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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정B컷]분대장 괴롭힘이 '사적 제재'?…직권남용 또 무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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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수사보다는 재판을, 법률가들의 자극적인 한 마디보다 법정 안의 공기를 읽고 싶어 하는 분들에게 드립니다. '법정B컷'은 매일 쏟아지는 'A컷' 기사에 다 담지 못한 법정의 장면을 생생히 전달하는 공간입니다. 아무도 주목하지 않지만 중요한 재판, 모두가 주목하지만 누구도 포착하지 못한 재판의 하이라이트들을 충실히 보도하겠습니다.

군인 장병. 기사 내용과 관련 없음. 류영주 기자군인 장병. 기사 내용과 관련 없음. 류영주 기자"너희들의 사과를 받아줄 마음은 없지만 서로 말이 다르니 말을 맞추고 나서 얘기해라. 나에게 사과를 하고 싶으면 그 방법을 생각해봐라. 24시간 무릎을 꿇고 있거나 반성문 40장을 써오거나…."
   
가혹행위를 문제 삼은 부대 후임 병사들에게 분대장 A씨는 사과하긴 커녕 "나에게 사과할 방법을 찾아오라"고 다시 질책했습니다. 피해자 B씨는 약 3개월 전 A씨의 가혹행위를 윗선에 알렸지만, 그와 분리되지 못했고 고자질을 했다며 계속 욕설을 들어왔습니다.
   
지난 13일 인천지법 부천지원은 A씨에게 '무죄'를 선고했습니다. A씨에게 적용된 혐의는 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 과거엔 전직 대통령들을 비롯한 고위 공직자 사건에서 가끔 볼 수 있었던 죄목인데, 어느덧 일반적인 사건에서도 자주 등장하고 있습니다. 다만 유죄가 인정되는 경우는 많지 않습니다. 그럼에도 왜 요즘 직권남용죄 기소가 빈번한 걸까요? A씨 사건에서부터 차근차근 짚어보겠습니다.

군 선임 아니었다면 지시 가능했을까…애매한 직권 판단

2021년 6월 전북의 한 육군부대. 전역을 6개월 정도 앞둔 분대장(병장)이었던 A씨는 일병 B씨를 비롯한 후임들에게 자주 험한 말을 했습니다. 특히 훈련 중 손목 부상을 당해 군 병원에서 치료를 받고 손목 보호대를 착용한 B씨에겐 꾀병을 부린다는 취지로 핀잔을 주고 "팔 장애인 XX" 등 심한 욕설을 하기도 했습니다.
   
문제의 가혹행위는 체력단련실에서 벌어졌습니다. A씨는 통증을 호소하는 B씨에게 "1초라도 쉬다 걸리면 10분씩 추가한다"며 강제로 운동시켰습니다. 손목 보호대도 쓰지 못하게 했습니다. 아령만 1시간, 윗몸일으키기 약 500회, 자전거 30분 등 2시간 이상 체력단련이 이어졌습니다. 손목 척골충돌증후군이 악화된 B씨는 추후 수술을 받아야 했습니다.
   
B씨가 이같은 문제 상황을 알리기로 한 뒤엔 괴롭힘이 더 심해졌습니다. B씨가 '마음의 편지'를 쓰려 했다는 사실을 안 A씨는 생활관 안의 다른 부대원들이 보는 앞에서 "배신자XX, 스네이크 뱀 XX, 내부 스파이, 이런 XX들한테는 욕해도 된다. 씹XX, 개XX" 등의 욕설을 퍼부었습니다. 공개적인 모욕이 몇 개월간 반복됐지만 지휘부는 두 사람을 분리하지 않았습니다.
   
B씨가 다른 사람에게 자신의 욕설과 폭언을 말했다고 의심한 A씨는 "너는 2시간 동안 TV를 보지 말고, 북카페에 가서 나에게 어떤 방법으로 사죄할지 생각해보라"며 무릎꿇기나 다량의 반성문 쓰기를 언급하며 B씨를 생활관에서 내보냈습니다.
   
앞서 강제 운동과 공개적인 욕설들에 대해 검사는 위력행사 가혹행위와 모욕죄로 기소했고, 법원은 A씨에게 벌금 300만원을 선고했습니다. 다만 법원은 A씨가 B씨를 북카페로 보내며 반성 행위를 요구한 직권남용 혐의는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 2026.2.13. 인천지법 부천지원 A씨 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 사건 판결문
이 사건 행위(지시)가 있은 후 피해자 등이 북카페에 머문 시간은 … 2시간가량으로 보인다. 이 시간대는 '연등시간'으로 병사들이 생활관이나 북카페에서 TV 시청, 휴대폰 사용, 독서, 취미활동 등을 할 수 있다. 이 사건 행위는 공무시간이 아닌 병사들 개인이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는 시간대에 이루어졌다.
   
분대장인 피고인이 병영생활과 관련하여 분대원인 피해자 등을 지휘·통솔할 일반적인 권한이 있다고 하더라도, 피해자 등이 북카페에 가게 된 이유 중에는 피고인이 행사한 직권 때문이라기보다는 상관인 피고인 모르게 욕설과 뒷담화를 한 사실에 대한 미안한 마음과 이를 해결해야 한다는 심리적 압박감도 있었다고 보인다.
   
한편 이 사건 행위는 피해자 등의 피고인에 대한 욕설이나 뒷담화를 알게 된 피고인이 피해자 등에 대한 실망과 분노의 감정을 표출하는 과정에서 나온 것으로 보인다.
   
위와 같은 사정을 고려하면, 이 사건 행위는 피고인의 일반적인 직무권한의 행사에 속한다고 볼 수 없고, 오히려 피고인의 개인적인 감정에서 비롯된 사적 제재에 불과하다고 보인다.
   
직권남용죄로 볼 수 없다는 재판부 판단의 근거를 요약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공무시간이 아닌 자유시간에 벌어진 일 △피해자도 해결해보려는 마음이었던 점 △피고인도 분노해서 벌인 일로 결국 '사적 제재'에 불과한 사안.
   
직권남용죄는 공무원이 '일반적 직무권한'에 속하는 사항에 관해 그 직권을 남용해 타인에게 의무 없는 일을 하게하거나 권리행사를 방해한 때에 성립하는데, 이 사안은 A씨의 '직권'을 위법하게 행사해 벌어진 일이 아니라는 취지입니다.
   
그러나 피해자의 시각에서 보면 재판부가 짚은 대목들은 아예 다르게 해석될 수도 있습니다. △공무시간도 아닌 자유시간에 피해자는 권리를 침해당했고 △피해자가 심리적 압박을 느낀 것은 가혹행위의 연장선에 있으며 △피고인은 사적인 감정이었음에도 자신의 지위를 이용해 B씨를 제재하려 한 것이죠. 이렇게 보면 오히려 처벌 필요성이 더 크다고 볼 수도 있습니다.
   
특히 '사적 제재'에 불과하다는 건 지극히 가해자 중심의 관점이기도 합니다. 만약 A씨에게 군 선임이자 분대장이라는 지위가 없었다면, B씨는 그의 지시에 순순히 따르지 않았을 테니까요. 24시간 생활을 함께 하는 군에서는 그 지위가 내포한 직무권한의 경계를 어디까지로 봐야할지 정하기 쉽지 않을 겁니다.

군인, 군대 안나경 기자군인, 군대 안나경 기자   

높아진 형벌 요구에 자꾸 소환되는 직권남용죄

   
A씨 사례뿐 아니라 직권남용죄로 기소된 사건은 대부분 '사실관계 인정'이라는 문턱을 넘어도 직권남용죄의 구성요건을 딱 맞추지 못해 유죄 결론에 다다르지 못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에 검사들이 기소조차 꺼리면서 한때 직권남용죄는 '사문화된 조항'으로 여겨지기도 했지만, 최근엔 기소 사례가 나날이 늘고 있습니다. 과거라면 피해자가 참고 넘어갔거나 참는 동안 더 명확한 불법행위(강요·폭행·협박 등)로 발전해 다른 범죄로 기소됐을 사안들에 대해 명확히 처벌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커졌다는 점이 한 이유일 겁니다. 동시에 가해자의 행위도 노골적인 월권·불법 행위에서 마치 정당한 직권을 행사하는 듯 줄을 타는 교묘한 양태로 변화하고 있고요.
   
사건이 발생한 조직 내에서 유의미한 징계 처분 등으로 해소됐어야 할 사안들이 시기를 놓치거나 맹탕 처분으로 끝나 부득이 형사법정에 넘어오는 일도 많습니다. B씨 역시 A씨의 폭언과 가혹행위에 대해 진작부터 윗선에 문제를 제기했지만 제때 적절한 조치가 이뤄지지 않았고, 전역할 시기가 된 A씨는 민간 경찰·검찰에서 조사를 받고 재판에 넘겨졌습니다.
   
디테일은 다르지만 같은 직권남용 혐의로 대법원 심리를 기다리고 있는 이른바 사법농단(사법행정권 남용) 사건들도 사정이 비슷합니다. 양승태 대법원장 시절 법원행정처의 재판 개입 행위를 규율할 죄목으로 직권남용죄는 한계가 있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았습니다. '재판에 개입할 일반적 직무권한'이 존재한다는 것을 상정해야 처벌이 가능한데, 이는 재판독립의 원칙과 부딪힌다는 게 현재까지 대법원의 판단입니다.
   
재판 개입이라는 초유의 재판독립 침해 행위가 형사법정에 서자 오히려 재판독립 보호를 위해 처벌할 수 없다는 모순에 놓인 겁니다. 사법농단 사안에서도 법관 사회 내부의 유의미한 징계나 국회의 법관 탄핵 등이 적시에 이뤄지지 못하면서 형사재판이 최후의 보루가 됐습니다. 이처럼 직권남용죄는 모든 애매한 나쁜 행위의 하수처리장 같은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직권남용 구멍도 여전한데 법왜곡죄까지


직권남용죄의 구성요건 모호성을 보완하거나 입법 공백으로 지적받은 월권적 남용행위, 재판개입 등 특수한 남용행위를 규율할 입법이 필요하다는 요구는 꾸준히 제기돼왔습니다. 그러나 국회는 최근 직권남용죄보다 더 모호한 '법왜곡죄'를 통과시켰습니다.(형법 제123조 직권남용죄 바로 아래 제123조의2로 법왜곡죄가 신설될 예정입니다.)

개정법이 시행된다면 A씨의 무죄 판결에 대해 B씨가, 혹은 판사가 직무권한을 넓게 봐 A씨에게 유죄를 선고했다면 A씨가 법왜곡죄로 판사를 고소하려 할 겁니다.(기소 여부나 처벌 가능성은 별론으로 하고요.)
 
여당 일각에선 법관과 검사들에게 경종을 울리기 위한 '상징적 입법'이라고 평가하기도 하지만, 글쎄요. 사문화 됐다는 평가를 받은 직권남용죄가 종종 기소되는 범죄가 됐듯 법왜곡죄도 언젠가 그렇게 될지 모릅니다. 이 죄목으로 많은 검사·판사를 처벌하게 되든, 사실상 거의 처벌할 수 없든  사법신뢰에 도움이 되지 않으리란 것은 분명해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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