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민수 기자 경제 불황이 가속화 하면서 서점가에 삶의 위로와 희망을 주는 책들이 인기몰이를 하고 있다. 위기의 시대, 챗GPT로 촉발된 생성형 AI(인공지능)에 대한 폭발적인 관심까지 몰리면서 올해 시대적 흐름을 읽을 수 있는 책들이 쏟아지고 있다.
빠르게 변화하는 IT 환경에 5060의 구매심(心) 자극
28일 교보문고에 따르면 지난해 상반기 '세이노의 가르침' 등 경제경영 분야 투자서가 인기를 주도했던 것과 달리 최근 투자서 인기가 사그라지면서 그 자리를 AI 실무서적이 대체하고 있다.
경제경영 분야 도서 제목에 'AI' 또는 'GPT' 키워드를 달고 나온 전망서나 시장분석 도서들의 판매량이 40배 가량 늘었다. 최근 컴퓨터 분야 AI 관련 도서가 지난해 10월 이후 약 30% 가파른 성장세를 보이면서 올해 1월 전년 동월 대비 48.2%의 판매 신장률을 기록했다.
AI 관련 독서의 추세가 '투자'에서 '실무'로 바뀐 흐름을 보였다.
주 독자층은 2023년 기준 점유율 26.9%로 30대가 가장 많지만, 이 '열공 모드'의 중심에 '신중년' 세대가 두각을 나타냈다. 신중년 세대는 50세 전후로 주된 일자리에서 퇴직 후 70대 이후의 노후를 준비하는 5060 세대로, 이들의 구매 비중은 제한적이지만 나이를 불문하고 생존을 위해 급변하는 디지털 환경에 적응하려는 시니어 세대의 움직임이 감지됐다는 점에서 교보문고 측은 이례적이라고 분석했다.
5060 신중년 세대가 가장 많이 구매한 도서에서도 흐름을 읽어볼 수 있다.
2023년 10월부터 2024년 1월까지 판매 10위권 내 도서들에서 '프롬프트 엔지니어링으로 인공지능 제대로 일 시키기' 'Do it! 챗GPT&파이썬으로 AI 직원 만들기' '된다! 하루 만에 끝내는 챗GPT 활용법' 등 전문 분야 입문서 또는 실무 가이드가 주를 이뤘다.
AI 관련도서 판매 신장률. 교보문고 제공 2024년 1월 IT분야 일반서 판매량 또한 전년 동기간 대비 43.2% 상승했다.
교보문고 신수진 컴퓨터·IT MD는 "IT분야 도서는 전공자들의 영역이라고 생각하시는 분들이 많았지만, 챗GPT 등장을 기점으로 판매 흐름이 바뀌었다"며 "코로나19로 인해 인력 수요가 높은 IT 업계로 비전공자들이 이직을 시도하면서 기본서에 대한 니즈뿐 아니라 진화한 기술 환경에서 생존을 위한 방법론적인 관심이 30대를 주축으로 시니어 세대까지 이들을 서점으로 이끌었다"고 분석했다.
고된 현실, 철학자에게서 위로 찾는 독자들
지난해 말부터 시작된 '쇼펜하우어 열풍'도 계속고 있다.
예스24에 따르면 강용수의 '마흔에 읽는 쇼펜하우어'는 작년 9월 출간 이후 TV 예능 프로그램에 노출로 주목받으면서 12주 동안 예스24 베스트셀러 1위를 차지했다. 다른 서점 집계에서도 1~2위를 다투고 있다.
서점가를 찾은 시민들. 당대 철학자 프리드리히 니체, 아르투어 쇼펜하우어, 알프레드 아들러, 질 들뢰즈. 출판사 제공 쇼펜하우어 관련서 예스24 집계 전체 판매량은 2023년에 전년 대비 14.5배, 올해 1월에는 전년 동기 대비 26.5배 폭증했다. 이른바 '미디어셀러' 효과를 넘어, 염세주의 철학자 쇼펜하우어가 전하는 삶의 고통에 대한 통찰이 현시대 독자들의 녹록지 않은 현실에 울림을 준 것으로 풀이된다.
이같은 흐름은 굴곡진 인생사와 병증에도 불구하고 '아모르 파티'(Amor Fati: 운명을 사랑하라)라는 개념을 통해 삶을 긍정하고, 주도적으로 치열하게 살아 낼 것을 강조한 철학자 니체 관련 도서에서도 나타난다.
앞서 2020년 방탄소년단 효과로 'BTS 셀러', 2022년 장재형의 '마흔에 읽는 니체'가 베스트셀러에 오르며 주목을 받았고, 출간 종수는 2020년 42종, 2022년 36종으로 평균치를 훌쩍 뛰어넘었고, 판매량도 각각 28.5%, 64.5% 늘었다.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역시 'BTS 셀러' 효과를 톡톡히 봤다.
스테디셀러인 아들러의 '미움받을 용기'는 아들러 심리학을 기반으로, 세계는 다른 누군가가 아닌 오로지 '나'의 힘으로만 바뀔 수 있다며 철저하게 개인의 변화와 용기를 강조한 책으로 뜨거운 사랑을 받았다.
그 밖에 공자, 노자, 장자 등 동양철학 사상가에 대한 관심도 꾸준히 이어지고 있다.
고물가, 고용 한파 등이 이어지며 경기 불황을 피부로 느낀 독자들이 올해에도 흔들리는 마음을 다잡고자 옛 철학가의 단단한 문장들에 계속해서 관심이 모이는 흐름을 이어가는 중이다.
유노북스, 인플루엔셜 제공 올해 1월부터 2월 25일까지 철학 실용서 판매량은 지난해 동기 대비 28.4% 증가했다. 신간들도 속속 출간돼 눈길을 끈다.
인문 교육 멘토 김종원 작가의 '한 번 사는 인생,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는 5가지 키워드로 니체의 문장을 분류해 필사할 수 있도록 돕는다. 국내 최고의 들뢰즈 사상 연구자 서동욱 교수의 에세이 복귀작 '철학은 날씨를 바꾼다'는 오늘의 기분을 바꾸는 생각의 힘을 전한다. '조용헌의 내공'은 욕망과 충동, 무의식을 다스리는 방법으로 동양의 정서 '내공'에 주목했다.
예스24 관계자는 최근 철학서의 인기 흐름에 대해 "경쟁·권위의식·인간관계 등으로 피로도가 높은 한국 독자들의 정서를 건드림과 동시에, 사회 구조적 측면보다는 자기 내부에서 원인을 찾고 스스로 긍정적으로 변화하게끔 돕는 점이 주요한 인기 요인으로 꼽혔다"고 분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