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를 쥐고 웃다가도 등을 토닥인다…시선 '세계문학전집'·'아사코의 거짓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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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이피스트 제공 타이피스트 제공 ​미당문학상 수상 작가이자 평론가인 권혁웅 시인의 여섯 번째 시집 '세계문학전집'은 일상의 소소한 장면에서 삶의 희비극을 포착해왔던 작가의 유머와 현대인의 모순된 사회상을 절묘하게 비틀어 담아낸다.

"소가 트림의 왕이자 이산화탄소 발생기라면 / 이 동물은 방귀의 왕이자 암모니아 발생기입니다 / 넓은 거실에 서식하면서 소파로 위장하고 있죠 / 중추신경은 리모컨을 거쳐 TV에 가늘게 이어져 있습니다"

소처럼 거실 쇼파에 누워 의식주를 해결하는 우리네 중년 남성의 우스꽝스러운 모습을 짚어낸 '동물의 왕국'에서는 현실 풍자의 수준이 무릎을 탁 치게 만든다. 그리고 이내 서글픈 자화상을 그려낸다.

"동쪽 바다를 지배하는 트럼프 가문의 문장(紋章)은 파를 든 거대한 오리이며, / 가언(家言)은 '화염과 분노(Fire and Fury)'이다 수도에도 트럼프 타워라 불리는, / 자본으로 쌓아 올린 높은 탑이 있어 이 이름으로도 수도 이름을 지었다 그의 별명은 미친왕(The Mad King)이지만 의외로 제정신이란 소문도 있다" (시 '왕자의 게임-1' 중에서)

"그래도 국민연금과 지역 의보 통지서는 / 언덕을 올라와, 옥탑까지 올라와, / 속옷과 양말 사이에서 기어이 그이를 찾아내고 / 밤에 내려다보면 붉게 빛나는 수많은 십자가들 아래 / 제각각 누워 있는 잠만 잘 분, / 성탄도 부활도 없이 / 잠만 잔다는 건 꼼짝도 하지 말라는 것" (시 '잠만 잘 분' 중에서)

능청스럽다가도 날카로운 비틀기가 느껴질 때면 청년과 중년, 자본가와 아르바이트생, 무한경쟁 속에서 무감각한 귀신처럼 되어버린 소외자에 대한 연민이 밀려온다.


권혁웅 지음 | 타이피스트 | 152쪽


타이피스트 제공 타이피스트 제공 
타이피스트 시인선 두 번째 시인선 박은정 시인의 '아사코의 거짓말'은 부서지고 망쳐진 세계 속에서도 상처투성이의 빛을 말하고 야만적인 사랑 앞에서도 '작고 연약한 것들'의 마음을 끌어 안으려 한다.

"어떤 사랑은 사랑이 되기 위해 / 자신이 아끼던 마음을 죽이기도 하니까" (시 '작은 경이' 중에서)

"누가 이런 꿈을 시작했는지 알 수 없다 / 수학 공식처럼 딱 떨어지지만 / 매번 틀리고 마는 문제처럼" (시 '유칼립투스가 그려진 침대' 중에서)

시인은 삶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을 던지며 우리가 진실이라고 믿었던 것들이 거짓이 되고 부정당하는 현실 앞에서 마주한 두려움과 두려움 없는 마음이 동시에 존재하는 인간적 감정에 주목한다. 상반된 마음가잠에 "자신이 아끼던 마음까지" 부인하게 되는 상황을 역설적으로 바라본다.

"이제 아사코는 물 잔을 건네며 말한다. 일어나. 반세기가 지났어. 애인의 따듯한 손이 아사코의 손을 잡는다." (시 '아사코의 거짓말' 중에서)

"아무도 돌아오지 않는 밤 / 작고 연약한 것들은 서로를 가여워할수록 / 강한 존재가 되는 법이니까요" (시 '새와 여자의 출근' 중에서)

그렇다고 섣불리 구원이나 사랑을 말하는 대신, 불완전한 운명으로부터 도망치는 대신 넘어지고 쫓겨나면서도 주저함을 딛고 다시 앞으로 나아가자고 한다. 그 사이 시인은 그 상처들을 공유하고 받아들임으로써 통증을 견디어 낼 힘을 끄집어낸다.


박은정 지음 | 타이피스트 | 15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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