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이 러시아를 돕기 위해 우크라이나전에 대규모 특수부대를 파병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진 가운데 20일 오전 서울역 대합실에서 한 시민이 관련 방송 뉴스를 지켜보고 있다. 연합뉴스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러시아에 파병을 하는 전략적 결정을 했다. 파병으로 얻는 이익이 감수해야할 위협보다 더 크다고 본 것이다. 그러나 예상치 못한 부작용이 파병의 이익보다 더 클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향후 우크라이나 전쟁의 전황, 북한군 사망자의 수, 한미와 나토의 대응 등은 북한이 기대하는 이익의 실현 또는 좌절에도 영향을 줄 것으로 보인다.
파병의 경제적 효과 vs 사상자 많으면 내부 동요
북한은 우선 파병으로 막대한 외화를 얻을 수 있다. 외신보도에 따르면 러시아군에 입대한 외국인 병사는 2000달러의 월급과 소정의 일시금을 받는다. 이런 기준은 북한군에도 적용될 것으로 보인다. 국정원의 발표대로 1만 2천명을 모두 파병한다고 할 때 한 달에 최소 2400만 달러(330억 원)를 챙기게 된다. 물론 북한과 러시아의 계약내용에 따라서 이 중 일부를 현물로 받을 수도 있다. 어쨌든 이런 돈은 대북제재에 억눌린 북한 경제에 큰 도움이 될 수 있다. 러시아도 막대한 전비 지출로 러시아 사회 내 양극화가 일부 개선될 정도로 경제적 효과를 본 것으로 알려진 만큼 북한도 낙수효과가 기대된다. 러시아 극동지역에 나간 북한 근로자들이 한 달에 500달러 정도를 받는 것을 감안하면 최소 4배를 넘는다.
물론 북한군 개인이 이 돈을 다 챙기지는 못할 것이다. 중국이나 러시아 극동지역에 진출한 북한 근로자는 500달러 안팎의 월급 중 20% 정도를 개인 몫으로 가져가는 것으로 알려졌다. 조한범 통일연구원 석좌연구위원은 그 비중을 더 깎아 "해외 북한 근로자들이 90퍼센트를 상납하고 10%를 가져간다"고 말하기도 했다. 러시아 참전에서도 북한 특유의 부패구조가 작동할 수 있다. 지난 1월 중국 동북지역에 파견나간 북한 근로자들이 임금체불에 항의하며 대규모 시위를 벌인 사례가 있다. 러시아에 투입된 북한군은 전장 중에서도 격전지역인 쿠르스크 지역에 배치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참전이 길어지면서 북한군 사상자가 많이 나올 경우 북한 내 가족 등 민심이 동요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러시아 첨단무기 지원 vs 한·미·나토 대응
우크라이나 군이 공개한 보급품 받는 북한군 추정 병력. 연합뉴스
북한의 파병이 돈 때문만은 아닌 것으로 보인다. 참전으로 실전 전투능력을 배양할 수 있고 러시아의 무기기술을 전수받을 수 있다. 단순히 재래식 무기의 개량만이 아니라 정찰위성과 ICBM의 대기권 재진입·다탄두 기술(대기권 밖에서 탄두가 여러 개로 분리 된 뒤 그 개별 탄두가 대기권에 다시 진입해서 목표지역을 타격하는 기술) 등 핵심기술 지원에 대한 강력한 기대가 작용한 것으로 관측된다. 두진호 한국국방연구원 국제전략연구실장은 "첨단무기기술도 중장기적으로 지원하는 방향으로 갈 것"이라며 "이런 공감대가 없다면 북한의 파병 결정은 어려웠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정찰위성과 ICBM 재진입 기술 등 첨단기술지원은 한미가 수용할 수 없는 레드라인이다. 핵탄두를 보유한 북한이 미국 본토에 이를 수 있는 ICBM의 사거리에 이어 대기권에 진입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는 것이기 때문에 미국으로서는 더더욱 받아들일 수 없다. 북한의 참전은 미국과 나토를 자극한다. 정부도 22일 NSC 상임위원회를 열고 향후 북·러 군사협력의 강도에 상응하는 단계적 조치를 이행해나가겠다면서 우크라이나에 대한 추가 무기지원 가능성을 경고했다. "앞으로 단계별 시나리오를 보면서 방어용 무기 지원도 고려할 수 있고, 그 한도가 지나치다 싶으면 마지막에 공격용(무기)까지도 고려할 수 있다"는 것이 대통령실 고위관계자의 말이다. 북한이 추가파병을 중단하거나 철군하도록 하는 국제사회의 압력은 강해지고, 북한에 더 어려운 쪽으로 전쟁의 전황이 바뀔 가능성도 있다.
北에 유리한 안보구도 vs 러시아 태도 변화 가능
북한의 파병으로 김 위원장과 푸틴 대통령이 지난 6월 체결한 북·러 조약은 비준도 하기 전에 가시화됐다. 북한도 그 반대의 경우를 러시아에 요구할 수 있다. 한미동맹이 유사시 북한에 대응한다고 할 때 이는 러시아의 개입을 불러올 수 있기 때문에 문제가 복잡해졌다. 이 같은 한반도 안보구도가 굳어지면 우리 군이 북한의 핵·미사일 위협에 맞서 킬 체인을 가동할 때도 러시아의 개입 가능성을 따져봐야 할지 모를 일이다. 북한은 북·러 조약을 근거로 러시아가 주도하는 반미연대의 다자안보기구에 가입할 수도 있고, 원자력의 평화적 이용을 명분으로 러시아의 우산 아래 핵보유국의 지위를 인정받을 수도 있다.
그러나 러시아가 주도하는 세계는 한계가 있다. 러시아가 북한의 안보에 큰 도움이 되겠지만 지속적인 발전을 보장할 수 있는가에 대해서는 의문을 표하는 전문가가 많다. 중국도 북·러의 초밀착 관계를 불편해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상황이 변하면 북한에 대한 러시아의 태도가 조정될 수도 있다. 북한과는 다른 경우이지만 아르메니아는 지난 2020년 9월 나고르노 카라바흐 지역을 놓고 아제르바이잔과 전쟁을 할 때 러시아 주도의 집단안보조약기구(CSTO)에 '회원국이 외부 세력의 침략을 받으면 모든 회원국에 대한 침략으로 간주 한다'는 조항을 근거로 파병을 요청했으나 거절당한 사례가 있다.
北 기로가 될 파병…김정은 참전대비 내부행보
연합뉴스
북한 파병의 득과 실을 현 시점에서 단정할 수는 없으나 김 위원장이 매우 중요한 정책 결정을 한 것은 분명해 보인다. 북한 국가의 기로가 될 수도 있는 무거운 결정인 만큼 북한도 최근 내부적인 단속에 집중하며 파병 정국에 대응하는 양상이다. 김 위원장은 지난 17일 전방 2군단을 방문해 전투대기태세를 점검하는가 하면 21일에는 수해피해가 가장 컸던 자강도 성간군을 방문해 민심을 다독였다. 평양 무인기사건도 김여정 부부장이 막말 비난을 이어가지만 긴장이 일정한 선을 넘지 않도록 조절하는 것으로 보인다. 이런 흐름은 북한이 파병에 따른 전력 공백에 대응해 대남 억제력을 시현하는 한편 본격적인 전투에 앞서 민심을 챙기고 기강을 잡는 것으로 분석된다.
임을출 경남대극동문제연구소 교수는 "전장에서 아주 많은 사상자가 나올 경우 북한 내부 민심이 동요할 가능성이 크지만 그런 희생을 감수하면서까지 파병을 결정한 것"이라며 "이런 참전 결정은 사실 남한과의 전쟁 의지도 과시하는 측면이 있기 때문에 매우 신중한 접근이 필요하다"고 분석했다. 두진호 한국국방연구원 국제전략연구실장은 "러시아도 우크라이나 전쟁 초기에 사상자 발생으로 유가족들과 시민단체가 시위를 했다"며 "김정은도 사상자 발생에 신경이 쓰이겠지만 파병의 경제성과 국가위상 증대를 내세우며 이런 문제를 극복해나갈 것"이라고 전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