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의힘 한동훈 총괄선대위원장과 윤재옥 공동선대위원장 등이 10일 서울 여의도 국회도서관에 마련된 국민의힘 제22대 국회의원선거 개표상황실에서 출구조사 결과를 시청하고 있다. 연합뉴스10일 치러진 한국의 제22대 국회의원 총선거에서 '여당의 참패', '야권의 압승'이라는 결과가 나오자 중국 당국의 통제를 받는 관영매체들도 잇따라 이 소식을 타전했다.
호들갑을 떨기 보다는 비교적 담담하게 여소야대 선거 결과와 한덕수 국무총리 사퇴 등 그 여파 등을 전달하고, 그 평가는 주로 한국 매체나 외신을 인용하는 수준에 그쳤다.
선거가 없는 공산당 1당 지배체제에서 다른 나라 총선 결과를 떠들석하게 알릴 필요가 없는데다 다음달 말 서울에서 열릴 예정인 한중일 정상회담을 고려한 조치라는 해석이 나온다.
다만, 중국이 겉으로는 무관심한 척 보이지만 내심 이번 총선 결과가 향후 한중관계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에 대해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었다는게 베이징 외교가 소식통들의 전언이다.
한중관계에 정통한 한 소식통은 "중국 당국 인사들이 총선 몇달 전부터 어떤 결과가 나올지에 대해 큰 관심을 보였다"라며 "향후 한국을 대하는 중국의 외교노선에 변화가 올 수 있다"고 말했다.
이 소식통의 전망처럼 윤석열 대통령의 국정운영을 뒷받침할 집권여당의 참패라는 결과를 받아든 지금 중국 측이 한국 정부와 어떻게 관계설정에 나설지는 예단하기 쉽지 않다.
앞서 언급했듯이 공산당 1당 지배라는 정치체제 특성상 중국은 단기간의 외교 성과에 매달릴 필요가 없다. 급할 것 없는 중국이 관계개선의 공을 현 정부가 아닌 차기 정부로 넘길 수 있다는 얘기다.
실제로 월스트리트저널(WSJ)은 "해외에서 윤 대통령의 지지율에 계속 의구심을 갖는다면 우호국 혹은 비우호국까지도 윤 대통령이 추진하는 외교정책이 끝날 수 있다는 가정 하에 활동할 수도 있다"고 전망하기도 했다.
한국 총선 소식 전한 11일자 중국 신경보. 연합뉴스게다가 여당은 이번 총선에서 반중정서를 적극 활용했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소위 '셰셰' 발언의 옳고 그름을 떠나 이를 크게 부각시켜 반중정서를 자극한 것은 여당이었다.
한동훈 전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은 마지막 총력 유세에서도 "한-미 외교를 무너뜨리는 '셰셰' 외교를 하면서 친중 일변으로 돌려 죽창외교로 한-일 관계를 악화시킬 것"이라며 야당을 공격했다.
한 전 위원장을 비롯한 여당 인사들은 거리두기를 넘어서서 중국과의 관계개선을 요구하는 목소리를 '친중'이라 매도하고, 대중 외교와 대미 외교에 서로 양립할 수 없는 적대 관계 프레임을 걸었다.
이렇게 총선을 전후해 한중관계 개선을 가로막는 악재가 넘쳐나고 있지만 그나마 한가지 다행인 점은 반중감정을 이용해야 하는 대형 정치 이벤트가 이제 끝났다는 것이다.
다시말해 정치적 이해타산이나 여론에 휩쓸려 중국과의 관계를 설정할 필요가 없어졌다는 점에서 정치와 외교를 분리해 국익의 관점에서 한중관계를 바라볼 여건은 조성됐다
대중 디리스킹(위험회피)을 주도하고 있는 미국, 그리고 일본의 대중 전략도 참고할만 하다. 미국과 일본은 중국과 철저하게 대립각을 세우면서도 중국과 소통의 끈을 이어가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의 정상회담 성사에 사활을 거는가 하면, 경제사령탑 재닛 옐런 재무장관을 9개월 사이 두번이나 중국으로 보내 양국간 경제현안을 논의하는 등 중국과 싸우면서도 소통채널 유지에 힘쓰고 있다.
또, 애플과 테슬라 등 미국을 대표하는 기업 CEO들은 앞다퉈 중국에 러브콜을 보내는 등 정부와 기업이 입장을 달리하는 투트랙 전략을 구사하고 있다.
일본도 마찬가지로 지난해 11월 미국에서 열린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를 계기로 끝내 후미오 기시다 총리와 시 주석의 정상회담을 성사시키고 양국간 전략적 호혜관계를 포괄적으로 진전시키기로 합의했다.
중일 관계 역시 후쿠시마 오염수 방류로 최악의 상황이지만 관련 협의를 계속 이어가고 있을 뿐만 아니라 일본 정부는 '중·일 고위급 경제 대화' 재개, '중·일 인적·문화교류 고위급 대화' 복원 등을 올해 목표로 잡고 있다.
하지만 한국 정부의 경우 이같은 소통 노력을 거의 찾아볼 수 없다. 양국 정상회담 개최만 해도 "이번에는 시 주석이 한국에 올 차례"라며 중국은 '언감생심'인데 우리 정부만 자존심 싸움에 급급하다.
APEC 정상회의 당시 한중 정상회담 개최 불발 사례가 대표적으로 미.일 양국이 최고위급 인사들을 중국에 파견해 정상회담에 공을 들인 반면, 한국은 '같은 공간에 있으니 한번 만나자'는 식으로 접근했다.
베이징의 한 소식통은 "미국, 일본과 한국의 대중 외교를 바라보는 중국의 심정은 '때리는 시어머니보다 말리는 시누이가 더 밉다'는게 가장 적절한 표현"이라며 "미일이 자신들의 국익 때문에 중국 때리기에 나서는데 왜 한국이 끼어서 '감놔라 배놔라' 하는지 이해 못하겠다는 것"이라고 평가했다.
중국과의 관계를 개선해야 하는 이유는 미국을 버리고 '친중'이 되기 위해서가 아니라 중국이 한국의 가장 가까운 이웃이자 세계 2위의 거대 시장을 보유하고 있기 때문이다. 또, 윤석열 정부가 그토록 경계하는 '북핵'의 중재자 역할을 할 수 있는 위치에 있다.
따라서 미일과 가까워지기 위해서 중국과 거리를 둘게 아니라 중국의 지정학적 위치를 잘 활용하기 위해 끊임없이 만나고 소통해야 한다. '국익' 보다는 '가치'에 방점을 둔 윤 대통령의 외교 기조에 변화를 줘야 한다는 의미다.
여기에 한가지 덧붙이자면 '갑질' 의혹으로 베이징 외교가에서 사실상 고립을 자초한 '대통령의 친구' 정재호 주중대사의 거취 문제도 하루빨리 정리할 필요가 있다.
이미 녹취까지 증거로 제출된 마당에 시간을 끌 이유가 없다. 한국 정부를 대표해 중국에 파견된 고위 외교관 한명의 갑질 의혹이 대중외교에 걸림돌이 된다면 그 자체만으로 윤 대통령과 한국 외교에 큰 부담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