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화영 전 경기도평화부지사. 윤창원 기자쌍방울그룹으로부터 억대 뇌물을 받고 북한에 400만 달러를 불법 송금한 혐의 등으로 1심에서 징역 9년 6월을 선고받은 이화영 전 경기도 평화부지사가 항소심에서 징역 7년 8월을 선고받았다.
양형 부분에서 일부 감형됐지만, 항소심 재판부는 원심의 판단을 모두 인정했다. 특히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와의 연관성으로 주목받았던 '대북송금'도 모두 인정했다. 반면 이 전 부지사 측이 주장한 검찰의 '술판 회유'나 '쌍방울 주가조작' 의혹에 대해선 "납득하기 어려운 주장"이라고 받아들이지 않았다.
형량은 줄었지만…원심 판단 모두 인정
수원고법 형사1부(문주형 김민상 강영재 고법판사)는 19일 특정범죄 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상 뇌물 및 외국환거래법 위반, 증거인멸교사 등 혐의로 기소된 이 전 부지사의 항소심 선고공판에서 징역 7년 8월과 벌금 2억 5천만원을 선고했다. 또 3억 2595만 843원을 추징하도록 했다.
이 전 부지사 측은 항소심에서 자신의 뇌물 혐의에 대해 무고를 주장했다. 자신이 아닌 자신의 수행비서 A씨가 쌍방울에 채용돼 정당하게 법인카드를 수령하고 급여도 받았다는 취지였다.
하지만 항소심 재판부는 쌍방울 법인카드는 A씨가 근무하기 전부터 발급됐으며, 쌍방울이 단순 직원인 A씨에게 법인카드를 제공할 이유가 없다며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재판부는 "법인카드 사용내역 중 상당 부분은 A씨가 사용한 걸로 보이지만, 쌍방울이 이 전 부지사에게 카드를 제공한 이상, 이 전 부지사가 A씨에게 카드를 사용하게 했다고 하더라도 이익을 제공받은 당사자는 이 전 부지사라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고 설명했다.
이 전 부지사는 쌍방울의 대북사업과 자신의 직무는 관련이 없고 대가성도 없다는 주장도 펼쳤다. 오히려 대북사업의 결정 권한은 북한에 있다고 했다. 그러나 항소심 재판부는 "대북사업 결정권이 북측에 있다고 하더라도 경기도 평화부지사는 쌍방울 사업을 북측에 표명하거나, 통일부장관에게 협력사업 등을 제안할 수 있는 지위"라며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이 전 부지사는 정치자금법 위반 혐의도 부인했다. 쌍방울 법인카드를 수령한 것은 경기도 평화부지사 시기이므로, 카드를 사용하는 행위를 정치활동으로 볼 수 없다는 취지였다. 하지만 항소심 재판부는 이 주장 역시 받아들이지 않았다.
대북송금도 인정…'주가조작' 주장은 배척
연합뉴스항소심은 이재명 대표와의 연관성으로도 주목받았던 대북송금도 모두 인정했다. 반면 쌍방울 계열사인 나노스의 주가부양을 노리고 자체적으로 대북사업을 벌인 것이라는 이 전 부지사의 주장은 배척했다.
재판부는 "이 전 부지사의 요청이 없었다면 김 전 회장 등이 북한 인사와 접촉하지 않았을 것이고, 자체적으로 스마트팜 대납 등을 결정했을 것이라고 상정하기 어렵다"라며 "쌍방울이 이 전 부지사와 무관하게 오로지 나노스의 주가 부양 등을 노리고 스마트팜 비용을 대납한 것으로 보이지 않는다"고 설시했다.
당시 경기지사의 방북비용 대납에 대해서는 "원심은 김 전 회장이 이 전 부지사의 요청에 따라 당시 경기지사였던 이재명 대표의 방북을 위해 2019년 12월 1일 200만 달러를 조선노동당에 대납한 사실을 인정했다"라며 "근거로는 김 전 회장 등의 진술 신빙성을 인정한 것"이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현대그룹 사례와 같이 북한이 정치적 목적을 위해 금원을 요구한 사례가 있고, 이 전 부지사도 이를 잘 알고 있으며, 평화부지사로서 방북을 강력하게 추진할 논리가 있다"며 "당심 역시 이런 사정을 볼 때 원심의 판단은 정당하다"고 했다.
항소심 재판부는 이외에도 출입국 현황과 당시 쌍방울의 출장비용 정산서 등 역시 원심의 판단을 뒷받침 한다고 밝혔다. 다만 항소심 재판부는 1심과 마찬가지로 이 대표가 대납 여부를 인지했는지에 대한 판단은 하지 않았다.
'술판 회유' 주장에 "납득하기 어려워"
항소심 재판부는 이 전 부지사 측이 주장했던 검찰의 '술판 회유' 의혹 주장도 받아들이지 않았다. 해당 의혹은 검찰이 이 전 부지사를 조사하던 지난해 수원지검 1313호실에서 연어와 술 등을 제공하며 기존 진술을 바꾸라고 회유했다는 내용이다.
항소심 재판부는 "피고인은 2023년 5월 29일 수원지검 인근 식당에서 쌍방울의 카드가 결제된 내역이 있고, 김 전 회장 등이 오후 9시까지 조사받은 사실 등을 근거로 '연어 술파티'를 주장했다"며 "하지만 피고인이 출정한 이후 검찰 외부인원이라고 볼 수 있는 교도관이 다수 동행했고, 피고인이 조사를 받았다고 지목한 영상 녹화실의 구조를 비춰볼 때 그런 사실이 있었는지 상당한 의구심이 든다"고 설명했다.
재판부는 또 "피고인 정치인 경력, 연령, 학력 등 모두 고려해볼 때 연어나 술 등의 제공이 있었다고 해서 피고인이 진술에 근본적인 영향을 받는다는 것도 쉽게 납득하기 어렵다"며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쌍방울 사건 대법원 가나…이화영 "조작된 수사"
연합뉴스이날 이 전 부지사는 정장 차림으로 법정에 섰다. 그는 재판장이 설시하는 동안 내내 재판장을 응시했다. 특히 재판장이 "피고인은 2019년 5월 11일 북한 인사에게 경기지사의 방북 비용을 요청한 사실이 있다"며 대북송금을 인정하자, 실소를 터트리며 피고인석 옆자리에 앉아있던 방용철 부회장을 쳐다보기도 했다. 선고가 내려진 뒤에는 법정을 찾아온 지지자들과 안부를 나눈 뒤 교도관들과 퇴정했다.
이 전 부지사 측은 상소할 뜻을 내비쳤다. 김광민 변호사는 "재판이 끝난 뒤 이 전 부지사가 '이번 사건은 조작된 수사이고 결과에 유감'이라고 밝혔으니 상고 의지라고 판단하고, 가족들과 논의 후에 상고할 것으로 예상한다"고 말했다.
검찰 역시 입장을 내고 상고 여부를 논의하겠다고 밝혔다. 수원지검은 "수원고등법원은 총 8회 공판기일을 거쳐 오늘 항소심 판결을 선고했다"며 "1심 재판부가 공소사실의 대부분, 특히 불법 대북송금의 실체를 인정한 데 이어 항소심 재판부도 1심 판단이 정당함을 재확인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다만 이화영 피고인이 1심 판결 이후에도 반성은커녕 허위주장을 양산하며 1심 재판부를 공격하고 형사재판을 정치의 장으로 끌어내는 등 사회적 혼란을 초래했음에도 오히려 징역 7년8월로 감경한 양형에 대해서는 수긍하기 어렵다"며 "법리 검토를 마치는대로 상고 여부를 결정할 것"이라고 했다.
이 전 부지사는 김 전 회장이 2019년 1월과 4월 경기도를 대신해 북한에 스마트팜 조성 지원비용 500만 달러, 같은해 7월부터 이듬해 1월까지 이재명 당시 경기지사의 방북을 위한 거마비 300만 달러 등 총 800만 달러를 보내는 데 관여한 혐의(외국환거래법 위반)로 구속 기소됐다.
그는 2018년 7월부터 2022년 7월까지 쌍방울로부터 법인카드와 법인차량(3대)을 제공받는 등 2억 5900만원의 뇌물(정치자금 3억 3400만원)을 받은 혐의도 받았다. 또 2021년 10월 당시 언론에서 자신에 대한 쌍방울 법인카드 의혹 관련 취재가 시작되자 김 전 회장에게 카드 사용내역 등 관련 자료를 삭제해달라고 요청한 혐의(증거인멸교사)도 있었다.
올해 6월 1심 재판부인 수원지법 형사11부(신진우 부장판사)는 이 전 부지사에 대해 징역 9년 6월을 선고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