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하는 박지원. 연합뉴스어제의 동지가 오늘의 적이 됐다. 쇼트트랙 국가대표 박지원(서울시청)은 2025 하얼빈 동계 아시안게임에서 맞붙은 '동갑내기 친구' 린샤오쥔(한국명 임효준)에게 격려의 메시지를 전했다.
쇼트트랙 대표팀은 10일 인천국제공항 제1터미널을 통해 귀국했다. 이번 대회에서 금메달 6개, 은메달 4개, 동메달 3개를 쓸어 담고 금의환향했다.
세계 최강임을 증명하는 데는 이틀이면 충분했다. 대표팀이 8일부터 9일까지 이틀 만에 거둔 성적이다. 이는 2003년 아오모리 대회(금메달 6개, 은메달 3개, 동메달 5개)를 넘어선 역대 최고 성적표다.
이번 대회에서 금메달 2개, 은메달 2개를 획득한 박지원은 "목표한 것을 다 이루지는 못했지만, 충분히 좋은 성적을 냈다고 생각해서 굉장히 기분 좋다"고 소감을 밝혔다.
1996년생으로 동갑인 린샤오쥔과 처음으로 국제종합대회에서 맞대결을 펼쳐 감회가 새로웠을 터. 어렸을 때부터 국내에서 경쟁하며 성장해 온 두 선수는 이제 다른 국기를 가슴에 달고 뛰고 있다.
린샤오쥔은 한국 쇼트트랙 간판으로 활약했던 2019년 불미스러운 일에 휘말려 대한빙상경기연맹으로부터 선수 자격정지 1년 징계를 받았다. 이후 2020년 중국으로 귀화한 그는 2022-2023시즌 국제빙상경기연맹(ISU) 월드컵을 통해 국제 무대에 복귀했다.
이번 대회는 린샤오쥔이 귀화 후 출전한 첫 국제종합대회다. 박지원과 린샤오쥔에겐 서로 어제의 동지가 오늘의 적이 된 셈이다.
박지원과 린샤오쥔, 자리다툼. 연합뉴스두 선수는 혼성 2,000m 계주에서 처음으로 맞붙었다. 공교롭게도 린샤오쥔이 실수로 넘어지는 바람에 박지원에게 추월을 허용했고, 한국이 금메달을 차지했다.
이어진 남자 1,500m에서는 박지원이 금메달, 린샤오쥔이 은메달을 목에 걸었다.
남자 500m에서는 린샤오쥔이 금메달을 차지했으나, 동료의 '밀어주기 의혹'에 휩싸였다. 중국의 쑨룽이 결승선 2바퀴를 남기고 린샤오쥔의 엉덩이를 밀어주는 모습이 포착된 것. 린샤오쥔은 쑨룽의 도움으로 가장 먼저 결승선을 통과했고, 뒤이어 도착한 박지원은 은메달을 가져갔다.
마지막 남자 5,000m 계주에서는 두 선수가 치열한 몸싸움을 벌인 끝에 중국이 동메달을 목에 걸었고, 한국은 박지원이 린샤오쥔의 주행을 방해했다는 심판진의 판정으로 실격 처리됐다.
대회 내내 박지원과 치열하게 맞붙은 린샤오쥔은 지난 9일 국내 취재진과의 인터뷰에서 "(박)지원이가 계속 좋은 성적을 내는 걸 보고 '아, 나도 할 수 있겠구나'라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박지원 '금의환향'. 연합뉴스
이에 박지원은 "임효준 선수가 그렇게 말해줘서 굉장히 고맙다. 운동선수가 다른 운동선수를 보며 동기부여를 얻는다는 건 굉장히 좋은 일"이라며 미소 지었다.
그러면서 "나도 다른 선수들을 보며 동기부여를 많이 얻는다. 밑에서 치고 올라오는 후배들을 보면서도 '더 잘해야겠다'는 마음이 든다"고 덧붙였다.
경기 후 린샤오쥔과 어떤 대화를 나눴냐는 질문에는 "경기가 끝나고, 경기에 최선을 다한 것에 대해서, 상대방에 대해서 존중했다"면서 "서로 고생했다는 말을 주고받았고, 많이 넘어져서 다친 데는 없는지 물어봤다"고 답했다.
박지원은 대회 내내 겪었던 중국의 '텃세'에 대해서는 의연한 모습을 보였다. 그는 "딱 중간 정도였다고 생각한다. 내가 부족해서 부딪혔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면서 "부족한 부분은 앞으로 채워가야 할 것 같다"고 말했다.
내년 열릴 2026 밀라노·코르티나담페초 동계올림픽에서 박지원은 더 높은 곳을 바라보고 있다. 그는 "(올림픽은) 아직 도달해보지 못한 꿈이다. 사실 아시안게임에도 내가 도달할 수 있을지 잘 몰랐다"면서 "밀라노 올림픽에 갈 수 있을지 없을지 잘 모르겠지만, 갈 수 있다면 이번 아시안게임처럼 꼭 금메달을 따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다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