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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의 벽과 '서쪽으로'의 문…우리의 선택은? [책볼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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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실과 초현실을 넘나드는 이민자 이야기
트럼프 시대, 모신 하미드의 문제작 '서쪽으로'

펭귄북스 펭귄북스 
모신 하미드의 소설 '서쪽으로'('문학수첩)는 전쟁과 불안 속에서 살아가는 한 연인의 여정을 통해 오늘날 우리가 마주하는 난민과 이민 문제를 깊이 있게 탐구하는 작품이다. 주인공 사이드와 나딘은 내전이 심화되는 도시에서 '문'을 통해 다른 나라로 탈출하며 생존을 모색하지만, 그들이 맞닥뜨린 현실은 기대와는 사뭇 다르다.

 "어쩌면 모두가 이민자인지도 모른다. 어떤 이는 시간을 넘어, 어떤 이는 국경을 넘어."

하미드는 이 한 문장을 통해 이민이 단순히 국가 간의 이동이 아니라 인간 존재 자체의 본질적인 경험임을 강조한다. 우리는 모두 과거에서 미래로 이동하며 환경과 시대적 변화 속에서 적응해 나간다. 따라서 난민과 이민자는 우리와 별개의 존재가 아니라, 우리가 살면서 마주할 수 있는 또 다른 모습일 뿐이다.

이러한 보편적 시각은 그의 문학적 경력과 깊은 관련이 있다. 1971년 파키스탄 라호르에서 태어난 하미드는 어린 시절을 미국에서 보냈고, 이후 하버드 대학교와 프린스턴 대학교에서 법학과 문예창작을 공부했다. 다양한 문화권에서 살아온 그의 경험은 작품 속에서 정체성, 이주, 포용과 배제의 문제를 탐구하는 방식에 그대로 반영된다.

'서쪽으로'는 전통적인 난민 서사와 달리 현실과 초현실을 교차시키는 독창적인 방식을 통해 이민자 문제를 탐구한다.

책 속의 '문'은 단순한 물리적 이동 수단이 아니라 국경을 넘는 난민들의 심리적 변화와 정체성의 혼란을 상징하는 장치다. 기존의 난민 서사가 배 위에서 표류하거나 국경을 넘는 위험한 여정을 강조했다면, 하미드는 이 순간을 문을 열고 나가는 단순한 행위로 축약했다.

"사이드와 나딘은 문을 열었다. 어두운 공간 너머에는 또 다른 세계가 있었다."

이러한 장치는 난민 문제를 보다 보편적인 인간 경험으로 확장시킨다. 난민은 단순히 정치적, 경제적 문제로 인해 발생하는 존재가 아니라, 우리가 모두 경험하는 변화와 이동의 상징이다.

이 작품은 출간 즉시 전 세계적으로 주목받았으며, 2017년 맨부커상 최종 후보에 올랐고, LA 타임스 도서상과 애스펀 단편소설상을 수상했다. 또한 뉴욕 타임스 선정 '올해의 책'이자 UNHCR(유엔난민기구)에서 '난민을 이해하는 필독서'로 추천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대통령. 연합뉴스 도널드 트럼프 미국대통령. 연합뉴스 
트럼프 2기 행정부는 미국 우선주의(America First) 기조를 강화하며 이민자에 대한 규제를 한층 더 강화하고 있다. 대표적으로 멕시코 국경 장벽 건설 확대, 불법 이민자 대량 추방 정책,  H-1B 비자 등 외국인 노동자 비자 축소, 난민 수용 인원 대폭 감축 등이다.

이러한 정책 기조는 '서쪽으로' 속 세계와 놀라울 만큼 닮아 있다. 런던에 도착한 사이드와 나딘은 임시 난민 수용소에서 머물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현지인들의 격렬한 반대에 부딪힌다.

"낯선 이들이 몰려들면서 도시는 변하고 있었다. 사람들은 불안을 느꼈고, 때로는 그 불안을 행동으로 표출했다."

영국 정부는 난민들을 분리시키기 위해 특별한 거주 구역을 만든다. 이는 2024년 트럼프 행정부가 발표한 이민자 격리 수용소 확대 정책과 유사하다. 미국뿐만 아니라 유럽에서도 난민촌을 외곽으로 밀어내는 정책이 지속되며 난민들은 경제적·사회적으로 주변부로 내몰리고 있다.

이 소설이 더욱 강렬한 메시지를 던지는 이유는, 단순히 난민들의 고통을 강조하는 데 그치지 않고 그들을 배척하는 사회의 모습까지도 세밀하게 묘사하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그들과 다르지 않았다. 단지, 우리는 먼저 이곳에 왔을 뿐이었다."

트럼프 행정부의 강경한 이민 정책과 유럽의 반(反)이민 정서는 결코 먼 나라 이야기만은 아니다. 한국 역시 다문화 사회로의 전환이 빠르게 진행되고 있으며, 이민자 정책이 국가의 미래를 좌우할 중요한 요소로 자리 잡고 있다.

통계청에 따르면, 한국의 합계출산율은 0.7명(2024년 기준)로 역대 최저치를 기록했다. 노동력 부족과 경제 성장 둔화를 막기 위해서는 이민자 유입이 필수적이다. 그러나 한국 사회는 여전히 다문화 가정을 향한 배타적 시선을 극복하지 못하고 있다.

"사람들은 자신이 속한 세계가 변하는 것을 두려워했다. 하지만 변하지 않는 세계는 없었다."

변화를 두려워하기보다는 이민자와 공존할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하는 것이 더욱 현실적인 대응 방식이다.


문학수첩 제공 문학수첩 제공 
트럼프 2기 행정부의 강경한 이민 정책이 국제적인 논쟁을 불러일으키는 지금, 한국도 선택의 기로에 서 있다. '서쪽으로'는 이민자 문제를 단순한 정책적 논의가 아니라 '인간 존엄성과 공존의 가치'라는 차원에서 바라봐야 한다는 점을 시사한다.

"어쩌면 모두가 이민자인지도 모른다. 어떤 이는 시간을 넘어, 어떤 이는 국경을 넘어."

이 한 문장이 한국 사회에 던지는 의미는 깊다. 한국은 앞으로 이민자 문제를 어떻게 다룰 것인가? 우리 사회가 문을 열어야 할 곳은 어디인가? '서쪽으로'는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찾기 위해 우리가 더 깊이 고민해야 한다는 점을 일깨운다.

모신 하미드 지음 | 권상미 옮김 | 문학수첩 | 26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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