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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산은 기쁨으로 돌봄은 다함께

최근 저출산 대응의 가능성, 그리고 한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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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 주

분기별 합계출산율이 0.6명대까지 떨어진 대한민국의 인구위기. 아이들과 함께 우리의 미래까지 사라지는 현실을 마주하며 그 해법을 찾는 데 온 사회가 골몰하고 있습니다. 저출산 인구위기를 극복하려 'Happy Birth K' 캠페인을 펼쳐온 CBS는 [미래를 품은 목소리] 연재 칼럼을 통해, 지속 가능한 대한민국을 위한 다양한 의견들을 전합니다.

[미래를 품은 목소리⑯]
정재훈 서울여대 사회복지학과 교수

정재훈 서울여대 사회복지학과 교수정재훈 서울여대 사회복지학과 교수
합계출산율이 0.8, 0.7, 0.6으로 떨어지고 출생아 수도 20만 명 대로 내려가니까 온 사회가 공황 상태에 빠진 듯한 반응을 한다. 세계적인 석학이라고 하는 사람이 "한국은 720여년 후인 2750년 국가소멸 위험에 놓인다. 일본은 3000년쯤 일본인 모두가 사라질지도 모른다"고 하는 말을 인용하면서 난리법석을 떤다. 저출산ㆍ저출생이 아니더라도 앞으로 700년 뒤에는 기후변화 위기로 인하여 한반도에서뿐 아니라 아니라 전 지구적 위기가 올 수도 있다. 어쩌면 저출산보다 더 위협적인 요소가 우리의 반환경적 행태에 따른 기후변화 위기일 수도 있다.

그동안 아빠 없이 태어난 아이들에게 눈치 구박을 주었던 사람들이 갑자기 비혼출산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나선다. 출산장려금을 몇천만원 주었더니 출생아 수가 1.7% 늘었다고 자랑하는 정치인도 나왔다. 그래서 계속 주겠다고 한다. 더 얹어 주겠다고 한다. 아이를 낳으면 이제 애국자고 영웅이라고 여성을 치켜세운다. 타이어도 싸게 팔고 고급 외제차를 경품으로 준다는 회사도 나왔다. 출산자녀 당 1억원을 주겠다는 회사 회장님에게 각종 매스컴에서 칭송의 소리가 집중된다. 이렇게 하면 아이를 낳기 시작할까?

결혼을 할지 말지, 아이를 낳을지 말지 고민하는 사람들의 선택을 쉽게 하는 과정에서 최근 이러한 대응들이 도움이 될 수 있다. 그러나 지금 우리가 공포에 질려서 하고 있는 대응은 결국 '언발에 오줌 누기 정도'가 될 것이다. 현재의 초저출산ㆍ초저출생 현상은 결혼과 출산이라는 선택을 놓고 고민하는 청년들보다 아예 고민 자체를 포기한 청년들이 대다수가 되었기 때문이다. 합계출산율을 계산하는 공식으로서 분모를 구성하는 70년대에 많이 태어났던 가임여성 수가 줄어들고, 즉 분모가 작아지고 출생아 수가 조금 늘어나면 합계출산율은 현재의 0점 대에서 1점대 초반으로 올라갈 수도 있다. 그런데 통계청 인구 추계에 따르면, 2072년에 합계출산율이 1.34까지 올라가는 추세가 이어지더라도 2040년 경 26만 명, 2072년에는 16만 명 정도가 태어나리라는 전망이다(출처: 통계청(2023.12), 장래인구추계 2022~2072). 2072년 예측 사망자 수가 69만 명이니까 그해 태어나는 아이 수와 세상을 등지는 사람 수 차이가 53만 명이 된다.  

출산율의 급락, 줄어드는 출생아 수, 다른 나라에서는 찾아보기 어려운 인구감소 등 숫자의 변화를 제시하면서 위기라고들 떠들지만, 왜 그 숫자가 나왔는지에 대한 국가적ㆍ사회적 차원, 그리고 우리 개인 모두의 성찰적 반성이 없다면 초저출산ㆍ초저출생 현상의 거대한 흐름을 되돌릴 수 있는 가능성은 없다. 그런데 왜 지금 이러한 상황이 되었는지에 대한 성찰적 반성을 우리는 하고 있는가?  

우리는 지난 시간동안 경쟁 사회, 수도권 집중, 피로 사회, 노동시장 격차, 성차별 등등을 기회비용으로 간주하고 '성장 성장 성장' 하면서 앞만 보고 달려왔다. 그 결과가 지금의 초저출산, 초저출생 현상이다. 우리가 정치적으로 선택하고 사회적으로 합의를 봤던 산업화와 민주화의 결과가 가져온 어두운 구석 중 하나가 초저출산ㆍ초저출생 현상이다. 이를 몇몇 분야의 정책으로써 해결할 수 있을까? 경제성장을 하면, 그래서 잘 살 수 있으면 우리에게 장밋빛 미래가 펼쳐질 것처럼 믿었던 산업화 시대의 삶의 방식과 가치가 이제 더 이상 통하지 않는다. 대통령을 단임제ㆍ직선제로 뽑는 민주화를 이루었다는 87년체제에 갇힌 채 장기적이며 체계적이고 근본적인 사회개혁을 가능케 하는 저출산ㆍ저출생 대응을 할 수 없다.  

그렇다고 손 놓고 있을 수 없다. 위기는 기회이기도 하다. 구조적으로 병든 대한민국의 모습이 합계출산율 0.7, 출생아 수 20만 명 시대를 열었다면, 그리고 그 숫자가 정말 공포스럽다고 생각한다면 이 기회에 대한민국의 구조적 병을 고치는 시작을 해야 한다. 주요 영역에서 개별 정책을 통한 변화를 추구하되, 정치체제 자체를 바꾸고 급변하는 가치관과 의식에 대응하는 사회개혁을 시작해야 한다.

아이 낳지 않은 이유를 물어보면 거의 이구동성으로 비용 부담을 이야기한다. 그런데 이상하지 않은가? 그 어느 때보다 물질적으로 잘 살게 되었다. 빈부격차, 중산층의 몰락이 있긴 하지만, 그래도 아이 키울 돈이 없을 정도로 한국 사람들이 가난하게 살고 있는가? 게다가 출산ㆍ양육 문제를 사회보장제도로써 지원해야 할 사회적 위험으로 규정한 2012년 사회보장기본법 전면 개정 이후 임신ㆍ출산ㆍ돌봄과 교육에 대한 국가 지원이 빠른 속도로 확대되었다. 무상보육과 무상급식뿐 아니라 지금 20대 청년들도 어린 시절 경험하지 못했던 아동수당이나 부모급여 등도 도입되었다. 고등학교까지 등록금 부담도 사라졌다. 기성세대 부모들은 모두 본인이 하던 비용 부담이 거의 사라졌다.  

그런데 왜 비용 부담이 크다고 하는가? 자녀의 성장에 필요한 기본 비용 부담이 아니라 극단적인 경쟁사회에서 태어나자마자 내 아이가 기죽지 않고 커야 하기 때문에 지출해야 하는 비용 부담이 크기 때문이다. 경쟁사회가 지출을 압박한다는 의미에서 '압박비용'이다. 한 라디오방송 프로그램 DJ가 이런 말을 하였다. "요즘 뭐 애들 있는 집은 여기저기 좀 다녀야 하고…" 다른 집 아이들이 가는 해외여행을 가야 하고 집 이야기가 나올 때 기죽지 않으려면 일단 비싸고 좋은 아파트에 살아야 한다. 부모와 여행을 가거나 특별활동을 하기 때문에 학교를 가지 않을 경우 요즘은 체험학습이라는 명목으로 출석을 인정해준다. 그런데 개근을 하게 되면 그런 체험학습 하루도 안 쓰고, 아니 못 쓰고, 즉 돈이 없어서 여행 한번 제대로 못 가고 학교에만 나오는 '개근거지' 소리를 아이가 들을 수도 있다. 그리고 이제 애가 클수록, 학년이 올라갈수록 학원에 지출해야 하는 사교육비용 부담이 커진다. 가능하면 이름이 알려진 대학교에 들어가서 내 아이의 인생 자체가 기죽지 않도록 만들어 주어야 하기 때문이다.  

다른 나라에서 찾아보기 어려운 극단적인 경쟁 사회가 부모에게 지출하도록 강요하는 압박비용 부담을 해결해 주는 것은 개별 정책 몇 개의 조합으로써 가능하지 않다. 교육개혁, 사회개혁이 일어나지 않으면 불가능한 비용 부담 문제이다.  

그렇다면 무엇을 해야 하나? 저출산ㆍ저출생 현상의 반전을 위한 대응에서 트랙 전략을 선택할 수 있다. 우선, 부모의 일ㆍ가정 양립을 통한 삶의 만족도 수준을 향상해야 한다. 둘째, 전반적인 차원에서 대한민국 대개조 프로젝트를 시작하면서 청년들이 희망을 갖는 사회를 만들어야 한다. 최근 저출산ㆍ고령사회위원회에서 내놓은 대응은 부모의 일ㆍ가정 양립을 지원하는 정책적 대응에 초점을 맞추었다. 어쨌든 해야 하는 정책들이다. 이제 여기에서 더 나아가 대한민국의 정치체제와 사회 구조를 바꾸는 변화 관련 청사진을 내놔야 한다. 40년이 다 되어 가도록 화석처럼 굳어져 가는 87년체제를 깰 수 있는 헌법 개정이 우선 필요하다. 피로 사회를 일ㆍ가정 양립, 일ㆍ생활 균형 사회로, 불안 사회를 복지 사회로, 경쟁 사회를 연대 사회로, 차별 사회를 (성)평등ㆍ다양성 사회로, 박탈 사회를 공정 사회로 바꾸어 가겠다는, 갈 수 있다는 희망과 비전을 우리가 공유할 수 있어야 한다.  

지금까지 그래왔듯이 기존 저출산 대응은 정책적 대응, 당장 할 수 있다고 믿는 정책과 사업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그 때문에 효과가 없거나 부분적인 성과만 기대할 수 있다. 그러나 한국사회가 근본적으로 변하지 않는 한 아이울음 소리가 여기저기서 들리는 생활로 돌아가기는 어렵다. 산업화 세대는 "잘 살아 보세!"로 으쌰으쌰하는 분위기를 경험했다. 민주화 세대는 '독재 타도와 민주화'로 으쌰으쌰 하면서 자부심을 공유했다. 우리 청년들에게 어떻게 '으쌰으쌰'하는 희망과 비전을 가질 수 있을지 우리 모두가 성찰하면서 머리를 모을 때이다.

※외부 필진 기고는 CBS노컷뉴스의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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