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정B컷]"그 판결 문제있다"…日강제동원 '각하 판결'은 바로 잡혔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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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수사보다는 재판을, 법률가들의 자극적인 한 마디 보다 법정 안의 공기를 읽고 싶어 하는 분들에게 드립니다. '법정B컷'은 매일 쏟아지는 'A컷' 기사에 다 담지 못한 법정의 장면을 생생히 전달하는 공간입니다. 아무도 주목하지 않지만 중요한 재판, 모두가 주목하지만 누구도 포착하지 못한 재판의 하이라이트들을 충실히 보도하겠습니다

스마트이미지 제공·황진환 기자스마트이미지 제공·황진환 기자
일제 강제동원 피해자들에 대한 일본 전범기업의 손해배상 책임을 인정한 대법원 판단이 나온 2012년 5월.

그로부터 10년 가까이 흐른 2021년 6월 7일, 서울중앙지법에선 일본의 손해배상 책임을 인정한 대법원 판단을 뒤집고 피해자들의 청구를 각하하는 판결이 나옵니다. 소송 요건에 맞지 않아 재판을 할 수 없을 때 내리는 판단이 각하죠. 피해자들의 청구가 소송 거리도 안 된다는 것이 당시 재판부의 판단이었습니다.

그리고 2024년 2월 1일, 서울고법에선 이 각하 판결에 대해 "문제가 있다"며 파기합니다. 그리고 다시 재판하라며 사건을 돌려보냅니다. 바로 잡혔으니 다행일까요? 2021년 그날의 판결로 피해자들은 그동안 어떤 대가를 치렀을까요? 오늘 '법정B컷'은 일제 강제동원 재판의 법정으로 가봅니다.

"1심 판결에 문제 있다"… 논란의 '각하 판결'이 파기됐다

일제강제노역피해자회 대일민간청구권소송단 장덕환 대표가 1일 오후 서울 서초구 서울고등법원에서 열린 일제 강제동원 손해배상 소송 2심 선고 기일에서 1심 파기 환송 판결을 받은 뒤 피해자 및 유족들과 인사하고 있다. 연합뉴스일제강제노역피해자회 대일민간청구권소송단 장덕환 대표가 1일 오후 서울 서초구 서울고등법원에서 열린 일제 강제동원 손해배상 소송 2심 선고 기일에서 1심 파기 환송 판결을 받은 뒤 피해자 및 유족들과 인사하고 있다. 연합뉴스
강제동원 피해자와 유족들이 지난 1일, 서울고법 민사합의33부(구회근 부장판사) 법정에 모였습니다. 이날은 강제징용 피해자 송모씨 등이 일본 전범기업 미쓰비시 중공업과 스미세키 마테리아루즈, 홋카이도 탄광기선 등을 상대로 낸 손해배상 소송의 2심 선고가 이뤄지는 날이었죠.

선고 시간 일찌감치 전부터 법정에 모인 피해자들은 격앙된 모습이었죠. 그리고 선고가 이뤄졌고, 선고가 내려진 그 순간 피해자들은 "감사합니다"를 외치며 그제야 숨을 돌렸습니다.

2024.2.1 서울고법 민사합의33부, 미쓰비시 강제동원 손해배상 소송 선고 中
재판부 
"선고합니다. 주문, 1심 판결 중 원고들의 부분을 취소한다. 서울중앙지법으로 환송한다. 1심 판결에 문제가 있어서 환송한다"

1심 판결에 문제가 있다는 2심 재판부의 판단. 그리고 피해자들의 환호. 그동안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요? 사건은 2015년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일제 강제동원 피해자 송모씨 등 85명은 지난 2015년 5월, 미쓰비시중공업 등 17개 전범기업을 상대로 손해배상 소송을 냅니다.

고령의 피해자들이 소송에 나설 수 있었던 데는 '2012년 대법원 판단'의 영향이 컸습니다. 일본 전범기업에 대한 강제동원 피해자 개인들의 손해배상 청구권이 살아있고, 일본 측의 손해배상 책임이 있다고 인정한 판결이었기 때문이죠.

그동안 배상 문제가 나올 때마다 일본 측은 1965년 6월 맺어진 '한일 청구권 협정'을 근거로 들며 책임을 피해왔습니다. 물론 일본은 강제동원 자체를 인정하지 않고 있습니다. 그래서 배상이란 단어도 인정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우리나라 대법원은 일본 측 논리를 지적하며 강제동원 피해자 등 개인들의 손해배상청구권이 여전히 가능하고 일본 측의 손해배상 책임도 있다고 밝힙니다. 

2012.05.24 대법원, 일제 강제동원 손해배상 소송 파기환송 판결 中
재판부
"민사소송법 제217조 제3호는 대한민국의 선량한 풍속이나 그 밖의 사회 질서에 어긋나지 않아야 한다는 점을 외국 판결 승인 요건의 하나로 규정하고 있습니다" (중략)

"일본 판결의 이유에는 일본의 한반도와 한국인에 대한 식민 지배가 합법적이라는 규범적 인식을 전제로 하고, 일제의 국가총동원법과 국민징용령을 한반도와 원고 등에게 적용하는 것도 유효하다고 평가한 부분이 포함돼 있습니다"

"하지만 일본 판결 이유는 일제 강점기의 강제 동원 자체를 불법이라고 보고 있는 대한민국 헌법의 핵심적 가치와 정면으로 충돌하는 것이므로, 이러한 판결 이유가 담긴 일본 판결을 그대로 승인하는 결과는 그 자체로 대한민국의 선량한 풍속이나 그 밖의 사회 질서에 위반되는 것임이 분명합니다"

"따라서 우리나라에서 일본 판결을 승인해 그 효력을 인정할 수 없습니다"


쉽게 말해 강제동원 범죄 행위 자체를 인정하지 않겠다는 전제 하에서 나온 일본의 판결을 우리나라 법정에서 승인할 수 없다는 것이죠. 또 한일 청구권 협정과 관계 없이 강제동원 피해자 등 개인들의 손해배상 청구권이 살아있음을 분명히 했습니다.

이러한 대법원 판단이 나온 직후 강제동원 피해자 송씨 등이 2015년 소송을 낸 겁니다. 그리고 소송이 진행 중이던 2018년 10월, 대법원은 '2012년 파기환송 판결'을 확정합니다. 일본 기업의 손해배상 책임을 인정한 판결이 드디어 확정된 겁니다.

상황이 이렇게 흘러가다 보니 송씨를 포함한 피해자들이 미쓰비시 중공업 등을 상대로 낸 소송의 전망도 한층 밝아졌습니다.

그리고 2021년 6월 7일, 1심 선고가 이뤄졌습니다. 결과는 각하, 즉 피해자 패소였습니다.

1심 재판을 맡은 서울중앙지법 민사34부(김양호 부장판사)가 대법원의 판단을 뒤집고 피해자들의 청구를 각하한 겁니다. 결과도 결과지만, 재판부가 밝힌 이유가 예상과는 많이 어긋났습니다. 소송 제기 후 무려 6년 만에 나온 재판부의 판단은 소송 요건에 맞지 않아 심리도 할 수 없다는 것이었죠.

2021.6.7 서울중앙지법 민사34부, 미쓰비시 강제동원 손해배상 선고 中
재판부
"비엔나협약 제27조 전단은 어느 당사국도 조약의 불이행에 대한 정당화 방법으로 그 국내법 규정을 원용해서는 안 된다고 규정하고 있습니다. 조약을 체결한 당사국이 자국 내에서 제정한 법 또는 선고한 판결 등 국내적 법 사정으로 조약이행으로부터 이탈할 수 있다면, 국제 질서의 혼란과 이로 인해 국제 평화를 위협하게 됩니다"

"위와 같은 법리를 토대로 이 사건을 보면, 식민지배의 불법성과 이에 터 잡은 징용의 불법성은 유감스럽게도 모두 국내적 법 해석입니다. 
(중략) 따라서 대한민국은 여전히 국제법적으로는 (한일) 청구권 협정에 구속됩니다"

"중재위원회나 국제사법재판소가 대한민국이 청구권 협정을 위반한 것으로 판단하면 대한민국 사법부의 신뢰에 치명적인 손상을 입게 되고, 이제 막 세계 10강에 들어선 대한민국의 문명국으로서의 위신은 바닥으로 추락할 것입니다"


(중략) "따라서 이 사건 청구를 인용하는 것은 비엔나협약 제27조와 금반언의 원칙 등 국제법을 위반하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습니다"

1심 재판부는 '비엔나 협약'을 근거로 일본 측의 손을 들어줬습니다. 국내법을 근거로 다른 나라와 맺은 조약 내용을 거스를 수 없다는 겁니다.

재판부는 '일본의 식민지배가 불법이었다는 것은 우리나라 만의 해석'이라고 봤습니다. 그리고 우리나라도 비엔나 협약에 가입했으니 국내법 논리로 협약을 깨선 안 된다는 겁니다. '문명국으로서의 위신이 바닥으로 추락할 것'이라는 지극히 판사 개인적인 우려와 함께 말이죠.

당시 재판부는 일반적으로 식민 지배 보상에 대한 문제는 '일괄 처리 협정(lumpsum agreement·총액 지불 협정)'을 따르는 것이 국제 흐름이라는 점도 밝히면서 한일 청구권 협정으로 개인에 대한 보상도 이뤄졌고, 이에 개인들이 일본을 상대로 손배해상을 청구할 권리도 소멸됐다고 판단했습니다.

논란의 '각하 판결'은 파기됐지만

일제강제노역피해자회 대일민간청구권소송단 장덕환 대표가 1일 오후 서울 서초구 서울고등법원에서 열린 일제 강제동원 손해배상 소송 2심 선고 기일에서 1심 파기 환송 판결을 받은 뒤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일제강제노역피해자회 대일민간청구권소송단 장덕환 대표가 1일 오후 서울 서초구 서울고등법원에서 열린 일제 강제동원 손해배상 소송 2심 선고 기일에서 1심 파기 환송 판결을 받은 뒤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1심의 각하 판결 직후 각계각층에서 비판이 쏟아졌습니다.

가장 대표적인 것이 한일 청구권 협정 당시 개인들의 손해배상 청구권이 소멸된 적이 없다는 겁니다. 이는 우리나라 대법원뿐만 아니라 일본 정부도 인정하는 부분입니다. 지난 1992년 일본 외무성 조약국장도 이를 인정했고, 2018년 11월에는 당시 일본 외무상이었던 고노 다로도 일본 의회에서 "개인 청구권이 소멸됐다는 것은 아니다"라고 인정한 바 있죠.

한일 청구권 협정은 애초 일본의 식민지배 배상을 청구하기 위한 협상이 아니라 샌프란시스코 조약 제4조에 근거해 한일 양국이 재정적·민사적 채권 채무 관계를 정치적 합의로 해결하는 절차였다는 것이 지배적인 평가입니다. 결국 한일 청구권 협정에서 강제동원 피해자 등 개인들의 손해배상 청구권이 소멸된 적이 없는데, 이들의 손해배상 청구가 협정을 거슬렀다고 본 것은 앞뒤가 맞지 않다는 겁니다.

2012년과 마찬가지로 강제동원 피해자 등 개인들의 손해배상 청구권이 살아있다는 판단은 2024년 현재도 이어지고 있습니다. 대법원의 주류적 판단인 겁니다. 지난해 12월 28일과 올해 1월 11일, 1월 25일에도 대법원의 판단은 '강제동원 피해자 승소'였습니다.

결국 큰 논란을 일으켰던 각하 판결은 지난 1일, 항소심 재판부가 파기했습니다. "판결에 문제가 있다"라고 직접 지적하면서 말이죠.

1심 각하 판결이 파기되자, 강제동원 피해자와 유족 등은 법정을 나오면서 감사하다는 말을 연신 외쳤죠. 하지만 한편으론 씁쓸합니다. 참 먼 길을 달려왔는데 다시 그 먼 길을 가야 할 생각에 말이죠.

2015년 5월 시작된 이들의 싸움은 6년이 흐른 2021년 6월에서야 1심 각하 판결을 받았죠. 논란의 그 판결은 3년 가까이 지난 2024년 2월, 파기됐습니다. 이제 다시 1심부터 재판을 시작해야 합니다. 

애초 1심에서 86명에 이르렀던 소송 참여자는 각하 판결 이후 항소심에서 18명으로 줄었습니다. 각기 다양한 이유로 소송을 취하했지만, 분명한 점은 이들 대부분이 고령의 노인들이라는 점입니다.

현행 민사소송법 제418조(필수적 환송)는 2심 재판부가 1심의 각하 판결이 잘못된 것으로 판단하고 파기할 경우엔 사건을 1심 재판부에 되돌려 보내도록 규정하고 있습니다.

다만 2심 재판부가 판결할 수 있을 정도로 1심에서 심리가 이뤄졌다면 당사자들의 동의를 얻어 2심에서 재판을 진행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일본 기업 측이 찬성할 리 없죠. 일본 측은 재판 내낸 1심 재판부가 심리를 하지 않은 채 각하한 것이기에 사건을 다시 1심부터 시작하는 것이 옳다고 주장해왔고 그렇게 됐습니다.

일본에게 시간은 많지만, 고령의 피해자들에게 시간이 많지 않을 수 있습니다. 2015년 시작된 강제동원 피해자와 유족들의 싸움은 약 10년이 흐른 2024년, 1심부터 다시 시작하게 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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