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리볼버' 스틸컷. 플러스엠 엔터테인먼트 제공※ 스포일러 주의 버석하게 메마른 얼굴 뒤에 감춰진 사연을 궁금하게 만들고, 그 얼굴을 따라 지난한 분투의 여정을 쫓도록 만들 수 있는 배우가 몇 명이나 있을까. 전도연은 이를 가능케 했고, '리볼버'는 아껴둔 마지막 한 방에 모든 것을 담아 관객들을 향해 날린다.
꿈에 그리던 새 아파트 입주를 기다리던 경찰 수영(전도연)은 뜻하지 않은 비리에 엮이면서 모든 죄를 뒤집어쓰면 큰 보상을 해준다는 제안을 받고 이를 받아들인다. 2년 후 수영의 출소일, 교도소 앞 그녀를 찾아온 사람은 생전 처음 보는 윤선(임지연)뿐이다. 이에 수영은 일이 잘못되었다고 직감한다.
잃어버린 모든 것을 되찾기 위해 보상을 약속한 앤디(지창욱)를 찾아 나선 수영은 그 뒤에 있는 더 크고 위험한 세력을 마주하게 된다.
'무뢰한'을 통해 칸을 사로잡았던 오승욱 감독이 다시 한번 전도연과 호흡을 맞췄다. 전도연을 염두에 두고 시나리오를 쓴 '리볼버'는 전도연의 얼굴로 시작해 전도연의 얼굴로 끝나는 영화다. 그리고 전도연이 연기한 하수영의 얼굴에 영화의 답이 있다.
영화 '리볼버' 스틸컷. 플러스엠 엔터테인먼트 제공영화는 하수영의 버석하게 메마른 얼굴로 시작한다. 이 얼굴이 바로 '리볼버'를 시작하고, 관객들을 영화로 끌어들이는 진짜 시작점이다. 왜 하수영은 저토록 메마른 얼굴인지에 대한 궁금증을 던지고, 이를 낚아챈 순간 감독이 안배해 놓은 길에 진입하게 된다.
이어진 이야기를 통해 관객들은 죄를 뒤집어쓴 채 2년 동안 수인번호 6593으로 살아온 하수영이 형을 마치고 나온 현실에서 마주한 건 자기 이름으로 남은 게 아무것도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사랑도, 명예도, 사람도 그리고 받기로 했던 돈도 말이다.
그렇기에 하수영의 얼굴은 메말라 있을 수밖에 없고, 그런 하수영은 자신에게 주어졌어야 할 자신의 몫을 되찾기 위해 움직이기로 한다. 모든 것을 잃은 하수영이 되찾을 수 있는 유일한 것 말이다.
하수영의 자기 몫 찾기 여정은 느릿하게 전개된다. 누구에게서 어떻게 돈을 받아야 할지 모르는 상황에서 그가 할 수 있는 건 최대한 정보를 모아 확실하게 돈을 받아내는 것뿐이다. 이는 리볼버를 조립하고, 하수영이 자신만의 총알을 하나씩 탄창에 장전해 나가는 과정이다.
영화 '리볼버' 스틸컷. 플러스엠 엔터테인먼트 제공느리지만 확실하게 조립이 끝난 '리볼버'의 실린더가 비로소 회전을 시작하는 건 바로 여정의 클라이맥스, 주요 인물들이 한자리에 모인 장면에서다. 하수영의 무표정처럼 자신만의 가면을 썼던 앤디(지창욱)는 사실 별 볼 일 없는 인물이었음이 드러난다. 실소가 날 정도로 하수영을 감옥으로 몰아넣고, 돈마저 주지 않아 문제가 일어나게 한 핵심 인물이 빈껍데기였다는 사실이 드러나는 과정은 마치 블랙코미디처럼 다가온다.
앤디뿐만이 아니다. 하수영을 둘러싼 빈껍데기들은 여정 가운데서 하나둘 벗겨진다. 하수영이 뒤집어썼던 가면도 마찬가지다. 여정 동안 버릴 것은 버리고 취할 것은 취하며 걸어온 끝에 자신의 것을 돌려받은 하수영은 그레이스(전혜진)를 향해 행복하라는 말을 남기고 떠난다.
돈을 받은 하수영은 부둣가로 오며 지난한 분투의 엔딩에 다다른다. '리볼버'의 엔딩에는 하수영의 여정이 결국 자신의 것이 아닌 것으로 살아왔던, 아무것도 남지 않았던 존재가 자신의 것, 자기의 자리를 찾기 위한 분투였음이 집약돼 있다.
그렇기에 영화 속 윤선의 말마따나 영화의 엔딩은 '리볼버'의 '에브리띵'이다. 엔딩은 '리볼버'가 아껴온 마지막 한 발이며, 감독이 말하고자 한 이야기의 핵심을 명중시킨다. 이 한 발로 느릿하지만 묵직하게 걸어온 '리볼버'와 하수영의 발걸음이 모두 이해할 수밖에 없게 된다.
영화 '리볼버' 스틸컷. 플러스엠 엔터테인먼트 제공출소 직후 호텔 방에 앉아 위스키를 마셨던 하수영은 모든 걸 되찾은 후 부둣가의 노점을 찾아 소주를 마신다. 영화는 하수영이 출소 후 처음 위스키를 마시는 장면을 정성스럽게 포착한 것은 물론 이후에도 내내 다양한 방식으로 위스키를 마시는 하수영을 보여줬다.
그런 수영을 길바닥으로 인도해 소주를 마시게 한 장면은 수영이 '돈'으로 상징되는 자신의 것을 찾고 난 후에야 비로소 제자리이자 시작점에 다다를 수 있었음을 의미한다. 지난한 분투를 이어온 의미가 바로 여기에 있다.
특히나 자신의 몫이 아닌 것을 탐내지 않는 여성 노점 주인이 건넨 소주를 받아 드는 하수영은 이전의 하수영이 아니다. 과거를 벗어나 비로소 '하수영'의 것을 찾은 하수영과 노점 주인의 투숏, 이어 메말랐던 하수영의 비에 젖은 얼굴을 클로즈업한 숏은 '리볼버'가 담아내고자 했던 것을 응축한 마지막 결정적인 한 발이다.
영화 안에서 하수영이 누구와 마주하며 술잔을 기울이는지, 하수영이 언제 무슨 술을 마시는지, 누가 하수영에게 직접 술을 따라주는지 등 그 장면들의 공통점과 차이점은 무엇인지 찾아보는 것 역시 '리볼버'를 재밌게 보는 방법의 하나다. 힌트를 남기자면, 처음부터 끝까지 '리볼버'는 하수영의 이야기였고, 남성과 관련한 과거를 여성으로 인해 마무리하는 여정이다.
영화 '리볼버' 스틸컷. 플러스엠 엔터테인먼트 제공다만 예고편을 통해 리볼버를 든 전도연의 모습을 보며 누아르 액션을 기대했던 관객이라면 기대에 반하는 느릿한 전개와 부족한 액션에 실망할 수 있다. 여름이라는 계절에 기대하게 되는 것과 거리나 먼 묵직함 역시 '리볼버'의 약점이다. 생략된 빈틈 사이사이를 최대한 유추해 나갈 수밖에 없다는 점 또한 불편함으로 다가올 수 있다. 그러나 하수영의 첫 얼굴에 대한 궁금증을 갖고, 그의 얼굴에 초점을 맞춰 나간다면 엔딩에서 그에 걸맞은 보상을 받아들일 수 있다.
그렇기에 전도연의 얼굴과 연기력의 힘이 큰 영화다. 전도연은 복잡한 속내를 무표정한 가면으로 감춘 채 한 걸음 한 걸음 나아가는 하수영이라는 인물을 전도연답게 그려냈다. 특히 마지막 엔딩에서 클로즈업된 하수영의 얼굴에서 감독이 그토록 강조했던 전도연의 품격을 고스란히 느낄 수 있다. 임지연과 지창욱 역시 자신의 자리에서 자신의 몫을 해냈다. 임지연은 유연해졌고, 지창욱은 새로워졌다.
전도연, 임지연, 지창욱 못지않은 열연을 보인 것은 '특별출연'이라는 이름으로 출연한 배우들이다. 이정재, 정재영, 전혜진 등 내로라하는 배우들이 짧은 분량에도 압도적인 열연을 펼치며 강렬하게 눈길을 사로잡는다.
114분 상영, 8월 7일 개봉, 15세 이상 관람가.
영화 '리볼버' 포스터. 플러스엠 엔터테인먼트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