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0대 할머니의 목소리는 떨렸다.
광복 64주년을 하루 앞둔 14일, 일본에 강제징용됐다 숨진 박경석씨의 며느리 최순애(광주시 유동, 64)씨는 얼굴도 모르는 시아버지의 죽음이 확인됐다는 소식만으로도 그동안의 한이 다 풀렸다고 전했다.
최씨는 "너무 기쁘다. 살아계신지 돌아계셨는지 알 수가 없었는데 이제라도 생사를 알게돼 다행이다"라고 말했다.
다만 평생 시아버지만 기다리다 2년 전 숨진 시어머니 생각에 안타까운 마음은 남아있다.
최씨는 "시어머니는 평생 아버님의 생사가 확인되기를 손꼽아 기다렸는데…"라며 말을 잇지 못했다.
특히 최씨는 17년 전 시아버지의 강제 징용 사실이 확인돼 정부로부터 보상금 30만원을 받았지만 한푼도 쓰지 않고 나무로 시신을 만들어 장사지냈다면서 14년 전 세상을 떠난 남편도 이 사실을 알면 기뻐했을 것이라고 말해 주위를 숙연하게 만들었다.
일본에 강제징용됐던 박경석씨는 1945년 당시 29살 나이에 일본 탄광촌에서 숨진 것으로 확인됐다.
사망원인은 ''병사''로 기록돼 있지만 병명은 ''두개골 골절''과 ''뇌복부 내출혈'', ''턱ㆍ쇄골 골절'' 등으로 적혀있어 극심한 구타나 탄광 내 사고로 숨졌을 가능성도 제기되고 있다.
박씨 등 일제에 끌려가 탄광 강제노역에 시달리다 숨진 한국인 노무자들의 실상이 처음으로 드러났다.
이러한 사실은 일본인 교사인 이시무라 히로씨가 지난달 24일 우리 국무총리실 산하 ''일제강점하 강제동원 피해자 진상규명위원회에 넘긴 자료에서 드러났다.
이 자료에는 1930년대 후반에서 40년대 중반 일본 홋카이도 아카비라 광업소로 끌려왔다 숨진 한인 노무자 70여며의 화장기록과 희생자들의 생년월일과 고향 주소, 사망원인, 근무지 등이 상세히 적혀 있다.
화장기록에는 많은 희생자들의 사인이 폐렴이나 폐결핵, 타박상, 질식사로 돼 있어 당시 참혹했던 강제 노역 상황을 적나라하게 담고 있으며 사망 원인을 감추려는 화장으로 추정된다.
10여년동안 민간차원의 한인 강제동원 진상규명활동에 참여해 온 이시무라 히로씨는 최근 아카비라시청을 찾아 조선인 관련 ''매장,화장 인허증''을 발견했고 복사하거나 컴퓨터로 기록해 사료로 완성했다.
진상규명위 관계자는 "이시무라 히로씨는 유족들과 만나고 싶다는 뜻을 전해왔다"면서 "이 자료가 진상규명과 피해지원 뿐 아니라 사료 구축에도 큰 도움이 될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아카비라 광업소에는 44년 기준으로 천 344명의 조선인이 있었으며 그해 11월 발생한 가스폭발사고로 2명이 숨지는 등 현재까지 140명에 가까운 사람이 강제동원 전후로 사망한 것으로 조사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