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합뉴스이상인 방송통신위원회 위원장 직무대행이 방통위원에서 물러났다. 민주당을 포함한 야6당이 이상인 직무대행 탄핵소추안을 발의하자, 이 직무대행이 사퇴 의사를 밝혔고 윤석열 대통령이 이를 받아들인 것이다.
대통령실은 "방통위 부위원장 사임은 적법성 논란이 있는 야당의 탄핵안 발의에 따른 것으로, 방통위가 불능 상태에 빠지는 것을 막기 위한 불가피한 조치"라면서, "대통령실은 방송뿐만 아니라 IT·통신 정책을 총괄하는 방통위를 무력화시키려는 야당의 행태에 심각한 유감을 표한다"고 밝혔다.
이상인 부위원장이 사임하면서 방통위는 2008년 출범이후 주인인 상임위원이 1명도 없는 초유의 '빈집'이 되었다.
왜 이런 사태가 발생했을까?
방송통신위원회의 설치 및 운영에 관한 법률 (약칭: 방통위법)에는 대통령 소속의 중앙행정기관으로 하고, "위원회는 위원장 1인과 부위원장 1인을 포함한 5인의 상임위원으로 구성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방통위의 주인은 5명의 상임위원이라는 규정인 것이다. 그런데 그 상임위원이 1명도 없이 일반직 공무원이 위원장 직무대행을 맡게 된 것이다.
더불어민주당 최민희 의원. 윤창원 기자
문제의 발단은 국회에서 추천한 최민희 후보를 윤석열 대통령이 임명하지 않으면서 부터였다. 2023년 3월 30일 국회는본회의를 열어 여당의원들이 퇴장한 가운데 최민희 후보를 방통위 위원으로 선출 해 윤 대통령에게 추천했다. (임기만료로 물러난 안형환 방통위원 후임)
그러나 윤석열 대통령은 7개월 7일간 임명하지 않고 시간을 끌었다. 최 전 의원이 통신사업자를 회원사로 둔 '한국정보산업연합회 상근 부회장 출신'이라는 점과 정치적 편향성이 결격 사유에 해당하는데 이에 대한 법제처의 유권 해석이 나오지 않았다는 이유를 들었지만, 사실상 시간을 끌며 임명을 거부한 것이었다.
최민희 방통위원 내정자는 7개월 7일 만인 2023년 11월 7일 스스로 물러났다.
최 내정자를 임명하자 않은 이유는, 처음에는 최민희 후보를 위원으로 임명할 경우 위원회 구조가 야당추천 4(문재인 정부에서 임명된 한상혁 위원장과 김창룡, 김현에 이어 최민희 위원까지) 여당추천 1(김효재 위원)이 되는 구조여서 임명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5월에 대통령 지명 몫인 김창룡 위원이 임기만료가 됐고 한상혁 위원장이 5월 30일 해임됐지만 윤 대통령은 대통령 추천 몫으로 이상인 변호사를 임명해 여당 추천 2(김효재 위원장 직무대행, 이상인 위원): 야당추천1 (김현 위원)의 구조를 만들었을뿐 최 내정자를 임명하지 않았다.
최민희 내정자를 임명할 경우 방통위 구조가 여2 대 야2로 공영방송 이사장 교체 등 '총선전 공영방송 장악' 일정에 차질이 빚어지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당시 민주당 정보통신·방송미디어 수석전문위원을 지낸 안정상 중앙대 겸임교수는 CBS와의 전화통화에서 "최민희 내정자를 임명할 경우 위원회가 2:2가 돼서 위원회를 뜻대로 끌고갈 수 없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상인 방송통신위원장 직무대행. 윤창원 기자2023년 8월 23일 김효재, 김현 두 상임위원이 임기만료로 물러나면서, 방통위는 이상인 상임위원 1인만 남았다가, 윤 대통령이 8월 25일 이동관 위원장을 임명하면서, 방통위는 위원장과 부위원장만 있는 사실상의 독임제 부처가 됐다. 이 때도 최민희 내정자는 임명하지 않았던 것이다.
여당인 국민의힘은 김효재 위원 후임으로 이진숙 전 대전MBC 사장을 내정했지만 야당이 후보를 추천하지 않으면서 5인체제의 합의제 기구인 방통위는 2인체제의 독임제로 운영돼 왔다.
여기에서 또다른 문제가 발생했다. '2인 체제의 방통위가 의결권한이 있느냐'는 것이었다. 야당에서는 위헌이라며 2인체제의 방통위에서 일상적인 업무가 아닌 주요사항을 결정할 경우 위원장 탄핵소추안을 발의하겠다고 나선 것이었다.
방통위법에는 "위원회의 회의는 2인 이상의 위원의 요구가 있는 때에 위원장이 소집한다. 다만, 위원장은 단독으로 회의를 소집할 수 있다. 위원회의 회의는 재적위원 과반수의 찬성으로 의결한다."고 규정돼 있을 뿐 재적 과반이상이 참석해야 한다는 규정이 없다.
이 때문에 방통위와 여당에서는 재적 과반이상이 참석하지 않아도 위원회가 가능하다는 입장인 반면 야당에서는 헌법 제49조에 "국회는 헌법 또는 법률에 특별한 규정이 없는 한 재적의원 과반수의 출석과 출석의원 과반수의 찬성으로 의결한다."는 조항을 들어 재적 과반수 이상이 참여하지 않은 위원회의 결정은 효력이 없다고 주장한다.
국회 과반이상을 차지하고 있는 야당은 방통위가 2인 체제에서 주요 정책을 의결할 경우 탄핵소추안을 발의하겠다며, 실제로 이동관 전 방통위원장과 김홍일 전 방통위원장에 대한 탄핵소추안을 발의했고 두 전직 위원장은 본회의 표결 전 사퇴했다. 마찬가지로 방통위원장 직무대행인 이상인 부위원장에 대해서도 탄핵소추안을 발의했고 이 부위원장은 표결 전 스스로 사퇴했다.
대통령실은 "방통위를 무력화시키려는 야당의 행태에 심각한 유감"이라고 밝혔지만, 이런 사태가 빚어진 근본원인은 인사권자인 대통령에게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방통위는 그동안 조선일보와 중앙일보 동아일보 매일경제 신문에 종합편성채널을 허가하는 일도 5인 체제의 위원회에서 통과시켰으며, 지상파방송사나 중소방송사의 경영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는 미디어렙법 등 이해관계가 첨예하게 부딪히는 민감한 사안들도 전체회의 의결을 통해 처리해왔다.
야당추천위원들의 반대가 있더라도 토론하고 조정하고 합의가 안 될 경우 표결로 해결한 것이다. 어차피 방통위는 대통령이 위원장과 위원 1인을 임명하고 국회가 여당1 야당2인을 추천해 3:2로 정부가 뜻하는 일을 처리하는 데 문제가 없었던 것이다.
그러나 윤석열 정부가 출범한 뒤 지난 정부에서 임명된 방통위원장이 사퇴하지 않으면서 야3:여2의 구조로 2024년 총선 전 공영방송 장악이라는 목표달성이 어려워지면서 무리수를 두기 시작했다는것이 방송계와 법조계의 진단이다.
전직 방통위 고위관계자는 "5인체제의 방통위를 구성해 절차적으로 문제를 해결해도 가능할텐데 왜 2인체제로 끌고 가려하는 지 이해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윤석열 정부에서 2인 체제의 방통위에서 신속하게 처리하려고 서두르면서 계속해서 방통위원장 탄핵소추 발의와 표결 전 사퇴라는 악순환이 이어지면서 방통위는 제 역할을 하지 못하는 이른바 '식물 방통위'라는 비판에 직면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