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하얼빈' 우민호 감독. CJ ENM 제공※ 스포일러 주의 1909년 10월 26일 하얼빈에서 안중근 대한의군 참모중장은 한국 침략의 원흉이자 동영평화의 파괴자 이토 히로부미를 처단했다. 이토를 향해 세 발의 총탄을 명중시킨 안중근 장군은 러시아군에 의해 체포될 때 "코레아 우라!"(Corea Ura·대한 만세)를 연호했다.
이후 6회에 걸쳐 재판을 받은 안 장군은 1910년 3월 26일 여순감옥에서 32세를 일기로 순국했다. 여기까지가 우리나라 국민이라면 누구나 알고 있는 안중근 장군의 기록이다.
'하얼빈'은 하얼빈 의거의 성공이 목표 지점인 영화는 아니다. 의거를 향한 과정, 그 과정에 놓인 사람들 그리고 의거 이후의 이야기가 '하얼빈'이 진짜로 도달하고자 한 도착지다. '하얼빈'의 여정은 우민호 감독이 우연히 서점에서 읽은 '안중근 의사 자서전' 속 한 구절에서 시작했다.
"이제 우리들이 한번 의거로써 성공할 수 없을 것은 뻔한 일이다. 첫 번에 이루지 못하면 두 번, 세 번, 열 번에 이르고, 백 번 꺾어도 굴함이 없이, 금년에 못 이루면, 다시 명년에 도모하고, 명년, 내명년, 10년, 100년까지 가도 좋다. 만일 우리 대에 목적을 못 이루면, 아들 대, 손자 대에 가서라도 반드시 대한국의 독립권을 회복한 다음에 라야 말 것이다." 한 번의 성공으로 독립되는 건 아니기에 이루고자 하는 목적을 위해 가야 한다는 내용이 우민호 감독에게 위로를 전했다. 자신이 받은 이 위로의 메시지를 관객들에게도 전하고 싶었다. 그렇게 수십 번 자신이 가는 길이 맞는지 고민하고 갈등하며 '하얼빈'을 완성했다.
영화 '하얼빈' 스틸컷. CJ ENM 제공 독립군과 겹쳐진 2024년의 영웅들
우민호 감독은 '하얼빈'을 단순한 오락 영화로 만들고 싶지 않았다. 자서전을 통해 느낀 그 묵직한 감정을 가볍게 다루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미션 임파서블: 로그네이션' '퓨리오사: 매드맥스 사가' '바비' '듄' 시리즈 등에 쓰인 아리 알렉사 65(ARRI ALEXA 65) 카메라를 이용, 1.90:1 영상비의 아이맥스 포맷으로 제작한 것도 독립군의 여정을 다르게 담아내고 싶다는 마음에서 비롯됐다.
우 감독은 "광활한 대지와 자연을 스펙터클하게, 웅장하게 담고 싶었다. 광활한 대자연에서의 독립군의 모습은 약해 보이기도 하고, 고독하고, 쓸쓸해 보이기도 하다"라며 "그렇지만 동시에 목적을 향해 하얼빈으로 가는 그들의 모습이 숭고해 보였다. 그렇게 보이게 만들고 싶어서 스펙터클하게 찍었다"라고 설명했다.
6개월에 걸쳐 몽골, 라트비아, 한국을 돌아다니며 촬영한 것 역시 이 같은 맥락에서다. 안중근 장군과 독립군의 의열 투쟁을 가짜로 보여줄 수 없었기에 몸이 힘들어도 최대한 그들이 갔던 길을 뒤따르고자 했다.
"자서전을 읽으며 독립군의 노고와 고초, 희생과 헌신을 봤어요. 자기 목숨을 바쳐서 독립을 위해 나선 이들의 나이가 대부분 2030 젊은이들이었죠. 묵직하게 찍어야 했습니다. 저뿐만 아니라 배우, 스태프 모두 이 영화를 찍으면서 '난 그런 선택을 할 수 있었을까?' 생각했죠. 고마운 한편 죄송스러운 마음이 들었어요." 그는 이에 관해 이야기하다가 인터뷰 전날인 18일, '하얼빈' 기자간담회에서 울컥함을 감추지 못했던 것을 떠올렸다. 바로 독립군의 모습과 12월 3일 밤 시민들의 모습이 겹쳤기 때문이다.
우 감독은 "그날 밤 봤던 뉴스 화면이 오버랩 되면서 울컥했다. 계엄군이 국회에 난입했을 때 온몸으로 막아낸 시민들이 떠오르더라"라며 "뉴스 화면으로 2024년의 영웅들을 많이 봤다. 계엄군을 막아 세운 시민들은 영웅이었다"라고 말했다.
영화 '하얼빈' 스틸컷. CJ ENM 제공 안중근 그리고 이토 히로부미
안중근 장군 역으로 현빈이 캐스팅됐다는 소식에 많은 사람이 과연 그가 연기하는 안중근은 어떤 모습으로 스크린에 나타날지 궁금해했다. 우민호 감독은 단순한 '영웅 안중근'이 아니라 고뇌를 지닌 '인간 안중근'의 모습을 담아보고 싶었다. 그런 인간 안중근의 고뇌를 현빈의 눈빛에서 봤다.
그는 "두려움, 번뇌, 번민 등 복잡한 느낌을 대사보다는 눈빛으로 보여주고 싶었다"라며 "그게 현빈에게 있었다. 그의 눈빛을 보면 어떨 때는 처연하고, 어떨 때는 따뜻하다. 또 유약할 때도 있지만 결심하면 누구도 꺾을 수 없는 신념의 눈빛이 나온다. 그래서 끝까지 밀어붙였다"라고 말했다.
처음 시나리오를 건넸을 때 현빈은 부담감에 거절했다. 그때를 떠올리며 "될 때까지 포기하지 말고, 안중근 장군의 말씀을 되새기면서 될 때까지 주려고 했다"라고 웃었다. 그는 당시를 '삼고초려'라고 표현하며 "2순위는 없었다"라고 말했다.
영화 '하얼빈' 스틸컷. CJ ENM 제공아시아 침략을 목표로 대한제국을 식민지화하는 데 앞장섰던 '늙은 늑대' 이토 히로부미는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어느 가족'으로 국내에도 잘 알려진 일본 배우 릴리 프랭키가 맡았다. 우 감독은 캐스팅이 어려울 거라 생각했지만, 릴리 프랭키는 선뜻 수락했다.
우 감독은 "워낙 명배우고, 좋아하는 배우다. 릴리 프랭키는 항상 소시민 역할을 해왔는데, 지금까지와 다른 역할을 하면 재밌겠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릴리 프랭키도 그렇게 생각했다"라며 "너무나 아우라 있게, 카리스마 있게 잘해줬다"라고 말했다.
영화 '하얼빈' 스틸컷. CJ ENM 제공 왜 우민호 감독은 이토 처단을 부감 숏으로 잡았을까
안중근 장군과 독립군이 하얼빈 의거를 위해 나아가는 과정을 지켜보다 보면 몇몇 인상적인 장면과 요소를 만날 수 있다.
영화 초반, 두만강을 배경으로 펼쳐지는 신아산 전투에서 안중근이 이끄는 독립군들은 일본군을 상대로 승리한다. 여기서 안중근은 만국공법에 따라 전쟁포로인 일본군들을 풀어주게 되고, 이로 인해 독립군과 안중근 사이 갈등이 빚어진다. 또 이때 풀려난 일본군 육군소좌 모리 다쓰오(박훈)는 안중근의 하얼빈 의거를 끝까지 방해한다.
우 감독은 "원래 눈 내리는 장면이 아닌데 갑자기 광주에 50년 만에 폭설이 내리면서 다들 고생하며 찍었다"라며 "정말 고마운 건 보조 출연자들이다. 다들 영화의 의미를 이해하고, 추위에도 불구하고 열심히 최선을 다해 영화를 채워줬다. 정말 감사드린다"라고 전했다.
영화 '하얼빈' 스틸컷. CJ ENM 제공나라를 지킨 민중의 힘을 드러내는 상징적인 장면도 있다. 극 중 이토 히로부미는 조선의 왕과 양반보다 민중이 무서운 존재라고 말한다. 우 감독은 "영화를 준비하면서 이토 히로부미에 대해 알아봤는데, 실제로 주변 사람들에게 왕과 양반은 별로 무섭지 않은데, 마차를 타고 가다 보면 자신을 바라보는 민초의 눈빛이 섬뜩했다는 이야기를 하고 다녔다더라"라고 말했다.
이토 히로부미를 처단한 후, 안중근은 러시아군에 끌려가면서도 "코레아 우라"를 목 놓아 외친다. 이 역사적인 장면을 비추는 카메라는 일반적인 공식에서 벗어나 있다. 그토록 처단하고자 했던 이토가 총에 맞아 고통으로 일그러지는 모습을 클로즈업하는 게 아니라, 첫 발을 쏜 후 바로 부감 숏(위에서 내려다보는 숏)으로 넘어간다.
우 감독은 "안중근 장군이 총을 쏠 때까지 보이지 않은 많은 사람의 희생과 헌신이 뒷받침됐다고 생각한다"라며 "그렇기에 그 순간만큼은 관객의 시점이 아닌 먼저 간 동지들의 시점으로 찍고 싶었다. 그래서 현빈에게도 하늘에 있는 동지에게 들릴 수 있게 큰 소리로 '코레아 우라'를 외쳐달라고 했다"라고 설명했다.
영화 '하얼빈' 스틸컷. CJ ENM 제공그렇게 하얼빈 의거를 향해 달려 나간 영화는 의거 이후 안중근 장군의 순국으로 여정을 마무리하지 않는다. 영화의 첫 장면, 얼어붙은 호수 위 안중근 장군의 모습으로 다시 돌아간다. 그리고 안중근 장군이 남긴 유훈에 우 감독이 말을 덧붙여 내레이션을 만들었다. 이를 통해 모두가 힘을 얻고 위로받기를 바란 감독의 마음이 담긴 장면이다.
"이번뿐만이 아니라 나중에라도 힘들 때 다시 이 영화를 보더라도 다시 힘을 얻으면 좋겠어요. 그게 안중근 장군과 독립군이 후대에 원하는 바가 아닐까요? 그분들이 밑거름되어 그 위에서 우리가 살아가고, 다시 우리가 밑거름되어 또 다음 세대가 살아가고…. 그게 단단해지면 안 무너지는 거예요. 지금처럼요. 전 그렇게 생각해요."<영화 '하얼빈' 향한 여정에 나선 사람들 ③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