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오서재 제공 "나의 사랑이 되고 싶어 하지 않는 사랑이여 / 나의 마음이 되고 싶어 하지 않는 마음이여 / 내가 가진 것은 부서진 음표밖에 없는데 / 나의 노래가 되고 싶어 하지 않는 노래여 / 불이었다가 어름이었다가 / 나의 삶이 되고 싶어 하지 않는 나의 삶이여" - 류시화 '나의 사랑이 되고 싶어 하지 않는 사랑' 중에서
사랑과 고독, 삶과 죽음, 희망과 상실, 시간과 운명에 대한 경이감을 그려낸 순도 높은 93편의 시를 엮어낸 류시화의 새 시집 '당신을 알기 전에는 시 없이도 잘 지냈습니다'가 출간됐다.
1957년 노벨문학상을 받은 알베르 카뮈가 프랑스의 시인 르네 샤르에게 보낸 편지에 "당신을 알기 전에는, 시 없이도 잘 지냈습니다"라는 극찬을 전한 말을 표제어로 삼았다.
시집의 해설을 쓴 이문재 시인은 "고백하건대 나는 '당신을 알기 전에는 시 없이도 잘 지냈습니다'라는 문장 앞에서 꼼짝을 못했다. 고압 전류에 감전된 것 같았다. 한동안 다른 시가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고 말한다.
"시 아니면 당신에 대해 얘기할 곳이 없어 / 내 안에서 당신은 은유가 되고 / 한 번도 밑줄 긋지 않았던 문장이 되고 / 불면의 행바꿈이 됩니다 / 당신을 알기 전에는 / 시 없이도 잘 지냈습니다 / 당신을 알기 전에는 / 당신 없이도 잘 지냈습니다" -류시화 '당신을 알기 전에는 시 없이도 잘 지냈습니다' 중에서
육체 속에서 살아야만 하는, 죽음을 피할 수 없는 삶, 아프면서도 경이로움으로 가득 찬 생을 담은 시적 자기 고백은 시를 통해 언어가 가진 힘을 새삼 느끼게 한다.
류시화 지음 | 수오서재 | 192쪽
광화문글방 제공
제12회 수림문학상 수상작인 이릉 작가의 첫 장편소설 '쇼는 없다'가 출간됐다. 이 작품은 1980~1990년대 채널 2번, AFKN(주한미군방송)에서 프로레슬링을 접했던 'AFKN 키즈'의 향수를 자극하며, 과거의 영웅들이 현실에서 되살아나는 이야기를 판타지 형식으로 풀어낸다.
티셔츠를 찢으며 포효하던 헐크 호건, 경찰복을 입고 곤봉을 휘두르던 보스맨, 목에 뱀을 두르고 링위에 오르던 스네이크맨, 엘비스 프레슬리처럼 긴 구렛나루가 인상적인 홍키통크맨, 마초맨, 달러맨.. 과거의 프로레슬링 스타들이 현실로 등장하면서, 잊혀졌던 영웅들이 다시금 주인공의 삶에 소환된다.
과거의 영웅들과의 만남을 통해 현재의 삶을 되돌아보는 기회를 제공하며, 세대를 넘나드는 메시지를 전한다. 우리 모두의 영웅'들이 부활하는 과정을 통해 잊혀졌던 감동과 열정을 되살리며, 독자들에게 진정한 '성장'과 '변화'의 의미를 되새겨준다.
이릉 지음 | 광화문글방 | 276쪽
창비 제공 신춘문예를 동시 석권한 젊은작가상 수상작가 전지영 첫 소설집 '타운하우스'는 겉으로는 그럴싸해 보이나 작은 틈에서 시작된 붕괴의 조짐을 상징하는 공간이다.
언가 깨지고 있음에도 그 파열을 드러내지 않으려 안간힘을 쓰거나 일상의 균열을 예감하며 불안해하는 인물의 목소리를 저자는 차분하고도 태연하게 서술한다. 학교폭력의 가해자 혹은 피해자가 된 아이의 부모, 부대 내 사건 은폐에 가담한 남편을 둔 아내 등 섣부르게 선악을 가를 수 없는 미묘하고도 복잡한 사안을 정면으로 파고든다.
학교폭력 피해자인 딸 서아의 회복을 위해 낯선 섬의 타운하우스로 이사한 수연(말의 눈), 가해자가 된 아이의 학교폭력 사건으로 일상이 무너진 엄마의 시선으로 이야기가 진행되고(남은 아이), 일상의 붕괴를 예감하는 불안의 극단(쥐)을 보여준다. 청한동'이라는 가상의 부촌을 배경으로 저택'으로 상징되는 이 비밀스러운 공간에는 매일 그곳을 오가며 노동하는 사람들과 그 안에 속한 사람들이 공존하는 이야기(캐니 밸리 / 소리 소문 없이)를 만나볼 수 있다.
전지영 지음 | 창비 | 300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