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독립선언서. 이양재 선생 제공▶ 글 싣는 순서 |
①이준 열사, 기독교로 개종하다 ②이준 열사, 서재필과 입헌정치·공화정 추구 ③신앙 동지 김구와 전덕기 목사 ④게일 목사와 국민교육회 동지들 ⑤동기동창이자 절친 함태영 목사 ⑥황성기독교청년회 최대 후원자 민영환 ⑦대를 이은 독립항쟁 동지 ⑧대를 물린 동지 이범진과 이위종 ⑨국채보상운동 주역 서상돈·김광제·양기탁 ⑩이준 열사 그리고 안중근 ⑪박용만 이승만 정순만 ⑫이일정 여사 ⑬이동휘 ⑭이상설과 세 손자 ⑮20세기 초 계몽주의자들 (끝) |
'이준 열사와 그 동지들' 연재를 통해 서재필, 전덕기, 김구, 게일, 함태영, 민영환, 이용익, 이범진, 이위종, 김광제, 양기탁, 안중근, 이승만, 이일정, 이동휘, 이상설 등을 다뤘다. 이외에도 이준의 중요한 동지로는 독립운동가 이회영과 이시영이 있고, 대종교(단군교)의 나철(나인영)과 신채호도 있으며, 스크랜턴과 헐버트도 있다. 매국노 이완용은 한때 독립협회에 있었으나 나라를 팔아먹었고, 헐버트는 헤이그에서 세 특사를 외면하였으며, 독립협회 윤치호는 변절한다.
이준을 가장 크게 도운 동지는 목회자로 전덕기(감리교)와 게일(장로교), 함태영(장로교)이고, 그의 아내 이일정이다. 평신도 신앙 동지로는 김구(감리교)와 이위종(러시아 정교) 양기탁(개신교) 안중근(천주교) 이승만(감리교) 이동휘(감리교)가 있다.
또한 당대의 지성인으로는 민영환 이범진 이용익 김광제(개신교) 이상설 이회영 이시영 나철 신채호 등이 있는데, 후일 대종교를 중광한 나철과 민족사학자 신채호는 헌정연구회의 동지로서 국혼의 부활을 함께 꿈꾸었다. 나의 증조부이신 독립운동가 이병식도 그 동지 가운데 한 분이다.
이준이 헤이그에서 자정(自靖)하자, 당시 한성의 신민회는 이를 대대적으로 선전에 이용, 독립운동에 큰 영향을 발휘하게 한다. 그 결과 이재명은 미국으로부터 귀국해 이완용을 흉기로 찔렀고, 김구는 대한민국임시정부 행사 때마다 민영환 이준 윤봉길 이봉창을 애국자의 표상으로 내 세웠다.
또한 감리교 정동교회 목사 손정도는 길림에서 김성주(김일성) 등에게 이준의 순국에 대해 가르쳐 공산주의자들로 구성된 동북항일연군을 자극한다. 그러니 일제가 죽은 사람을 더 죽이고 싶어 할 수밖에 없었다.
이준이 맹활약하던 대한제국에는 서유럽의 자본주의도 동 유럽의 공산주의도 없었다. 봉건주의 왕정만이 있었고, 이준은 민주적인 공화정을 위해 개혁당에 주도적으로 참여한다. 그리고 그는 '한국혼의 부활혼'을 설파해 민족정신을 주창한다.
우리나라 개신교 초기의 행동파 기독교인들은 독립과 애족의 길을 열린 마음을 가지고 사회 각계의 동지들과 함께 걸었다. 남북이 분단되어 적대적 공존에 들어간 오늘, 우리가 '어떻게 살아야 다음 세대로부터 참 그리스도인이라고 평가 받을 것인가?'를 신중히 생각해 보자. 교회 내에 안주할 것인가? 아니면, 시대가 요구하는 사회 변혁에 기독교 정신으로 참여할 것인가?
이준은 '한국혼의 부활론'에서 "한국혼이여! 너는 모름지기 단결하며 헤어지지 말지어다. 헤어져서 단결이 못 되면 너를 쏘려는 놈, 너를 찌르려는 놈, 칼을 가진 놈, 총을 멘 놈들이 모두 와서 너를 해치리니 이를 어찌 할 것이냐."라고 쓴 바 있다. 이준의 유언과 같은 말이 되었다. 1919년 3.1운동은 기독교인들이 사회 각계의 동지들과 그 확산을 주도한다. 그 애족의 자양분으로 해방후 기독교는 크게 번성한다.
▲ 글쓴이 이양재(69) 선생=독립운동가 이병식 선생의 증손자로 (재)리준만국평화재단 이사장과 (사)한국고서협회 상임부회장으로 고서화감정가이다. 서지학과 회화사학자로 2009년부터 제주에 머물며 제주관련 고서도 수집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