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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립된 약자가 얌전하고 착한 군인을 만나면[법정B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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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 주

수사보다는 재판을, 법률가들의 자극적인 한 마디 보다 법정 안의 공기를 읽고 싶어 하는 분들에게 드립니다. '법정B컷'은 매일 쏟아지는 'A컷' 기사에 다 담지 못한 법정의 장면을 생생히 전달하는 공간입니다. 아무도 주목하지 않지만 중요한 재판, 모두가 주목하지만 누구도 포착하지 못한 재판의 하이라이트들을 충실히 보도하겠습니다

▶내란해제.zip_탄핵심판 3주차 시선

윤석열 대통령이 비상계엄을 선포한 직후인 지난해 12월 4일 새벽 계엄군이 서울 여의도 국회 경내로 진입하고 있다. 박종민 기자윤석열 대통령이 비상계엄을 선포한 직후인 지난해 12월 4일 새벽 계엄군이 서울 여의도 국회 경내로 진입하고 있다. 박종민 기자

헌법재판소 심판정에서 재생된 폐쇄회로(CC)TV 영상에는 무장한 계엄군이 국회 의사당 창문을 깨고, 들이치는 장면들이 고스란히 담겼습니다. 윤석열 대통령 탄핵심판 세 번째 변론기일에서 '계엄의 밤'이 소환되자 대다수는 섬뜩함을 느꼈을 겁니다.

그러나 비상계엄을 선포했던 대한민국 대통령 눈에는 달리 보였나 봅니다. 다음 날 '얌전하고 착한 군인'이란 제목의 입장문이 따라 나왔습니다. "누군가를 체포하거나 막으려고 시도하는 모습이 전혀 아니었으며 무력으로 국회를 봉쇄하려 한다는 느낌은 찾아볼 수 없었다"며 비상계엄의 심각성을 자꾸만 축소해 나갔습니다. 경고성 계엄이자 한 발 더 물러나 국민 호소용이었을 뿐이었다고요.

오늘의 '법정B컷'은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이 증인으로 나온 지난 23일 대통령 탄핵심판의 네 번째 변론기일로 가봅니다. 대통령의 시선은 줄곧 김 전 장관을 따라다녔고, 때로는 위압적으로 보이는 태도로 직접 신문에 나서기도 했습니다. 잠시 집중을 잃으면 구속 상태의 내란 수괴 피의자란 사실을 잊을 정도였죠.

대통령 대리인이 '고립된 약자'로 칭했던 윤 대통령은 정장 차림에 빨간 넥타이, 단정하게 빗어 넘긴 모습으로 피청구인석에 자리했습니다. 두 사람의 진술은 입을 맞춘듯했지만, 이내 불협화음을 냈습니다. 이미 재판에 넘겨진 군 관계자들의 말과 배치되는 증언도 수두룩했습니다.

'얌전한 군인'들은 왜 국회 유리창을 깼을까

착한 군인, 예의 바른 군인, 대통령이 말하는 평화적 계엄을 방증한다는 그 군인들은 내란의 밤, 국회의사당 유리창을 깨고 본관으로 침투했습니다. 대체 왜? 윤 대통령과 김 전 장관은 오로지 질서유지를 위한 것이었다고 합니다. 재판관도 따져 물었습니다.

▶2025.01.23 윤석열 대통령 탄핵심판 4차 변론기일(2024헌나8)
정형식 재판관: 질서 유지만을 목적으로 군 병력을 동원했는데, 애초에 국회 본청 건물 안에 군 병력이 왜 들어갔습니까? 질서 유지를 하는데, 그 안에는 의원들 들어가 있고 관계자들이 있을 텐데 외부 시민들은 들어가지 않은 상태인데 굳이 거기를 군 병력이 왜, 본청에 유리창을 깨고 진입했습니까?

김용현 전 장관: 최종적인 '엔드 스테이트(End state)'는 상황 자체가 본청에 이런 어떤 그… 군 병력이 딱, 그, 본청을 확보하고 출입문에 대한 출입에 대한 통제하면서 선별적으로 의원들이 들어오시는 것은 그거 없이 제지 없이 통과하시지만, 나머지 불필요한 인원은 들어오지 못하도록 딱딱 질서 정연하게 이런 모습을… (대통령 끄덕거림)

정 재판관: (말 끊고) 그럼 외부만을 본청 건물의 문에만 배치를 해놓으면 되는 거 아닌가요?
김 전 장관: 그렇게 하려 그랬는데, 이게 충돌이 생겨버린 겁니다.

정 재판관: (군 병력이) 들어갔으니까, 충돌이 생긴 게 아니에요?
김 전 장관: 이..(두 손을 써가며) 출입문만을 하면 안 되고 안에, 내부에 인원들이 어떤 인원들이 불필요한 인원들이 많으면 빼내야 하니까 그런 어떤 차원에서 한 겁니다.
헌법재판소 제공헌법재판소 제공

김 전 장관은 결과론적 시각에 기반해 터무니없는 주장을 늘어놨습니다. 종국적으로 계엄이 반나절도 안 돼 해제됐으니 '국회 봉쇄'가 아니라고요. 이번엔 김형두 재판관이 묻습니다. 말은 그렇게 하지만 국회를 완전히 봉쇄하고 기능을 무력화하려 한 건 아닌지요.

그러자 김 전 장관은 대뜸 본인이 생각하는 '봉쇄' 개념을 말합니다. 국회를 틀어막으려 했다면 최소 7천 명의 병력이 필요했을 거라고도 했죠.

"재판관님 말씀 존중합니다. 그런데 저는 생각이 좀 다른 게 말씀하신 대로 제가 만약 봉쇄했다 하면 국회의장님이 담을 넘어가서는 안 됩니다. 담을 넘어갈 수 없어야 맞는 겁니다. 봉쇄라는 개념 자체는요, '손에 손잡고' 정말 울타리를 에워싸서 한 사람도 들여보내지 않는 것이 봉쇄입니다. 그런데 정말 많은 사람들이 담을 넘어갔다 그러더라고요. 그건 봉쇄가 안 됐다는 겁니다."

급기야 김 전 장관은 국회의원을 끌어내라 한 게 아니라 요원을 빼내라고 한 게 아니었냐는 대통령 측 질문에 맞장구를 칩니다. 하지만 국회의사당 안에 요원, 군은 없었다고 실토했습니다.

金 "대통령 질문엔 답하지만"…재판부 증인 '신빙성' 평가한다

헌법재판소 제공헌법재판소 제공

김 전 장관은 대통령의 입맛에 맞는 말을 하려 작심한 듯 보였습니다. 김 전 장관이 윤 대통령 측 질문에 답변하다 공격권이 국회 측으로 넘어간 순간, 탄핵 소추인인 국회 측 대리인의 질문은 받지 않겠다고 선언한 장면에서 그 의도가 여실히 드러났습니다.

재판부는 이날 윤 대통령 측이 김 전 장관을 먼저 30분 신문하고, 국회 측에게도 같은 시간을 주기로 했습니다. 1시간이 지나 대통령과 국회 측이 15분씩 추가 질문 기회를 얻기로도 협의했었죠. 하지만 김 전 장관이 돌연 '입을 닫겠다' 선언했습니다.

▶2025.01.23 윤석열 대통령 탄핵심판 4차 변론기일(2024헌나8)
김용현 전 장관: 재판관님, 건의 사항이 있습니다. 지금 제가 형사재판에 진행 중에 있습니다. 지금 반론 질문에 임하게 되면 사실이 왜곡될 가능성이 매우 높습니다. 따라서 증인 신문을 거부하고 싶습니다. (중략)

문형배 헌재 권한대행: 본인이 주신문에 답변한 건 답변해야 맞을 거 아니에요.

김 전 장관: 주신문에 답변한 거는 증언 거부하지 않은 거는 비상계엄이라는 자체가 대통령님의 헌법에 보장된 고유권한이다, 그런 차원에서 제가 증언을 해드릴 수, 해드리는 것이 마땅하다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거부권을 제가 포기한 것이고요. 반대신문은 자칫 사실될 우려가 크기 때문에…  

문 권한대행: 그거는 본인이 하겠다면 할 수 없는데 그럴 경우에 일반적으로 판사들은 증인의 신빙성에 대해서 낮게 평가합니다. 그건 알아서 하십시오. 제가 증인을 강요할 권한은 없죠.


(3초 정적)

김 전 장관: 죄송하지만, 그렇다고 하더라도 증언은 거부하겠습니다.
문 권한대행: 그럼 피청구인(윤 대통령) 측에서 추가로 신문할 사항도 있는데 그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다 못하셨거든요.

김 전 장관: 그거는 피청구인(윤 대통령)이 하는 거는 하겠습니다.  
문 재판관: 잠시 휴정하겠습니다.

대통령 측 질문에만 응하겠다고 한 김 전 장관의 태도에 재판부는 5분 휴정을 선언했습니다. 방청석에서는 허탈한, 야유 섞인 탄식이 흘렀습니다. 몇몇 국회 소추 위원들이 "창피한 줄 알아라"고 하자, 김 전 장관 측 변호인이 돌연 몸을 홱 돌려 "창피한 건 민주당"이라며 맞받기도 했습니다. 

문형배 헌재 권한대행은 증인에게 증언 거부권이 있는 것처럼 청구인 측에도 신문 권한이 있다며, 신문을 진행하되 답할지 말지는 김 전 장관의 판단에 맡겼습니다.

우여곡절 끝에 이어진 증인신문. 대통령 질문에는 "증언을 해드리는 것이 마땅하다"고까지 한 김 전 장관, 그의 입에서 나온 '대통령은 최상목 쪽지·포고령에 대해 몰랐다'라는 증언을 재판부는 어떻게 판단할까요. 

우리 웃기도 했는데 포고령 가져온 날 기억 나나?

헌법재판소 제공헌법재판소 제공
대통령은 비상계엄 선포 직전인 12월 1일 또는 2일 밤, 장관이 관저에 포고령을 가져왔다는 걸 기억하고 있었습니다. 포고령을 두고 웃음까지 보였다는 두 사람. 대통령은 "포고령에 법적으로 검토해서 손댈 거는 많지만", "상위 법규에도 위배되고 내용이 구체적이지 않아서"라고 말하며 위법성을 자인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면서도 포고령이 실행도 집행 가능성도 없어 "그냥 놔둡시다"라고 한 걸 기억하느냐고 김 전 장관에게 물었습니다.

▶2025.01.23 윤석열 대통령 탄핵심판 4차 변론기일(2024헌나8)
김용현 전 장관: 제가 느낀 것은 대통령께서 평상시보다 '꼼꼼하게' 안 보시는 것을 제가 느끼면서 평상시 대통령 업무하시는 스타일이 항상 법전을 먼저 찾으시거든요. 보고가 들어오거나 하면 조금 이상하다 하면, 법전부터 가까이하고 찾아보고 하시는데, 분명히 저는 그렇게 생각했는데 안 찾으시더라고요.
 
윤석열 대통령: 하여튼 이게 실현 가능성은 집행 가능성은 없는데 상징성이 있으니까 해서 놔둡시다 한 게 기억이 되고, 또 전공의 이걸 제가 왜 집어넣었느냐, 웃으면서 얘기를 하니 이것도 그런 측면에서 계고한다는 측면에서 뒀습니다 해서 저도 웃으면서 놔뒀는데 그 상황은 기억하고 계십니까?

김 전 장관: 네, 기억납니다. 지금 말씀하시니까 기억납니다.
 
포고령 작성 책임을 김 전 장관에게 돌리고 실행 가능성을 애써 축소하려 대통령도 직접 신문에 나섰습니다. 원하는 답이 나오는 듯했지만, 되레 윤 대통령이 포고령을 검토했다는 사실만 부각되고 두 사람의 맞춘 듯한 말은 이내 삐걱거렸습니다.

대통령이 포고령의 실행 가능성을 부인했지만 바로 김 전 장관이 정반대의 답을 내놓은 겁니다. 이때 윤 대통령 측 일부 변호사들의 표정이 일그러지기도 했습니다. 

▶2025.01.23 윤석열 대통령 탄핵심판 4차 변론기일(2024헌나8)
장순욱 변호사(국회 측): 포고령이 집행 가능성도 없고, 실효성도 없다는 취지인 거죠? 아까 피청구인(윤 대통령)께서 그렇게 말씀하셨어요.
김 전 장관: 물론, 대통령께서 그렇게 말씀하셨지만, 주무 장관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장 변호사: 효력이 있으니까, 실제로 집행하려고 생각하셨겠네요?
김 전 장관: 당연히 그렇게 하는 게 맞다고 생각합니다.

정치인 체포 지시 의혹에 대해서도 '동정'을 살피라고까지는 했다고 인정했습니다. 그는 가정을 달아 체포가 이뤄질 상황도 언급했는데, 과연 단순히 상징적 계엄이었다면 포고령 위반 우려 대상자를 추려야 할 이유가 있었을까요. 

재판부는 포고령과 비상입법기구 문구가 담긴 '최상목 쪽지'를 엮어 국회의 기능을 정지시키겠다는 의도가 보인다고 되묻기도 했는데요. '허'를 찌르는 질문에 윤 대통령이 끼어들다 제지를 받기도 했습니다. 

'증거' 있다더니 부정선거 확실치 않아 담화문'에는 못 넣었다

대통령은 탄핵심판 초기부터 비상계엄 선포의 주요 배경으로 '부정선거'를 들고 있습니다. 체포 직후에도 '부정선거의 증거는 너무나 많습니다'는 내용의 '국민께 드리는 글'을 썼었죠.

하지만 김 전 장관은 증인신문에서 '실체'가 없다고 토로해버립니다.
▶2025.01.23 윤석열 대통령 탄핵심판 4차 변론기일(2024헌나8)
장순욱 변호사(국회 측): 계엄 선포 대국민 담화에서는 왜 그 얘기(부정선거)가 한마디도 없었죠?

김 전 장관: 부정선거와 관련한 것은 굉장히, 국민적 의혹이 많고…아직까지 
그것이 확인된 게 없습니다. 그래서 이것을 공식적으로 부정선거가 많다. 이렇게 얘기할 수가 없기 때문에 담화문에는 안 넣었지만 이런 어떤 국민적 의혹을 해소하려면 반드시 실체 확인이 필요하다, 그래서 실제로 투입이 된 겁니다.

그들 주장대로 선거부정의 실체를 확인하고, 거대 야당의 폭거를 막기 위해서라면 '비상계엄'을 선포해도 되는 걸까요. 심판이 3시간가량 이어질 무렵 이미선 재판관도 궤를 같이하는 질문을 던졌습니다.

"이러한 이유로 비상계엄을 선포할 수 있다고 생각하시는 거죠?" 김 전 장관은 "비상계엄 요건은 대통령님께서 판단하시는 것이기 때문에"라며 자신의 책임을 털어내는 말을 합니다. 어찌 됐든 '12·3 내란사태'의 최종결정권자는 대통령이란 거죠.

대통령에 독(毒)이 될 진술도 남기고 떠난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 장관을 탄핵심판 증인으로 가장 먼저 불러야 한다고 강하게 주장한 건 대통령 측이었습니다. 흡족한 변론 전략이었을까요? 신문을 마친 김 전 장관은 재판관에 이어 윤 대통령에게도 고개 숙여 인사했습니다. 대통령도 화답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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