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 벽에 물에 잠긴 흔적이 남아있다. 김정남 기자"물이 파도처럼 밀려왔다." 10일 새벽 물에 잠긴 마을에서 가까스로 대피한 대전 용촌동 주민들은 이렇게 말했다.
처마까지 찼던 물은 하루가 지나며 빠졌지만 주민들은 복구에 엄두를 못 내는 상황이다.
"그래도 뭐 하나 건질 거 있나 해서 왔는데… 이건 뭐 하나도 없어요. 쓸 만한 게 하나도 없어요 진짜."
집 마당에 있던 거대한 건조기도, 집 안에 있던 냉장고도, 소파도 침대도 물살의 힘을 이기지 못하고 흙탕물을 뒤집어쓴 채 넘어지고 뒤엉켜있었다. 흙빛 나무들은 본디 블루베리 나무였다고 한다.
주민 김용태씨가 집 벽에 선명히 새겨진 선을 보며 이렇게 말했다. "어제 저기까지 물이 찼어요."
물에 잠겼던 비닐하우스와 농경지들. 김정남 기자
집 안은 물론, 마을 골목골목이 다 뻘로 뒤덮이면서 아직은 걷는 것도 쉽지 않았다. 마을의 유일한 진입로가 된 다리 위를 대형 살수차와 중장비가 아슬아슬하게 오갔다. 길 위의 흙을 씻어내고 퍼내기 위한 것들이다. 마을로 이어지는 또 다른 길목은 흙이 가득 들어차 들어갈 수 없다.
날이 밝기도 전 집으로 부리나케 돌아왔다는 김씨는 눈앞의 모습에 "그냥 헛웃음만 나왔다"고 했다. "새벽에는 집사람과 같이 왔었는데 집사람이 너무 속상해서 울고 그러니까 저만 다시 온 거죠. 어떻게 복구를 해나가야 할지도 막막하고…"라며 그는 말끝을 흐렸다.
마을은 전기도 끊겼다. 제방이 무너지며 밀려드는 물에 전신주도 쓰러졌다. 전기로 움직이는 급수시설도 멈췄다.
물과 함께 토사가 밀려든 주택. 김정남 기자
용케 살아남은 소들에게 물을 먹이기 위해 주민 채홍종씨는 호스를 연결해 멀리서 물을 끌어오던 중이었다. "지하수를 뽑아서 급수를 하는데, 지금 전기가 끊겨서 지하수를 뽑을 수가 없어서 호스를 축사까지 연결하고 있다"고 말했다.
복구 작업에는 적지 않은 시일이 걸릴 것으로 보인다. 금세 썩고 곰팡이가 피는 한여름이라 주민들은 마음이 급하다. 그래서 조사가 빨리 이뤄졌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 또 마을 주민 상당수가 고령인 것도 주민들의 걱정을 더하고 있다.
이재민 대피소에서 만난 한 80대 주민은 아들이 말려 집에 가보지도 못했다며, "뭐부터 해야 할지 모르겠어…"라는 말과 함께 긴 한숨을 토해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