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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컷 리뷰]행복을 꿈꾸는 어른들 위한 동화 '탈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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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탈주'(감독 이종필)

영화 '탈주' 스틸컷. 플러스엠 엔터테인먼트 제공영화 '탈주' 스틸컷. 플러스엠 엔터테인먼트 제공※ 스포일러 주의
 
누구나 내면에 탈주하고픈 꿈과 안주할 수밖에 없는 현실이 공존한다. 영화 '탈주'는 '감금된 곳에서 몸을 빼어 달아남'이라는 사전적 정의에서 시작해 현실과 내면에서 맞닥뜨리는 다양한 탈주의 열망을 자극한다.
 
휴전선 인근 북한 최전방 군부대, 10년 만기 제대를 앞둔 중사 규남(이제훈)은 미래를 선택할 수 없는 북을 벗어나 원하는 것을 마음대로 해 볼 수 있는 철책 너머로의 탈주를 준비한다. 그러나 규남의 계획을 알아챈 하급병사 동혁(홍사빈)이 먼저 탈주를 시도하고, 말리려던 규남까지 졸지에 탈주병으로 체포된다.
 
탈주병 조사를 위해 부대로 온 보위부 소좌 현상(구교환)은 어린 시절 알고 지내던 규남을 탈주병을 체포한 노력 영웅으로 둔갑시키고 사단장 직속보좌 자리까지 마련해주며 실적을 올리려 한다. 하지만 규남이 본격적인 탈출을 감행하자 현상은 물러설 수 없는 추격을 시작한다.
 
'삼진그룹 영어토익반'으로 관객들에게 울림과 공감을 전했던 이종필 감독이 꿈과 행복을 향한 열망을 자극하는 영화 '탈주'로 돌아왔다. 이번엔 현실에서 벗어나 꿈을 향해 필사의 탈주를 벌이는 규남과 이를 막으려는 현상의 이야기다. 영화 내내 은유로 가득 찬 '탈주'는 모두가 규남을 지나 현상을 보내고 있지만, 매 순간 규남을 꿈꾸는 우리 모두를 향해 질주한다.
 
스타일리시한 뮤직비디오와 같은 연출로 문을 여는 영화는 규남이 탈주를 위해 연습하는 달리기 과정으로 시작해 자이언티의 '양화대교'가 흘러나오는 순간, 우리가 발 디딘 현실에서 조금은 떨어져 나온다.

'탈주'는 현실의 어른들을 위해 이야기하는 영화지만, 상황이나 표현 자체가 어른들을 위한 '동화'에 가깝다. '북한'이라는 현실적인 배경을 가져왔으나 그건 '탈주'라는 동화 속 배경일 뿐이다. 북한은 여러 층위의 억압을 드러낼 수 있는 상징적인 장소로 작용한다.
 
영화 '탈주' 스틸컷. 플러스엠 엔터테인먼트 제공영화 '탈주' 스틸컷. 플러스엠 엔터테인먼트 제공주인공 규남은 미래가 깜깜하다. 군대 안에서는 내 몫을 가로채려는 사람들로 가득하고, 제대 후라고 해도 딱히 할 수 있는 게 없다. 태생이 계급과 미래를 결정하는 사회에서 흙수저인 규남에게 '꿈'과 '미래'란 사치스러운 단어일 뿐이다. 그런 규남의 꿈은 사치스럽지도, 특별하지도 않다. 태생이나 상황과 상관없이 누구나 꿈꾸고 또 이룰 수 있는 것, 바로 '행복'이다. 단지 규남의 행복은 지금 자신이 발 디딘 곳에서 찾기 어려울 뿐이다.
 
영화는 꿈을 억압하는 현재에서 탈주하려는 규남과 탈주하려는 규남을 뒤쫓는 현상의 이야기를 중심으로 펼쳐진다. 현실에 대한 은유를 품은 영화답게 현재 한국 사회에 비추어 본다면 규남은 청년세대, 현상은 기성세대에 대입해 볼 수 있다. 또한 개인의 내면에 비추어 본다면 꿈을 향해 도전할 것인가, 지금에 타협할 것인가로 바라볼 수도 있다.
 
규남은 자신의 길을 자신의 의지대로 나아가고, 또 실패가 인생의 끝이 아닌 하나의 도전으로 받아들여질 수 있는 사회를 꿈꾼다. 그것이 바로 북한을 탈주해 남한으로 가고자 하는 이유다. 그런 규남과 달리 많은 사람이 부러워할 만한 위치에 선 현상은 자신의 현실에서 벗어나지 않으려 한다. 오히려 규남까지 현재에 붙들어두려 한다.
 
그러나 '탈주'는 단순히 청년과 기성세대, 꿈을 향해 달리는 자와 머무르려는 자의 갈등으로 그리지 않는다. 규남은 꿈을 향해, 현상은 꿈을 향해 달리는 규남을 향해 질주한다. 규남은 온몸으로 자신의 꿈을 드러내지만, 현상은 마음속에 감춘 채 일부 행동과 말로만 은연 중에 드러낼 뿐이다. 그러나 자신 안에 꿈을 잊지 않고 마음 한구석에 품고 있다는 점에서는 동일하다.
 
영화 '탈주' 스틸컷. 플러스엠 엔터테인먼트 제공영화 '탈주' 스틸컷. 플러스엠 엔터테인먼트 제공현상의 모든 행동은 과거의 현실이자 지금의 꿈으로 변한 피아니스트로 귀결된다. 수시로 핸드크림을 바르는 습관, 절대음감을 이용한 추적은 물론 과거 피아노로 인연을 맺은 인물(송강)의 등장 등은 현상 역시 아직도 꿈을 버리지 못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이처럼 현상 역시 여전히 꿈을 갈망하는 복잡한 내면의 인물임을 보여준다. 특히 현상이 타인에게 말하는 대사, '현재의 선택이 틀리지 않았음을 증명하라'는 등의 말은 처음부터 자신을 향한 말이다. 그래서 현상의말들은 타인에게 가닿은 후 결국 자기 자신에게 돌아온다.
 
그렇기에 규남과 현상은 대척점에 서 있다기보다 끊임없이 서로가 서로에게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 꿈을 향해 달리는 자와 그런 자를 향해 달리는 자 모두 '꿈'을 갈망하는 자이기 때문이다. 다만 규남과 현상이 '꿈'을 어떻게 정리하고 발현할 것인가, 어떤 선택을 가져갈 것인가에서 다를 뿐이다.
 
영화의 추격전은 끊임없이 잡을 듯 말 듯 하고, 규남의 탈주 과정은 깜깜한 터널 같은 현재를 지나 빛이 보이는 입구로 달려간다는 비유적인 표현을 직접적인 은유로 보여준다. 언제 터질지 모르는 지뢰밭을 지나 늪에 빠졌다가 총에 맞고도 끝까지 달린 끝에 목표 지점에 다다르는 것은 꿈을 향해 달리는 모두가 겪는 과정이이다.
 
영화 속 규남이 그토록 간절하게 손끝이나마 닿고자 한 군사분계선은, 누구나 닿고 싶어 하며 삶을 끊임없이 살게 만드는 꿈이자 희망의 도착점인 동시에 시작점이다. 규남이 자신이 도달하고자 꿈에 가까워질수록 영화의 색채는 어둠에서 밝음으로, 장소 역시 군대에서 자연으로 바뀌어 가는 것 역시 '탈주'가 이야기하는 바를 드러낸다.
 
영화 '탈주' 스틸컷. 플러스엠 엔터테인먼트 제공영화 '탈주' 스틸컷. 플러스엠 엔터테인먼트 제공마음에 품은 현실의 꿈을 꺼내 행동으로 옮긴 규남과 달리 현상은 과거의 꿈과 현실의 자신을 두고 갈등하던 인물이다. 현상이 가진 꿈과 내면의 갈등은 규남과는 다른 결을 지닌다. 규남을 통해 스스로의 마음을 정리한 현상의 결말 역시 터널 끝에서 빛을 본 규남과 다른 방식으로 빛을 맞이하게 된다.

영화는 꿈과 희망, 행복을 이야기하는 영화인 만큼 마냥 현실이라는 땅에 발 붙인 채 진행되지 않는다. 또 대부분의 동화는 해피엔딩이어야 하기에 수많은 공백과 영화적 허용은 오히려 동력으로 작용하며 각자의 해피엔딩을 향해 질주하게끔 이끈다. 그렇기에 규남이 빗발치는 총알 속에서도 살아남고, 군사분계선 앞은 규남과 현상만을 위한 선택의 공간이 될 수 있는 것이다.
 
이처럼 '탈주'는 어른들을 위한 동화를 지향한다. 그래서 그저 영화 속 규남과 현상을 통해 현실에 존재하는 규남과 현상에게 한 번쯤은 그들처럼 '꿈'을 꿔볼 수 있다고 이야기할 뿐이다. 누구나 동화 속 주인공들을 꿈꾸듯이 말이다.
 
이번 영화에서 특히 돋보이는 인물은 구교환과 홍사빈이다. 복잡한 내면을 갈무리한 채 규남을 추격하는 현상을 스크린에 재현할 수 있었던 건 호흡과 눈빛, 손끝에 현상을 담아낸 구교환의 열연이 있었기 때문이다. 홍사빈은 짧은 출연에도 자신이 무슨 역할을 해야 하는지 분명히 알고 가야 할 길을 똑바로 가며 확실하게 인상을 남겼다.
 
94분 상영, 7월 3일 개봉, 12세 이상 관람가.

영화 '탈주' 포스터. 플러스엠 엔터테인먼트 제공영화 '탈주' 포스터. 플러스엠 엔터테인먼트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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