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 이유미. 바로엔터테인먼트 제공넷플릭스 '오징어 게임'으로 에미상을 받은 이후 이유미는 '스타성'에만 만족하지 않았다. JTBC 토일드라마 '힘쎈 여자 강남순'(이하 '강남순')은 생애 첫 타이틀 롤 주연을 맡은 이유미가 그런 가능성을 증명할 수 있는 기회였다. 줄곧 어두운 캐릭터를 많이 맡아왔던 이유미에게서 선하고 정의로운 괴력 히어로 강남순의 모습을 쉽게 떠올리긴 어려웠다. 그럼에도 이유미는 만화적인 설정까지 최전방에서 납득시키며 드라마 성공을 이끌었다.
이유미에게 연기는 '재미있는 것'이다. '오징어 게임' 이후 SNS 팔로워 600만이 넘었어도 이는 불변의 가치나 다름없다. '오징어 게임' 역시 그 동안 해 온 연기 생활의 연장선상에 있다. 이유미는 어려운 작품들 속에서 주조연 할 것 없이 연기에 매진했고 지금, 그 성과가 빛을 발하고 있다. 판타지 설정이 상당한 강남순 캐릭터를 탄탄한 연기력으로 현실에 안착시킨 것은 이유미가 아니었다면 어려웠을 일이다.
'강남순'은 이유미에게 또 한 번 성장을 가져왔다. 비단 연기 스펙트럼의 확장뿐만 아니라 '선한 영향력'에 대해 생각해 보는 계기가 됐다. '강남순'의 배경처럼 온갖 '악'이 판치는 사회에서 한 사람의 '선한 마음'이 얼마나 중요한지 깨달을 수 있었다. 첫 타이틀 롤에 대한 부담감도 없었다면 거짓말이지만 그보다는 '남순이'처럼 몸과 마음이 건강하고 단단해야 한다는 각오도 다졌다.
20대 이유미는 누구보다 숨 가쁘게 살았다. 연기나 작품이 잘 되지 않을 때는 배우의 길을 포기할 생각을 하기도 했다. 그러나 30대를 목전에 둔 이제는 오래 연기할 수 있도록 여유를 찾아가는 게 좋겠단 마음이다. '강남순'처럼 배우의 욕심과 대중의 기대 사이에서 적절히 균형을 맞춰 나가는 방법도 점차 익혀가고 있다. 연기에 '재미'를 잃을 때까지, 이유미는 계속 전진할 작정이다. 다음은 이유미와의 종영 인터뷰 일문일답.
배우 이유미. 바로엔터테인먼트 제공Q 판타지스러운 설정의 따뜻한 히어로물이었다. '슈퍼 파워'를 가진 강남순 역의 매력은 무엇이었고, 연기 해보니 본인도 그런 능력을 원하게 됐을까A 원래 히어로, 이세계물, 애니메이션을 좋아하니까 판타지 요소를 연기할 수 있다는 게 좋았다. 다만 제가 실제로 힘이 강해지는 건 아니더라. (웃음) 많은 도움이 필요했고 와이어 액션 등 새로운 부분의 연기합이 필요했다. 신기한 경험을 많이 하면서 실제와 판타지는 다르다는 걸 생각하게 됐다. 나중에는 기분이 좋다 못해 제가 남순이처럼 달리고, 힘이 세진 것 같은 착각의 늪에 빠졌다. 지방 촬영을 가면 차가 너무 막혀서 남순이면 차를 들고 뛰어갈 수 있는 게 너무 부러웠다. 하루만 그 초능력을 빌리고 싶었다.
Q 최고 시청률 10.5%(닐슨코리아 전국 기준)로 시청자들의 많은 사랑을 받았다. 한 동안 다크 히어로가 대세인 시절도 있었는데 '강남순'만의 어떤 차별점이 있다고 봤는지, 배우 인생에서 '강남순'이 어떤 작품으로 남을지도 궁금하다A 대중적으로 다양한 연령층에 저를 알리는 계기가 된 작품이기도 하고, 사람들에게 좋은 에너지를 준 작품으로 기억에 남을 거 같다. 주연으로서의 책임감과 부담에 대해서도 많이 생각하게 됐다. 내 몸과 마음을 챙기면서 더 단단해지고 건강해져야겠다는 배움을 얻었다. 남순이는 제가 했던 캐릭터 중에 가장 순수하고 깨끗한 마음을 가진 건강한 친구였는데 저 또한 좋은 영향을 많이 받았고, 실제로 선한 영향력을 줬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원래 제가 100% 밝았다면 남순이 덕분에 이제 150% 밝은 사람이 된 거 같다.
Q 마약 문제와 같은 정말 사회적으로 뜨거운 이슈가 딱 들어맞게 등장하기도 했다. 배우들도 절묘하다고 느꼈을 것 같다
A 드라마 또한 선하게, 사회의 불편한 이야기들을 가볍게 재미있게 풀어나간 요소들을 시청자들이 사랑해 주신 거 같다. 작가님 대체 무슨 일인가 싶었다. 어떻게 이걸 딱 들어맞게 쓰셨나 해서. (웃음) 어떻게 보면 이런 소재로, 이런 시기에 나와서 다행인 거 같다. 만약 소재가 더 깊이감 있거나, 우울했으면 시청자들이 너무 힘들어 하셨을 수도 있는데 반대로 밝고 재밌게 풀어주니까 더 수용이 가능하지 않았나 싶다.
JTBC 제공Q 시청자들의 눈은 즐거웠지만 몽골 현지 촬영 당시에 고생도 많이 했겠다A 그렇게 길게 해외 촬영을 간 게 처음이라 걱정을 많이 했다. 사실 초원 근처 호텔은 불편할 게 없었는데 초원에서 촬영을 할 때는 휴대폰이 안 터졌다. 그러니까 다들 무전기로 대화를 했다. 아침에 어떤 장면을 찍는다고 하면 계속 무전으로 언제 끝나는지 확인하고 물어봐야 한다. 딜레이 되면 말 타는 거 연습하고, 차에서 또 자고…. 소통이 단절된 상황이 너무 웃기기도 했다. 주변에 아무것도 없었다. 현지 분들이 좋아하신다고 해서 챙겨간 사탕 같은 간식 거리도 계속 내가 먹게 되더라. (웃음)
Q 삼대 모녀 히어로 '케미'를 또 빼놓을 수 없다. 가장 많이 호흡을 맞췄던 엄마 황금주 역의 배우 김정은과는 현장에서 어땠나A 정말 도전적이면서 따뜻한 배우이시다. 눈으로 보면서 연기를 하면 꼭 품에 안겨서 연기를 하는 느낌이 든다. 저에게 많은 감정을 넣어주셨다. 평상시에도 잘 챙겨주신다. 와이어 첫 촬영이 있을 때 먼저 메시지를 보내서 다치지 말라고 걱정해주셨는데 감동 먹었다. (웃음) '괴력'이라는 공통점이 있으니까 액션 연기를 하다가 힘들어져서도 세 사람이 자연스럽게 의지하게 됐다. 그냥 같이 있으면 너무 재미있고, 귀엽고, 사랑스러웠다. 선배님들끼리 이야기하는 걸 듣다가 너무 재미있어서 대사를 까먹거나 계속 웃어서 NG가 나기도 했다. (웃음)
Q 로맨스는 최종적으로 경찰 강희식(옹성우 분)이랑 이뤄졌지만 사이코패스 '빌런' 류시오(변우석 분)와 강남순을 두고 '사약 케미'라며 좋아하는 시청자들도 많았다. 강남순과 이유미 입장에서는 어떤 캐릭터를 선택할 것 같은지
A 처음부터 류시오 캐릭터가 매력적이고, 잘 살려야 하기 때문에 제가 할 수 있는 선에서 잘 표현하고 싶다는 생각이 많았다. 오빠(변우석)가 원래 농담도 많이 하고 재미있는 사람이다. 뮤직비디오 촬영에서 만나면서 알고 지내던 친한 사이라 편하게 촬영을 했다. 그 때 이야기도 많이 하면서 친분을 쌓았다. 남순이는 무조건 악보다는 선을 택할 거 같고, 저 역시 어렸다면 자극적 사랑을 추구해서 류시오를 선택했을 거 같은데 이제 스물아홉이니까 안정적 사랑, 희식이를 선택하겠다. (웃음) 안정적인 게 최고다.
배우 이유미. 바로엔터테인먼트 제공Q 영화 '박화영'이나 넷플릭스 '오징어 게임' '지옥'에서는 상당히 우울하고 어두운 캐릭터를 연기했었다. 이렇게 밝고 긍정적인 캐릭터를 연기해 보니 또 다른 맛이 있었을 거 같다. 몰입에서 빠져 나오기는 어떤 캐릭터가 더 수월한가A 저는 중간에 있는 사람이라 둘 다 어렵고 장단점이 있다. 우울하고 어두운 캐릭터는 내적인 질문을 많이 한다. 스스로에 대해 분석하고, 다시 생각해보게 된다. 안 좋은 점을 많이 생각하게 되는데 그 과정에서 내면이 단단하게 성장한다. 강남순 같은 캐릭터는 외적으로 정말 밝아지는 느낌이 있다. 저도 모르게 긍정적으로 생각하게 되고, 쉽게 행복감을 느끼게 된다. 기분도 좋아진다. 내적으로는 너무 고민이 없이 지나가니까 아무 생각을 안 하나 그런 마음도 들었다. 굳이 캐릭터를 떼어내려는 노력은 하지 않는다. 어차피 하나의 캐릭터가 내 안에 있는 모습 하나를 크게 만들거나 하는 거라서. 캐릭터마다 가진 장점들만 쏙쏙 빼서 가지려고 한다.
Q '오징어 게임'으로 글로벌 팬들에게 크게 사랑 받았다. '강남순'을 하면서도 그런 응원을 느꼈는지, 그리고 '오징어 게임'으로 대중에게 각인된 이후 행보에 어떤 고민이 있었는지도 궁금하다. '강남순'의 성공으로 사실상 자신이 가진 저력을 증명한 거 같은데A 다양한 연령층에서 좋아해주시니까 '오징어 게임'보다 좀 더 친근한 느낌으로 다가와 주시는 것 같다. 해외 반응은 주로 SNS에서 보는데 정말 여러 국적의 팬들이 많이 남겨주신다. 누가 봐도 번역기를 돌려서 '남순이'를 쓴 거 같은 댓글을 보면 너무 사랑스럽다. 사진을 올린 다음 팬들 댓글에 '좋아요'를 누르는데 감사함을 표현할 수 있는 길이 이런 소소함 뿐이다. 남순이 캐릭터도 많은 사랑을 받아서 기분이 좋다. ('강남순'이 잘된 건) 다행이라는 생각이다. 사실 '오징어 게임'도 제가 해 온 오랜 연기 생활의 연장선이었지만 대중이 봤을 때는 갑자기 얼굴을 알린 배우 중 한 명이었다. 그래서 다음 작품들로 기대에 보답하고 싶은 마음이 컸다. 배우의 욕심과 대중에게 보여주고 싶은 캐릭터를 잘 접목 시킨 행보로 갔던 것 같다. 그 때부터 대중이 저에게 뭘 궁금해 할까 고민해보기 시작했다.
Q 지나간 20대를 돌아보고, 앞으로 다가올 30대를 생각해보면 어떤 느낌일까A 20대 마지막 끝자락에 남순이의 사랑스럽고 순수한 모습을 연기할 수 있어서 저에게도 복이었다. 20대의 저는 그래도 포기하지 않고 쉬지 않고 일했다. 일이 잘 되지 않았을 때는 너무 속상해서 그만둬야 되나 싶기도 했지만 계속 연기에 재미를 잃지 않으려고 노력한 스스로에게 잘 살아왔고, 열심히 살았다고 해주고 싶다. 30대 이유미는 크게 다르지 않겠지만 지금보다 조금 더 여유 있게 살아갔으면 좋겠다. 건강도, 마음도 챙겨가면서 해야 오래 오래 배우를 할 수 있을 거 같다. 저에게 연기는 항상 재미있어서 하는 거였다. 늘 성장이 따라오니까 그런 재미를 느끼지 않나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