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ixabay닷컴올해 제46회 이상문학상 대상작인 단편소설 '홈 스위트 홈'은 말기 암에 걸린 화자가 시골 마을의 폐가를 구해 자기만을 위한 공간으로 수리, 죽음을 준비하며 현재의 삶에 충실하려는 과정을 그린다. 이를 통해 삶과 죽음에 대한 성찰을 섬세한 문체로 그려낸 작품이다.
이 작품으로 "비애감이 깔리는 주제임에도 생의 긍정을 불어넣는 이야기"라는 평가를 받은 최진영 작가는 2006년 '실천문학'을 통해 등단한 이래 내리 한겨레문학상, 신동엽문학상, 백신애문학상, 김용익소설문학상, 만해문학상 등을 휩쓸었다.
"만약 네가 먼저 죽는다면 나는 너를 먹을 거야. 그래야 너 없이도 죽지 않고 살 수 있어."최 작가가 새삼스럽게 유명세를 치른 것은 문제작 '구의 증명'이다. 세상에 내동댕이 쳐진 연인이 어이 없는 죽임을 당하자 식인 행위라는 괴이한 방법으로 사랑을 증명하는 독특한 소재의 단편소설이다. 2015년 출간된 이 책은 입소문만으로 역주행하며 15만부가 팔리는 등 올해 상반기 서점가 베스트셀러로 독자들의 주목을 끌었다.
'구는 길바닥에서 죽었다'로 시작하는 이 소설은 연인인 '담'이 '구'의 신체를 먹는 충격적인 장면으로 이어진다.
"쇄골까지 내려온 구의 머리칼을 어루만지니 푸석한 머리칼이 한 움큼 빠졌다. 손에 쥔 그것을 가만히 보았다. 버릴 수 없어서, 돌돌 말아 입에 넣고 꿀꺽 삼켰다."그리고 이야기는 과거로 거슬러 올라간다.
은행나무 제공 소설 속의 인물이자 연인인 '구'와 '담'은 어린 시절을 함께했고, 첫경험부터 죽음에 이르기까지 삶의 거의 모든 순간을 동행했다. 이 둘은 불우한 가정 환경에서 자라 거친 세상에 내던져졌지만 서로에게 깊이 의지한다. 척박한 환경은 그들을 놔두지 않고 만났다 헤어지기를 반복한다.
한참을 만나지 못하다 영혼이 연결된 것처럼 서로를 그리워하던 둘은 다시 만난다. 하지만 구의 부모가 진 사채 빛 때문에 쫓기는 삶을 함께 하기 시작한다. 어느 날 사채업자에게 쫓기던 '구'가 길바닥에서 허망하게 죽자 따라 죽기로 했던 '담'은 마음을 바꿔 '구'를 먹는다.
호러 판타지인가? 독자들을 잠시 충격에 빠뜨린 이 이야기는 그러나 마지막 장을 넘기고 나면 먹먹하고 뭉클해진 가슴을 쥐게 한다.
문득 애니메이션으로 우리에게 더 잘 알려진 일본 소설가 스미노 요루의 데뷔작 '너의 췌장을 먹고 싶어'가 떠올랐다.
언뜻 제목만 보면 일본의 괴기 호러물쯤으로 착각되는 이 작품은 사실 췌장이 망가져 시한부 인생을 사는 활달한 소녀와 우연히 그녀가 시한부인 걸 알아버린, 혼자인 게 편한 소년의 청춘 로맨스다.
췌장이 아픈 여주인공이, 옛날 사람들은 치료를 목적으로 자신이 아픈 부위와 똑같은 동물의 부위를 먹었다는 이야기를 듣고 남주인공에게 건네는 말에서 제목을 따왔다.
소미미디어 제공 이 작품은 질풍노도의 시기, 예고 없는 죽음을 마주하면서도 서로 다른 존재들이 만나 관계를 맺고 변화해 가기 위해 노력하는 여정을 그린다. 그렇게 서로 소중한 사람이 되어 간다는 애틋한 스토리로 큰 인기를 모았다.
'너의 췌장을 먹고 싶어'의 여주인공 사쿠라는 "내가 죽으면, 내 췌장을 먹어 줘. 어떤 사람이 날 먹으면, 난 그 안에서 영원히 살게 된대. 난 살고 싶어.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과, 내 가족과 함께. 영원히"라고 말한다.
'구의 증명'에서는 '구'가 죽으면 구를 따라 죽겠다고 했던 '담'이 마음을 바꿔 "나는 너를 먹을 거야. 너를 먹고 아주 오랫동안 살아남을 거야. (…) 나는 살아남아 있을 거야. 죽은 너와 끝까지 살아남아 내가 죽어야 너도 죽게 만들 거야. (…) 네가 사라지도록 놔두지 않을 거야. 살아남을 거야. 그리고 너를 기억할 거야"라고 말한다.
두 작품은 전혀 다른 이야기지만 죽음을 맞은 연인의 신체를 먹음으로써 모든 것이 소멸되는 이별의 죽음이 아닌 영원히 함께하는 관계의 영속성을 바라는 애틋함을 그려낸다.
공교롭게도 두 작품은 각각 한국과 일본에서 2015년 비슷한 시기 출간됐다.
'구의 증명'은 거친 사랑 속에서, '너의 췌장을 먹고 싶어'는 순정만화 같은 로맨스 속에서 죽음을 마주한 이들의 다른 처지, 비슷한 공감, 애틋한 사랑을 노래한다.
최진영 작가는 한 인터뷰에서 "지난날, 애인과 같이 있을 때면 그의 살을 손가락으로 뚝뚝 뜯어 오물오물 씹어 먹는 상상을 하다 혼자 좋아 웃곤 했다. 상상 속 애인의 살은 찹쌀떡처럼 쫄깃하고 달았다. 그런 상상을 가능케 하는 사랑. 그런 사랑을 가능케 하는 상상이었다"고 회고했다.
우리는 먹고 싶을 만큼 절실하게 사랑하고 있나요?
깨물어주고 싶을 만큼 달콤했던 그를 기억하고 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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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에서 너를 사랑했던 기억, 그 기억을 잃고 싶지 않다. 그러니 이제 내가 바라는 것은, 네가 나를 기억하며 오래도록 살아주기를. 그렇게 오래오래 너를 지켜볼 수 있기를." -'구의 증명' 중에서
■구의 증명
최진영 지음 | 은행나무 | 192쪽
■나는 너의 췌장을 먹고 싶어
스미노 요루 지음 | 양윤옥 옮김 | 소미미디어어 |