스로는 인식하지 못하는 거 같다"며 "제가 보고 싶은 것만 보기에 신민재 배우와 닮지 않았다는 그런 믿음을 가지고 사는 거 같다"고 웃었다.
"마지막 장면 류준열 배우에게 알아서 컷하라고 했죠"
연상호 감독은 배우 신현빈에 대해 "드라마 '슬기로운 의사생활'을 통해 처음 봤는데 되게 좋은 배우였다고 생각했다"며 "드라마 '괴이'에서 아이를 잃은 엄마 역을 맡았을 때 표현이 너무 좋더라. '계시록'에서 이연희가 이런 죄책감을 표현해야하는 인물이기에 배우에게 출연 제안을 했다"고 밝혔다. 넷플릭스 제공연상호 감독은 이번 작품에서 인공적인 조명보다 자연광을 활용하려고 했다. 이를 위해 다양한 촬영 장소를 물색했으며, 지방으로 내려가 촬영을 진행했다고 밝혔다.
그는 "'사명의 나라' 교회 외형이 주는 느낌과 함께 신도들이 촛불을 드는 장면에서 입체적인 형태가 드러나면 좋을 것 같았다"며 "그 신을 찍기 위해 대구에서 촬영했고 교도소 외부 장면을 찍기 위해 전라남도 장흥에서 촬영했다"고 말했다.
극 중 성민찬이 죄를 고하기 위해 교회 계단을 올라가는 장면에 대해선 "사실 자연광을 활용하기 위해 장소를 선정했지만, 그날따라 날이 흐려서 빛이 들어오지 않았다"며 "큰 계단에 길게 드리워진 그림자를 원했지만, 어쩔 수 없이 조명을 사용했다"고 떠올렸다.
그러면서 해당 장면을 연출한 의도를 전했다.
"인간이 가진 죄악이라는 것이 계단을 오르는 모습과 길게 늘어진 그림자로 상징될 수 있다고 봤어요."
극 중 기도를 하는 성민찬. 넷플릭스 제공 성민찬이 교회 앞에서 바퀴벌레를 치우는 장면에 대해서도 설명했다. 그는 "그 행동 이후 권양래가 교회에 들어온다"며 "성민찬은 권양래의 전자발찌를 보고도 '교회는 죄인들이 오는 곳입니다. 하느님은 우리 모두들 사랑하십니다'고 말한다. 성민찬 내면 심리와 직업적 신념의 격차를 보여주고 싶었던 것"이라고 밝혔다.
또, 작품 마지막 이연희의 모습은 피에타 조각상을 연상시키도록 연출했다. 피에타는 십자가에 내려진 예수 그리스도의 시신을 무릎 위에 놓고 애도하는 성모 마리아의 모습을 표현한 작품이다.
연 감독은 "외눈박이 창문에 십자가 모양을 클로즈업하고 피에타의 모습을 한 이연희의 장면을 보여줘 너무 종교적으로 간 게 아닌가 라고 생각했다"며 "기독교보다는 사이비 종교에 관한 얘기"라고 밝혔다.
왜곡된 신념에 빠진 성민찬을 연기한 류준열에 대해선 "사소한 부분까지 어떻게 하면 더 나아질지를 고민하더라"며 "교회 장면을 가장 먼저 찍었는데, 촬영하는 3일 동안 성민찬의 감정을 각각 다르게 표현하더라"고 감탄했다.
이어 "마지막 촬영 직전까지도 서로 의견을 계속 나눴다"며 "하고 싶은 거 다 해보라고 했던 거 같다. 특히 마지막 장면은 10분 넘게 촬영해 본인이 직접 컷 해보라고 했다"고 웃었다.
"알폰소 쿠아론 감독이 마음에 든 장면은…"
연상호 감독은 극 중 이낙성 정신과 교수 역을 맡은 김도영과의 인연도 전했다. 그는 "재작년에 서울독립영화제에서 심사위원을 맡았는데 당시 영화 '이제 해야 할 일'에서 조연으로 출연한 김도영 배우의 연기가 돋보였다"며 "그 연기를 보고 이낙성 역으로 이 배우다 싶어 제안했다"고 말했다. 사진은 연상호 감독. 넷플릭스 제공'계시록'은 공개 전부터 영화 '로마', '그래비티' 등을 연출한 알폰소 쿠아론 감독이 총괄 프로듀서로 참여해 눈길을 끌었다.
넷플릭스에서 공개가 확정되기 이전부터 연상호 감독과 쿠아론 감독은 코로나19 팬데믹 당시 온라인 회의를 진행하며 서로의 비전에 대해 논의했다.
비록 이번 작품 촬영 시기가 애플TV+ 시리즈 '디스클레이머'의 제작 일정과 겹쳐 현장에 직접 참여하지는 못했지만, 편집본과 음악에 대한 의견을 주고받으며 협력했다.
이 과정에서 작품 후반부에 등장하는 5분 30초 분량의 롱테이크 신을 마음에 들어 했단다.
연 감독은 "쿠아론 감독이 워낙 롱테이크 촬영의 대가여서 이와 관련된 얘기를 많이 나눴다"며 "(장면을 보시고) 카메라 의지가 느껴지지 않을 정도로 자연스럽고 되게 좋았다고 하더라"고 전했다.
해당 장면을 촬영하기 전 제작진은 하루 동안 리허설을 진행했다. 그는 "하루 종일 핸드폰으로 촬영하며 합을 맞췄다"며 "신기한 건 촬영을 거듭할수록 촬영 감독님과 배우들 모두 완전해진다는 느낌을 받았다"고 떠올렸다.
넷플릭스 제공
쿠아론 감독과의 첫 협업에 대해선 "최근 쿠아론 감독이 최근 자신의 SNS에 계시록을 홍보하더라"며 "예고편 하나를 만들 때도 감독의 비전이 맞는지를 물어보더라. 작품 공개전까지 신경을 많이 써주는 감독이었다"고 만족감을 드러냈다.
연 감독은 이번 작품을 본인의 색깔을 응축한 작품이라고 밝힌 바 있다. 그는 그 이유에 대해 이렇게 설명했다.
"넷플릭스에 들어가면 작품이 너무 많아 고민될 때가 있잖아요. 그러다 오늘 연상호 작품 하나 보고 싶을 때가 있을 텐데 지옥을 보자니 시리즈라 부담스러울 수 있죠. 그럴 때 응축된 작품이 하나 있었으면 했어요. 연상호의 톤을 가진 완결성 있는 작품이라는 개념인 거죠."한편, 26일 넷플릭스에 따르면 영화 계시록은 공개 이후 3일 만에 570만 시청수(시청 시간을 작품의 총 러닝 타임으로 나눈 값)를 기록하며 글로벌 톱10 영화(비영어) 부문 1위를 기록했다. 또한 한국뿐만 아니라 스페인, 포르투갈, 그리스, 아르헨티나, 일본, 인도네시아 등을 포함한 총 39개 국가에서 톱10 리스트에도 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