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화 왕국' 일본의 디지털 만화 시장 규모가 지난해 4조 원을 돌파했다.
5일 일본 전국출판협회·출판과학연구소가 발표한 '2023년 일본 만화시장' 조사 결과에 따르면 지난해 일본 디지털만화(웹툰 및 전자책 만화) 판매 추정 금액은 지난해보다 7.8% 늘어난 4830억 엔(한화 4조 3천억 원)으로 집계됐다. 일본 디지털 만화 시장 규모가 4조 원을 넘긴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일본 시장에 상륙한 한국 웹툰의 인기가 높아진 가운데, 일본 만화산업계를 이끌고 있는 대형 출판사들도 디지털 만화 시장에 뛰어들고 있다. 업계는 잡지나 출판만화를 중심으로 발행하는 출판사들이 종이책 수요 감소로 인해 서점들이 잇달아 폐업하는 상황이 이어지면서 이들 출판사들도 사업 방향 재조정이 불가피했을 것으로 보고 있다.
일본 디지털 만화 시장은 10년 전인 2014년 연간 판매액이 887억 엔 규모로 전체 만화 시장의 20%에 불과했지만 2015년 1천억 엔에서 코로나19 팬데믹 직후인 2020년 3천억 엔, 2021년에는 4천억 엔을 넘어섰다. 이는 전체 만화시장(6837억 엔 규모)에서 디지털 만화가 차지하는 비중이 70%에 육박할 정도로 가파른 성장세다.
비디오게임 등을 제외하면 디지털 콘텐츠보다 출판의 영향력이 절대적인 일본 출판만화가 흔들리고 있다. 이는 스마트폰, 태블릿 보급이 폭발적으로 증가하며 웹툰을 앞세운 한국 웹툰의 일본 시장 공략이 통했다는 분석이다.
최근 10년간 일본 만화시장 판매 추정금액. 일본 전국출판협회·출판과학연구소 갈무리
2016년 일본 서비스를 시작한 카카오픽코마(구 카카오재팬)의 디지털 만화 플랫폼인 픽코마는 현재 모든 애플리케이션(앱) 가운데 일본 내 소비자 지출 1위를 기록 중이다.
2022년 월간 활성 이용자(MAU) 1천만 명을 기록한 데 이어 지난해 단일 디지털 만화 플랫폼 가운데 유일하게 연간 거래액 1천억 엔을 넘겼다.
네이버웹툰의 일본어 서비스인 라인망가도 지난해 12월 월간 활성 이용자 1000만 명을 넘겼고, 이북재팬과 합쳐 지난해 1~11월 총거래액 1천억 엔을 기록했다.
디지털 만화 시장 규모와 파급력이 커지자 일본 유명 만화출판사들도 앞다퉈 웹툰 시장에 뛰어들고 있다. 일본의 대표 만화 출판사인 슈에이샤(集英社)가 디지털 만화 플랫폼인 '소년점플러스'에 이어 웹툰 플랫폼 '점프툰' 앱을출시했고, 온라인 서비스 플랫폼 라쿠텐도 'R-툰'을 내놨다.
종합 콘텐츠 기업 카도카와(KADOKAWA)는 전자 서점 스토어인 '북워커(BOOK WALKER)'를 시작으로 웹툰에 특화된 '타테스크코믹' 서비스를 선보이며 매년 새로운 작품을 플랫폼 상에서 오픈하고 있다.
출판사 쇼가쿠칸(小学館)과 캐릭터 엔터테인먼트 기업 반다이(BANDAI)가 함께 운영하는 '툰게이트(TOONGATE)'에서는 캐릭터와 아이디어를 일반에 모집해 제작사와 함께 웹툰 제작 프로젝트를 진행하기도 했다.
기존 디지털 만화가 출판만화를 스캔해 옮기는 방식이었다면 최근에는 웹툰 형식으로 제작하는 추세가 점차 늘고 있다. 특히 이 시장을 네이버웹툰의 라인망가와 카카오픽코마의 픽코마가 K-웹툰이주도하고 있다는 점은 고무적이다.
카카오픽코마, 네이버웹툰, 라인망가, 카카오페이지. 네이버·카카오 갈무리이처럼 웹툰을 포함 디지털 만화의 가파른 성장세가 일본의 전체 만화 시장의 규모까지 키우고 있다. 지난해 일본 만화시장 전체 판매 추정액은 6973억엔(약 6조 1500억 원)으로 전년 대비 2.5%로 증가했다. 2020년 이미 일본 만화 황금기인 1995년(5864억 엔)의 기록을 돌파했다.
코로나19 팬데믹 이전 4~5천억 엔 수준이었던 일본 만화시장 규모가 6년 연속 증가세를 보이며 7천억엔에 육박한 데에는 한국 웹툰을 구심으로 한 디지털 만화시장 성장세가 바탕이 됐다는 분석이 나온다.
일본 출판만화계에서는 한국의 웹툰이 모바일 세대를 잠식해 자신들의 시장 점유율을 야금야금 잠식할 것이라는 우려가 있었지만, 웹툰이 오히려 만화시장 규모를 키우는 '메기 효과'를 입증하면서 K-웹툰에 대한 기대감을 한껏 높일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